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지 않는 사람이 성공한다 - 안전거리와 디테일이 행복한 삶의 열쇠다
장샤오헝 지음, 정은지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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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지 않는 사람이 성공한다

안전거리와 디테일이 행복한 삶의 열쇠다

저: 장샤오힝 역: 정은지

출판사: 미디어숲 출판일: 2022년6월10일 


자기개발에 대한 이야기는 넘치고 넘친다. 서점에는 별도로 자개개발 코너가 있는데, 여러가지 성공비법을 이야기한다. 직장에서 성공하는 방법,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방법,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사람이 되는 방법 등등. 그 주제는 매우 넓은 편이고 그 내용은 매우 구체적인 편이다. 사회의 경쟁이 치열하지만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통찰력을 쉽게 얻지 못한다. 그래서 그것을 책을 통해서 해소하려는 욕구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자개개발 관련 서적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개인적인 삶의 경험을 일반화할 수 없다고. 결국 스스로 깨우치고 방법을 찾아야 된다고 조언한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 길을 보다 쉽게 찾을 수 있는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한다. 사실 누군가 내 생각을 물어본다면 어떨까? 아마 통찰력을 얻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애매한 답을 하지 않을까? 사람마다 그러한 종류의 책을 읽고서 느끼는 바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 훈수를 두거나 쓸데없는 조언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다. 그렇지만 이전 시대와 같이 기성세대의 그 어떤 경험이라는 것이 젊은 세대에게는 고루한 이야기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물론 그 이야기가 아예 쓸데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 이야기를 정말로 듣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다.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깊은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자신이 스스로 필요한 것을 찾는 시대, 조언이란 그렇게 변한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회생활에서의 대인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능력이라든지 통찰력이라든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인간관계처럼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것은 없다. 나는 농담으로 우리 삶의 모든 것은 사실 영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좀 건조하게 말한다면 말이다. 이 책은 적당한 거리감을 이야기한다. 그 적당한 거리감은 성숙함을 나타내고 높은 사회성을 나타낸다고도 한다. 


사실 선을 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친구, 직장동료, 직장상사, 하물며 연인관계부터 가족까지 다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상대방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라는 구조에서 통용되는 관념을 같이 공유한다고 가정한다. 인지하든 인지하지 않든 그러한 어떤 긴장관계는 반드시 우리 내면에 침잠되어 있다. 사실 그것을 다른 말로 좀 순화한다면 그건 아마도 ‘겸손’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이 책에서 소개된 이야기가 전부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여기서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것, 그것을 바꿔서 겸손이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는 이해될 만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번쯤 읽어봐도 괜찮을 것 같다. 읽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나 역시도 적절한 선을 지키는 관계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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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는 논어 한마디 - 거친 물결에 흔들리는 삶을 잡아줄 공자의 명쾌한 해답
판덩 지음, 이서연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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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물결에 흔들리는 삶을 잡아줄 공자의 명쾌한 해답

나를 살리는 논어 한마디 

저: 판덩 역: 이서연 

출판사: 미디어숲 출판일: 2022년 5월30일 


서양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로마 신화와 기독교를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문명의 기반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이 두가지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서양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였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아름답고 위대한 문명의 자취를 보는 것으로 마음은 한결 풍성해질 것이지만, 그들이 왜 이런 문명을 이뤘는지에 대해서는 깊게 알 수 없을 것이다. 한동안 그림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는데, 이러한 이해가 떨어지는 나는 그림이 보여주는 것들, 그 의미를 잘 알 수 없었다. 해설서를 읽으며 비로서 감탄을 하고는 했다. 


중국이 패권국가를 지향하면서, 주변국가의 대중 혐오감은 깊어지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아쉽다. 중국이 군사력이라는 힘의 과시보다는 그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문화적 영향력을 깊게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 같 다는 말이다. 하지만 파괴적인 문화혁명의 후유증이 중국문화의 찬란한 역사에 악영향을 미쳤기 때문일까? 문득, 나는 동아시아 권역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오늘날의 중국의 모습에 혐오감을 가지더라도 중국문화에 대한 것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지하든 하지 않든 우리는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문화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마도 우리가 유교라고 부르는 사상체계 혹은 도교, 중국화된 불교의 복잡한 영향이 시대를 이어가면서 우리 정신세계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서양인들이 성경의 내용에서 본받을 점을 찾거나 통찰력을 얻는 것처럼 우리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 내용을 언급하기도 한다. 마치 선사시대, 글이 없던 시대에 연장자로부터 세상을 사는 지혜를 구전으로 배웠던 것처럼. 어느새 무의식의 한편에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영향을 주는 교훈을 스스로 깨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사서오경을 전부 읽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많은 내용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되지 않는 구석도 많다. 고전이 만들어진 시기의 배경과 사고방식, 의도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서오경 중에서도 특히 논어는 이러한 복잡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보편적인 우리의 감성과 상식을 대변하곤 했다. 나는 대학시절에 읽었던 논어의 문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고 또 살면서 영향을 받고 있다. 형이상학적 관념으로 이해해야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해야 될까?


