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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막이 내릴 때 (저자 사인 인쇄본) ㅣ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식어가 필요 없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필생의 역작이자 '가가 형사'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
<기도의 막이 내릴 때>는 센다이의 한 여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오래전 한 여인의 죽음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세월이 흘러 살인 사건으로 이어지게 된다.
가가 형사는 센다이에서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의 유품을 챙기면서 풀지 못한 숙제를 안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어머니. 그리로 오랜 시간이 흘러 죽음으로 다시 만난 모자.
그렇게 마음에 담긴 숙제는 사라지지 않은 채 시간이 속절없이 흐른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된다. 도쿄의 한 아파트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중년의 여인.
그리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노숙자 은신처에서 발견된 불에 탄 남자의 시체.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느껴진다.
안갯속에 갇힌 듯 뿌옇지만 무언가 이어진 끈이 있는 것만 같은 느낌.
여인이 죽은 아파트에서 발견된 달력에 적힌 의미를 알 수 없는 열두 개 다리 이름.
놀랍게도 그 다리는 오래전 가가 형사의 어머니 유품에서 발견한 메모와 일치했다.
그리고 이 사건의 중심에는 유명한 연극 연출가 아사히 히로미가 있다.
그녀를 둘러싼 비밀과 사건의 진실은 가가 형사와 동료들의 활약으로 하나둘씩 밝혀지게 된다.
누구나 밝힐 수 없는 비밀 하나쯤은 가슴에 품고 살지 모른다.
히로미도, 가가 형사도, 돌아가신 가가 형사의 어머니도.
때로는 끔찍한 범죄의 기억일 수도 있고, 자책감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
그 비밀의 너머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다는 강한 책임감이 도사리고 있다.
하나뿐인 딸을 위해 기꺼이 비밀을 간직하며 살아간 아버지도,
남편과 아들에게 폐만 끼쳤다는 죄책감을 품고 살아간 어머니도,
자신을 위해 삶을 희생한 아버지를 평생 그리워하고 과거를 숨긴 채 살아온 히로미도
인간으로서 안타깝고 마음 아플 뿐이다.
사건이 해결되고 범인이 밝혀졌지만 마음이 무겁다.
오랜 세월 숙명처럼 짊어지고 살아간 그들의 인생이 씁쓸하다.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피해자도 안타까울 뿐이다.
벼랑 끝까지 내몰린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비극 같은 삶이 희극으로 바뀔 수는 없는 걸까.
히가시노 게이고가 선사하는 인생에 대한 한 편의 비극적인 대서사가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