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어 / 최승호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 

'북어'는 시적 대상을 넘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지향하는 바 없이 무의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자신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언어 장애를 겪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 시는 식료품 가게에 진열된 한 쾌의 북어의 이미지를 통해 억압 체제의 물리적 폭력 앞에서 생명력을 상실한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풍자하고 있다. 아울러 그런 억압 체제에 대한 비판과 풍자도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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