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1 / 정지용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寶石)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山)ㅅ 새처럼 날러 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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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시인이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잃고서 지은 작품이다. 죽은 아이를 직접 표현한 시어가 하나도 없지만 참신한 이미지와 절제된 시어의 선택이 오히려 시적 화자가 감추려고 하는 슬픔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시인 자신임이 분명한 시적 화자는 밤의 유리창에 서리는 입김과 눈물 고인 눈에 보이는 밤하늘의 별을 통해 죽은 자식의 영혼을 느끼고 있으며, 그와 같은 자신의 심리 상태를 '외로운 황홀한 심사'라는 모순 형용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