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 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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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는 김수영, 신동엽의 뒤를 이어 자유를 억압당했던 암울한 시대 현실 속에 온몸으로 저항했던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이 시는 유신 체제의 질식할 듯한 억압 속에서 민주주의 회복에의 열망을 절규한, 1970년대 초의 기념비적 작품 중 하나이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는 당시의 사회 상황과 민주주의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잘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