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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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 때문인가, 그의 또 다른 소설 [동굴]을 다시 드렉 되었다. 플라톤의 국가 제 7권에 나오는 동굴의 우화를 토대로 쓰여졌다고 하는 소설 [동굴], 그러나 역자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읽고 있다.

 

21세기는 디지털의 시대이다. 모든 것이 자동화되었으며 편리한 것이 우선되었으며 이전의 것들은 구식으로 몰려 폐기되고 새로운 것, 모두 똑같이 누리고 써야하는 것으로 가득차 있는 시대가 바로 오늘이다. 소설 [동굴]에서 이것은 센터라는 이름의 도시로 드러난다.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안에서 모든 것이 편리하게 이루어져 있으며 모두가 똑같은 혜택을 받으며 사는 센터는, 그러나 자유로운 삶과 개성, 그리고 자유로운 사상은 허용되지 않는 그런 곳이다.

 

그러나 주인공 시프리아노 알고르는 그런 시대의 인물이 아닌, 이른바 아날로그 시대의 인물이다. 손으로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혹은 오랜 시간을 들여 불편하지만 하나씩 해나가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 현대식 불가마가 아니라 할아버지때부터 직접 만들어 써왔던 구식 가마에서 도자기를 굽고 있는 사람이다. 센터에 의해 삶이 조종되고 있기는 하지만, 센터의 규칙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자유인이지고자 하는 인물, 그가 바로 시프리아노 알고르이다.

 

소설 [동굴]에 나오는 시프리아노 알고르의 삶이 변화되는 과정은, 19세기 산업혁명이후 자본주의의 발전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만든 도자기의 수요가 더 이상 없기에 공급할 수 없는, 다시 말해서 노동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 수요가 없으면 노동할 수 없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새로운 기회를 얻고자 하지만, 수요가 없으면 그것조차 원천적으로 봉쇄당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삶이며, 소설 [동굴] 속에서 시프리아노가 피할 수 없는 삶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라마구는 그 현실에 안주하기를 거부한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도 끝까지 생명력을 잃지 않았던 주인공처럼, 시프리아노 역시 센터에서의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자유를 선택하도록 만든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억압 속에서도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 인간들의 참모습이기도 하다.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는,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가 세상의 전부인 것으로 아는 사람들을 진리의 태양으로 이끄는 철학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프리아노는 바로 그 동굴에서 사람들을 자유로 이끄는 플라톤 식의 철학자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철학자는 길을 인도할 뿐이다. 그 길 위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쳐 살아야 하는 것은 인간 개개인이다.

 

시프리아노는 철학자가 아니라 길 위에 선 살아있는 인간일 뿐이다. 하지만 시프리아노의 선택을 우리가 이 삶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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