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 윤동주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 산중(山中)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는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야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龍宮)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沈澱)하는 프로메테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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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와 더불어 2대 민족 저항 시인으로 불리는 윤동주는, 내면적 인간의 자아 성찰과 아에 수반되는 부끄러움의 미학을 통해 비극적인 세계에서 자기 희생을 다짐하는 등, 자아의 윤리적 완성을 꾀하는 시적 특성을 보였다. 이 작품은 '간(肝)'을 매개로 하여 결합된 '프로메테우스 신화'와 '구토지설'의 시적 변용을 통해 암울한 시대에 생의 본질적 가치와 양심을 지키려고 하는 시인의 의지를 형상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