충만한 삶, 존엄한 죽음 -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서 삶의 의미를 배우다 삶과 이야기 2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최근에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울어본 적이 있을까.

원래도 눈물이 많지만 이 책 한 권을 끝까지 읽는 건 정말 힘들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기에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읽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린아이들이 부모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상황을 읽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혔는데

빨리 하늘나라로 데려가 달라는 죽음을 앞둔 어린 소녀의 기도는 참을 수가 없었다.

하루라도 더 곁에 두고 싶은 부모들의 간절한 기도와

아직 죽음을 잘 모르지만 이 상황이 싫기만 한 어린 동생들의 투정까지

무엇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자연스러운 감정이라지만 나는 아직 힘들다.

그래서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에서 늘 죽음은 다른 사람 이야기라 여겼다.

죽음은 끝이고 그 이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몇 번 경험하긴 했지만 피부로 크게 와닿지 않았다.

죽음학의 대가인 저자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지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총 네 편의 강연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자라온 환경을 이야기하고

그 과정에서 만난 죽음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면서

자연스러운 인간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설명하며 이 과정을 고치에서 나비가 탄생하는 것에 비유한다.

앞으로는 삶보다 죽음이 더 익숙해지는 시대일지도 모르겠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탄생보다는 죽음을 대하는 사회와 개인의 자세가 달라져야 할 때다.

아직은 죽음이 두렵다. 내가 사라진다는 것보다 남겨진 가족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때문이다.

억지로 멀리했던 죽음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해 본다.

먼 미래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곧 닥쳐올 순간일 수도 있다.

저자의 강연을 읽으며 과연 내 삶은 충만했는지, 마지막 순간 존엄한 시간을 맞이할 수 있을지

깊은 고민에 빠져본다. 지금 당장 죽음을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조금씩 생각의 폭을 넓혀보려 한다.


세상을 치유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치유해야 합니다.

그전에는 세상을 치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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