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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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 김초혜 

 

한 몸이었다 

서로 갈려 

다른 몸 되었는데 

 

주고 아프게 

받고 모자라게 

나뉘일 줄 

어이 알았으리. 

 

쓴 것만 알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익혀 

단 줄 모르는 자식. 

 

처음대로 

한 몸으로 돌아가 

서로 바꾸어 

태어나면 어떠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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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知覺) 

-행복의 얼굴- 

/ 김현승 

 

내게 행복이 온다면 

나는 그에게 감사하고, 

내게 불행이 와도 

나는 또 그에게 감사한다. 

 

한 번은 밖에서 오고 

한 번은 안에서 오는 행복이다. 

 

우리의 행복의 문은 

밖에서도 열리지만 

안에서도 열리게 되어 있다. 

 

내가 행복할 때 

나는 오늘의 햇빛을 따스히 사랑하고 

내가 불행할 때 

나는 내일의 별들을 사랑한다. 

 

이와 같이 내 생명의 숨결은 

밖에서도 들이쉬고 

안에서도 내어쉬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내 생명의 바다는 

밀물이 되기도 하고 

썰물이 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끊임없이 출렁거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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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 눈 내리는 군 묘지에서 / 이영도 

 

뜨겁게 목숨을 사르고 

사모침은 돌로 섰네. 

 

겨레와 더불어 푸르를

이 증언의 언덕 위에 

 

감감히  

하늘을 덮어 

쌓이는 꽃잎 

꽃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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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위해 산화한 젊은이들의 넋을 기린 시조. 

눈발을 꽃잎에 비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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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당 / 노천명 

 

나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삼단 같은 머리를 땋아 내린 사나이. 

 

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 

날라리를 부는 저녁이면 

다홍치마를 두르고 나는 향단(香丹)이가 된다 

이리하여 장터 어느 넓은 마당을 빌어 

램프불을 돋운 포장 속에선 

내 남성(男聲)이 십분 굴욕되다. 

 

산 넘어 지나온 저 동리엔 

은반지를 사 주고 싶은 

고운 처녀도 있었건만 

다음 달이면 떠남을 짓는 

처녀야! 

나는 집시의 피였다. 

내일은 또 어느 동리로 들어간다냐. 

 

우리들의 소도구를 실은 

노새의 뒤를 따라 

산딸기의 이슬을 털며 

길에 오르는 새벽은 

구경꾼을 모으는 날라리 소리처럼 

슬픔과 기쁨이 섞여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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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당패의 한 사나이가 자신의 유랑 생활을 돌이켜 보며 스스로 노래하는 형식의 시. 

정처없이 유랑하며 살아가는 남사당이 겪는 서글픔과 한이 잘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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