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플갱어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06년 9월
평점 :
[눈먼 자들의 도시] 이후 사라마구의 소설에 빠져버렸다. 순서대로 하나씩 읽어가면서, [도플갱어]는 그의 소설 가운데 다섯번째로 읽은 것이다. 그의 소설의 특징은 처음 서른 페이지쯤은 읽기가 굉장히 힘들다는 것이다. 한 장 한 장 넘겨가는 것이 곤욕이며, 도대체 뭔 이야기를 하는거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여하든 약간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것이, 내가 느끼는 사라마구의 소설이다. 그러나 그 고비를 넘기고 나서는 결단코 그의 책을 손에서, 그리고 눈에서 떨어뜨릴 수 없게 된다. 그것이 그의 소설들이 가진 마력이다.
[도플갱어]는 말 그대로 세상 어딘가에 나와 똑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 사람은 여느 사람보다 특이하거나 특별한 삶의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나 혹은 주위의 평범한 사람이다. 다만 똑같은 누군가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을 뿐인 것이다.
나와 똑같은 누군가가 실제로 있다는 것을 안다면, 나 역시 주인공처럼 그를 찾아 나설 것이며, 동일하지만 다른 삶을 살아온 그의 삶을 훔쳐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사라마구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호기심에서 출발한 타인의 삶에 대한 욕구는 결국 자신을 삶을 버리고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그것이 [도플갱어]가 갖는 위험한 결론이다.
자신의 삶이 결코 지루하다거나 무의미하다거나 재미없다고 생각하지 않는, 그래서 조금은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던 누군가가 한 순간의 호기심과 욕구로 인해 갑작스럽게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전혀 낯선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나와 똑같은 누군가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보다 더 절망스럽고 잔인한 결과가 아닐까....
그럼에도 사람들은 꿈을 꾼다. 세상 어디에 ..............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