이 책에서는 논어에서 나오는 문구를 선택해서 그 내용을 해석하고 글을 읽는 사람에게 하여금 다시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어디선가 들어봤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 문구가 주는 보편적 통찰력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 문화의 바탕에 있어서 중국문화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그것을 과장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였지만,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 했고 보다 심오한 가치를 추구했었다. 이제는 너무나 다양한 가치들이 혼재하는 시기이지만, 여전히 그 영향력은 강력하다. 


아마도 논어를 주제로 하는 책들이 계속 출간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익숙하고 우리 자신에게 내재화된 것. 갑자기 웃긴 생각인데, 휴대폰이나 컴퓨터 운영체제를 설치했을 때, 흔하게 본 그런 기본 프로그램과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될까? 하지만 그것이 그렇다고 쓸데없거나 그렇지는 않다는 것. 여전히 그 가치는 매우 소중하고 또 계속되리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우리는 논어를 읽어야 된다. 원전을 읽던 해석을 읽던 에세이를 읽든지. 나는 믿는다. 논어가 우리에게 주는 그 통찰력과 힘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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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愛 물들다 - 이야기로 읽는 다채로운 색채의 세상
밥 햄블리 지음, 최진선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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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래애

물들다

저: 밥 햄블리 역: 최진선

출판사: 리드리드출판 출판일: 2022년 5월10일 


여름을 좋아하게 된 것은 나이가 조금 든 후였다. 어렸을 때는 끈적거리는 여름의 날씨보다는 아무래도 차가운 겨울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우연히 눈이라도 내릴 때, 세상이 흰색으로 덮이는 순간에 이상하게도 마음은 잠깐이지만 무척이나 안도한 듯한 느낌이었다. 대학후배와 무작정 떠났던 지방으로의 여행사진은 아직도 생각난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한 사찰을 후배와 둘이서 올라갔고, 눈 내린 후 고요한 사찰은 흰색과 메마른 나무의 색깔이 뚜렷하게 대비되며 내 마음에 각인되었다. 


어느 순간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추운 겨울의 끝자락에서 나는 무척이나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끈적거리는 여름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다만, 어느 순간에 생명이 만개한다는 상투적인 감정이 들었던 것일까? 일본인들이 봄에 짧게 피고 지는 벚꽃을 구경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이 다 그런 것처럼, 내게는 관심을 갖고 있던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일본인들의 그 감정을 그 후에나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지금 벚꽃을 보러 밖에 나간다. 유명한 여의도 벚꽃길을 갈 엄두는 나지 않지만, 북한산로를 따라 길게 이어진 벚꽃을 보러 간다. 사람도 없고 한적하게 감상할 수 있다. 카페에 앉아서 맞은 편 산을 보면 어린 초록색 사이 사이에 분홍빛 벚꽃이 눈에 띈다. 아름답다는 감정이 들고 말없이 한동안은 풍경을 보는 것이 가능하다. 문득, 내가 자주 다니던 이 길과 카페에서 보던 바깥 풍경이 무척이나 낯설어 보인다. 문득 색은 그래서 참 중요한 것이다 라는 또 상투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색은 우리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세상을 보다 다채롭게 만드는 것이 가능한 것은 다양한 색을 조화롭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한 것은 아닐까? 언젠가 겨울의 블라디보스톡을 간 적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겨울의 끝자락. 공항에서 호텔로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바라본 바깥 풍경이 생각났다. 쌓인 눈이 자동차와 흙으로 온통 회색빛을 띄고 있었다. 우중충한 거리의 모습은 을씨년스럽다. 왠지 러시아라는 나라가 으레 우리가 생각했던 것 같은 그런 느낌으로 딱 맞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머리 속은 온통 푸른 빛의 바다가 생각났다. 


