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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인자에게
아스트리드 홀레이더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심상치 않은 내용이 전개된다.
누군가 언니와 형부, 어린 조카가 탄 차로 다가와 총을 쏘기 시작했다.
어린 조카는 언니가 재빨리 끌어안고 집으로 도망친 덕분에 무사했지만
형부는 총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다. 엄마의 급박한 전화를 받자마자 집으로 부리나케 달려왔고
형부는 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술을 받았다. 여기까지만 읽고서 저자 소개를 다시 읽어 보았다.
가부장적인 문화가 지배적이던 1965년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다.
알코올중독자에 폭력적인 아버지와 그를 꼭 닮은 오빠로 인해 위태로운 삶을 살았다.
가정폭력, 여성차별, 각종 범죄 등 불우한 환경을 딛고 변호사로 성장한 그녀는
치밀한 준비 끝에 네덜란드 최악의 범죄자이자, 다수의 살인을 교사한 친오빠 빌럼 홀레이더르를 법정에 세운다... (중략)... 교도소 안에서 아스트리드의 살해를 지시했다.
그녀는 직장을 그만두고 살해 위협을 피해 숨어서 살아가고 있다.
친오빠가 살해하려는 사람 목록 중 가장 첫 번째를 차지하고 있는 그녀.
그녀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하다.
그녀가 쓴 원고가 세상에 나올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생각한다.
범죄자의 가족으로 살아야 하는 현실과 결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참담한 현실 속에서 그녀는 용기를 내어 대중 앞에 섰다.
어쩌면 그녀를 이렇게 책을 내는 것이 그녀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단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해 오빠가 변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안에 내재되어 있던 광기가 서서히 몸 밖으로 표출되면서 가족들은
늘 끊임없는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만 했다. 어머니에게 끊임없이 폭언을 퍼붓고,
급기야 동생의 남편이면서도 절친한 친구를 살해한 후에 태연하게 장례식에
나타나 눈물을 흘리는 오빠 빌럼. 그가 이제는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또 다른 여동생까지 살해하려 한다. 그가 벌이는 잔혹한 살인극에서 벗어나려 아스트리드는 2년의 준비 끝이 법정에 증인으로 섰다. 이미 두 건의 살인, 다섯 건의 살인 교사 등으로 재판 중인 오빠를 영원히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게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손가락질할 수 없다.
증인으로 서서 진실을 말하는 것만이 그녀와 남은 가족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깐.
비록 직장까지 그만두고 숨어 지내야 하지만 살기 위해 그녀가 택한 길에 힘을 주고 싶어졌다.
내가 그녀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마저 불가능한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는지 화가 났다. 무엇이 빌럼을 악마로 만들었을까.
단란하고 화목한 이 가족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린 시절 폭행과 폭언을 퍼붓던 아버지의 잘못일까. 학창시절 함께 어울렸던 친구들의 잘못일까. 인간이 가진 잔혹함이 슬프고 안타깝게 다가온다. 그러면서도 이 책의 저자가 자신의 피붙이에게 단죄를 가하기로 마음먹고 행동에 옮기기까지 그녀와 가족들이 겪은 고통에 몸서리치게 된다. 언제 죽게 될지 모르는 냉혹한 현실에서도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용기를 낸 그녀에게
하루빨리 세상 밖에서 웃으며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1년, 한 달, 1주일.. 아니 단 하루라고 죽음의 공포 속에서 벗어나 남은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