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 김소월
어제도 하로밤
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매 새었소.
오늘은
또 몇 십 리(十里)
어디로 갈까.
산(山)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 곽산(定州郭山)
차(車)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 십자(十字)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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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상실한 떠돌이(유랑민)의 비애를 자문자답 형식의 하소연하는 어조로 담아 내고 있는 작품이다. '길'은 그 자체가 떠돌이의 삶의 행로를 표상한다고 볼 수 있으며, 시가 발표되었던 당시의 시대 상황과 결부시켜 이해한다면 일제의 수탈 정책에 의해 농토를 빼앗기고, 북간도와 만주로 유랑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우리 민중의 한과 비애가 서린 길을 의미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