책을 읽다가 안전모의 색깔이 구분되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우리가 운영하는 유류저장탱크터미널에 가보면 작업자나 방문자나 모두 하얀색 안전모를 쓰고 있어서 이렇게 세세하게 구분된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러한 사실에 못지않게 내 관심을 끈 것은 역할에 따라 나누어진 색색의 안전모들의 일러스트였다. 아, 알록달록하네. 왠지 이런 일러스트는 관심이 간다. 경마기수복의 일러스트는 어떤가? 아마도 이 책을 읽을 기회가 되는 사람은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런 일러스트에 관심이 갈 것이다.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다.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오고 있다. 미세먼지만 아니라면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따뜻한 햇빛을 맞으며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문득, 당신은 책을 내려놓고 주변을 돌아볼 지도 모르겠다. 그리곤 미처 무관심했던 그 주변에서 다채로운 색채를 발견하고 감탄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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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불안에 답하다 - 감정을 다스리는 심리 수업
황양밍.장린린 지음, 권소현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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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다스리는 심리수업

심리학이 불안에 답하다

저: 황양밍, 장린린 역: 권소현

출판사: 미디어숲 출판일: 2022년5월10일 


인간이 다양한 동물의 한 일원에 불과했을 때, 불안감이라는 감정은 예민한 감수성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험에 대해서 자각하고 경계한다는 것은 생존의 가능성을 좀 더 늘렸을 것이다. 불안이라는 감정이 그래서 그저 부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어쩌면 적절한 정도의 불안감은 우리에게 스스로의 위치에 대해서 생각하게 할 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한 준비를 독려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것도 말하자면 적정한 수준일 때를 가정해야만 한다. 


현대인은 이전의 동물의 일원이었던 시대와는 달리 복잡한 사회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직접적인 신체적 위협, 죽음에서는 벗어났을 지 모르지만 그에 못지않는 건조한 경쟁에 시달린다. 자본주의 세계에서의 배금주의는 새로운 종교가 되었고 인간의 감수성이란 사치스러운 것처럼 이야기된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풍요로운 생활이 뒷받침되어야 여유라는 것이 생기고 거기서 사유가 생긴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그 풍요로운 생활이란 한갓 달콤한 선동구호가 아닌가 의심된다. 


그러한 극한적인 상황에 내몰린 개인은 이제는 도피할 곳이 없다. 신을 버렸다. 정치적 구호도 매력적인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 대부분은 도시에서 살아가며 조밀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진작 고향은 상실했다. 대체 우리 이웃은 누구인가? 나는 한번도 그들과 따듯한 인사를 나눈 적이 없다. 집들은 끊임없이 이웃이 되어 늘어섰지만, 거기에는 이방인들만 있다. 그 누구도 그 누구에게 관심이 없다. 그저 익명의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된다. 


이러한 시대에 현대인이 불안이라는 감정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근원적인 바닥까지 침잠된다. 그래서 무속인의 그럴싸한 거짓 예언에 몰두한다. 그렇지만 대체로 불안이라는 감정을 치유하는 것까지는 오롯이 가지 못한다. 물론 자기자신을 기만한다면 못할 일도 아니지만. 그러나 그러한 위선을 공공연하게 할 정도의 사람은 그다지 많지는 않다. 그래서 그들은 불안을 짐처럼 짊어지고 살아간다.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있지만 채워지지 않은 채로. 


답을 찾아가는 사람에게 심리학은 적절한 답을 줄 것인가? 어려운 문제다. 사실 난 심리학을 제대로 공부한 적도 없어서 주제넘게 심리학이 그럴싸한 이야기를 주저리거리는 것인지 아니면 심오한 무엇인가가 있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없다. 하지만, 불안이라는 감정의 주체가 되는 것은 결국 자기자신이라는 사실. 오늘날의 불안은 근대 이후의 개인의 발견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에는 공감한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의 주체에 대한 고민이 불안이라는 감정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는 아닌가 생각했다. 


어쩌면 불안이라는 감정을 어느 적정한 선에서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주체성에 대한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고 스스로의 주체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것을 주문한다. 글을 읽으며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내가 고민하는 이야기의 연장선 상에 있음을 알았다. 물론 불안이라는 감정이 이러한 사고의 전환을 통해서 온전하게 해소될지는 불확실하다. 그렇지만 의미있는 시도들은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문득 통찰력이라는 것은 조금은 다른 형태로 사람들에게 스며들어서 발산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는 결국 자기자신으로 귀결됨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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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뇌에 행동 스위치를 켜라
오히라 노부타카 지음, 오정화 옮김 / 밀리언서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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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지 않고 바로 실행하는 사람의 37가지 행동패턴 

