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어야 하는 밤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더 이상 떨어질 바닥은 없을 줄 알았다. 한때 잘 나가던 밴드에서 자작곡을 연주했던 벤은 지금 막 싸구려 호텔 바에서 일자리를 잃었다. 병원에 있는 딸 율레를 생각하며 애원했지만 그를 대체할 사람이 벌써 정해졌다. 해고는 늘 순식간에 진행됐다. 호텔 입구 벤치에 앉아 패배자로서 쓴맛을 느끼던 그 순간 젊은 여자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 공포에 질린 비명소리를 쫓아 달려간 곳에서 마주친 8N8. 그리고 시내 한복판의 대형 전광판에 등장한 자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8월 8일 8시 8분. 세상은 미쳤다. 
이 책은 집단 광기를 소재로 딸을 구하기 위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SNS를 통해 장난처럼 시작됐던 놀이가 급기야 살인 게임으로 변질되었다. 대중들은 미디어를 통해 전해진 소식이 사실이라 믿는다. 뉴스나 인터넷을 통해 전해진 이야기를 믿으며 진실은 보지 못하고 있다. 통제된 언론 속에서 현상금이 걸린 게임에 사람들은 숨겨왔던 광기를 드러낸다. 잘나다던 시절 새 매니저의 저질스러운 행동에 잠깐 동안 이성을 상실했고 그 결과 사랑하는 딸은 두 다리를 잃었다. 그래도 율레는 누구보다 밝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딸이 어느 날 갑자기 휠체어를 탄 채 옥상에서 떨어졌다. 사람들은 자살 시도라 하지만 벤은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조금씩 딸이 타살이라는 확신이 생긴다. 딸을 죽이려 했던 범인은 이제 벤의 목숨을 노리고 장난을 시작했다. 12시간 동안 벤이 살아있는 공간은 무법지대다. 그 시간 안에 벤을 죽이는 사람에게 1000만 유로의 현상금이 지급될 것이다. 돈의 눈먼 광기 어린 대중들은 벤을 쫓기 시작한다. 급기야 그녀의 아픈 딸을 인질로 잡기까지 한다.
인간이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을까. 돈에 눈먼 자들과 사람 목숨을 게임의 말처럼 여기는 악마. 하지만 그 악마는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두 개의 인격이 공존하는 한 사람. 서로의 인격의 존재를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처벌을 피하는 이유가 된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전혀 다른 인격일지라도 죄를 저지른 건 결국 한 사람이니깐.
우리는 종종 마녀사냥을 경험한다. 방 한구석 컴퓨터 앞에 앉아 허위로 글을 쓰기도 하고,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가짜 뉴스를 좋을 대로 해석하고, 익명성을 무기로 입에 담기도 무서운 저주스러운 댓글을 달고.. 그들의 광기를 견디지 못한 무고한 사람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의 연속. 이러한 사건이 요즘 시대에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무지한 폭도들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 내 분노를 풀 희생양이 필요할 뿐..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책에서 만났을 땐 그 고통이 배가 되는 거 같다. 책에서만큼은 희망과 미래를 만나고 싶은 건 현실이 끔찍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나를 죽이기 위해 달려든다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만으로 숨을 쉴 수가 없다. 벤의 희생으로 남겨진 딸과 아내는 과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소름 끼치는 작가의 글에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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