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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는 세계
미우라 시온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평점 :

이 책에는 제목과 다르게 사랑이 가득하다.
식물에 대한 사랑, 요리에 대한 사랑, 사람에 대한 사랑이 가득 들어있다.
요리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후지마루.
식물에 매료되어 돌연변이를 만들고 식물을 연구하는 모토무라.
이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마쓰다 연구실의 사람들과 양식당 엔푸쿠테이의 사장님.
여러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평범하면서도 독특한 일상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두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최선을 다할수록 모토무라를 향한 후지마루의 사랑은 점점 커져갔지만
그의 고백은 번번이 거절당한다. 뇌도, 신경도, 감정도 없는 식물이지만 환경에 적응하면서 지구상
여러 곳에 살고 있는 식물의 매력에 빠진 모토무라는 사랑 없는 세계를 사는 식물 연구에 인생을 바치기로 다짐했다. 거절당한 사랑의 라이벌이 인간이 아니라 식물이라니 후지마루에게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할지 모르겠다.
솔직히는 모토무라에게 어떤 상처가 있길래 식물과의 사랑을 선택했는지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후지마루의 순수한 마음을 자꾸만 응원하게 된다.
후지마루는 마쓰다 연구실에 도시락을 배달하면서 이들이 하는 연구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사람들과도 어울리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통해 잔잔한 사람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마쓰다 연구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오래전 기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자꾸만 웃음이 흘러나왔다.
모토무라와 동료 연구원의 모습에서 잊고 있던 열정 가득한 젊은 날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10여 년 전에 연구실에서 피펫맨을 손에 들고 에펜 튜브에 시료를 담으며 한창 연구에 불태웠던 시기가 있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연구를 향한 순수한 열정보다는
취업이라는 장벽을 넘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었기에 처음에는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맡은 프로젝트가 늘어나고 해외 학회에서 포스터 발표를 하게 되면서
내가 하던 연구에 자신감이 생기게 되자 연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과거의 기억 덕분에 책에 좀 더 빠져들 수 있었다.
요리와 실험은 닮은 점이 많다. 다양한 재료를 준비하고 정해진 방식으로 조리하거나 실험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음식을 만들거나 실험을 한다.
그런 노력이 계속되다 보면 색다른 맛의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거나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물질을 발견하게 된다.
사랑이 가득한 사랑 없는 세계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순수한 젊은이들의 모습을 유쾌하게 느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