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1 / 오세영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節制)와 균형(均衡)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理性)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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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그릇(가슴파리)'이라는 사물을 통해 절제되고 균형 잡힌 중용의 삶을 추구하는 인간 정신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칼날'과 같이 날카로운 '사금파리'가 인간의 연약한 '맨발'의 '살'에 상처를 내는 현상을 철학적 인식의 출발점으로 하여, '절제와 균형'이 깨어진 데서 비롯되는 '이성의 차가운/눈','맹목의 사랑'과 같은 왜곡된 인간 정신을 경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과 함께 모나고 편향적인 이념으로 인한 '상처'를 내적 성숙의 계기로 수용하는 의지적인 삶의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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