게으른 뇌에 행동 스위치를 켜라 

저: 오히라 노부타카 역: 오정화 

출판사: 밀리언서재 출판일: 2022년 4월5일 


게으르다. 게으르지 않다. 내 생활을 한번 천천히 뜯어보았다. 확실히 회사생활을 하는 나는 게으르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전날에 거래처와 회식을 하지 않는다면, 대개는 아침 5시20분 정도에 일어나서 회사 근처의 피트니스에서 운동을 간단하게 하고 회사로 출근한다. 일도 대개는 손쉽게 처리하는 편이고 미루지를 못한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일을 굉장히 잘하는 것 같지만, 예를 들어 같은 일을 15년간 한다고 생각해보라. 스스로를 본다면 나름대로는 열심히 뭔가 하며 살고 있다. 결과는 별개로. 


하지만 개인적 삶을 살아가는 나는 좀 게으른 편이다. 해야 될 일도 자주 미루고, 기본적으로 중요한 일이라면 메모라도 하든지 해서 챙겨야 되는데 그것을 못한다. 가끔. 아, 맞다. 그거 해야 되는데 라는 탄식을 몇 번인가 했는지 모르겠다. 사적이냐 그렇지 않느냐 그것에 따라서 왜 내 행동패턴은 그렇게 다를까? 내가 신경을 써야만 하는 타인이 부재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책에서 말한대로 천성적으로 우리 뇌는 게으르고, 나는 그 본성에 충실했던 것일까? 밖에서의 일은 말하자면 사회생활은 생계라는 측면에서 나를 채찍질한 것인가? 좀 더 분발하라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고 헤어졌다.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개는 자신이 속한 조직문화에 잘 순응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어차피 직장생활의 처음부터 무엇인가 대단한 결정을 하고 일을 할 기회는 그다지 없다. 아니, 없다. 선배의 이야기를 청취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친절한 사람도 있고 불친절한 사람도 있다.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고차원의 존재도, 친절하게 세세하게 알려주는 성실한 사람도, 윽박지르며 물어보면 짜증내는 인간도 있다. 


지시사항을 잘 듣고 업무를 성실하게 하는 것이 처음에는 일 잘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어느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에는 스스로가 찾아서 일을 하거나 문제의식을 느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 혼날 것을 무서워하거나 책임지기를 싫어한다면 어떤가? 누군가 지시를 내려주고 책임져 주기만 기다린다. 그렇다고 자기 마음대로 회사의 규정을 어기며 하라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선을 지키는 것, 가끔 그 선이 넘을 수도 있지만 용인 가능한 수준이라면 어떨까?


내가 보았던 실행을 미루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랬다. 회사라는 틀에 맞춰서 거기에 돌아가는 하나의 부분으로 자신을 축소시킨 사람들. 대부분은 자조 섞인 한숨을 쉰다. 어차피 해봐야 잘되면 중간, 잘못되면 내 책임인데 그냥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이 낫지 않냐고. 하지만 이것은 자존감을 버리는 일이 아닌가. 성취라는 측면에서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다는 열망도 없이 그냥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을 미래를 기대하며 스스로를 산 시체처럼 만드는 사고방식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과 쉽게 미루는 사람의 차이는 능력이나 성격이 아니라 상황과 사물을 파악하는 방법이 다른 것뿐이다’라고.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보았던 것. 즉, 우리가 소위 명문대라고 부르는 대학을 졸업하고서는 실무에서는 아무 쓰잘데기가 없고 게다가 하는 일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능력인 측면에서 본다면 아마도 어떤 누구보다도 괜찮았을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왜 하지 못할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이나 무엇인가 목표를 세워서 매진하는 것이나 결과를 두려워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이다. 누군가 그 결과에 대해서 상관하지 않는다며 큰 리스크를 지는 사람은 같이 일하는 동료 혹은 주변 사람에게 무책임한 사람일 뿐이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의 부정적인 결과라도 그것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한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물론 시련이 당신을 힘들게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를 단련할 것이다. 


근래에 한 교수님이 강의에서 이야기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전에 회사를 다니는 젊은 세대는 회사가 원하는 인간, 회사형 인간이 되어 살았다. 그렇지만 이제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나를 위해서 회사를 다닌다. 나의 목표와 성장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회사를 찾는다. 그래서 이렇게 변화된 사회에서 전혀 다른 사고방식의 두 집단을 어떻게 융합할 것인가가 숙제라고. 아마도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에게 주어야 할 것이라면 똥군기가 아니라 스스로 사유하고 통찰력을 가지며 책임감 있게 믿는 바를 바로 실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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