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 신동엽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서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 녹이듯 흐물흐물  

녹여 버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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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노래하는 '봄'은 곧 통일, 또는 통일이 이루어지는 시대를 의미한다. 그것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 오지 않는다."라고 시인은 분명하게 끊어서 말한다. '남해'와 '북녘'은 모두 한반도를 둘러싼 외세의 힘(남해 = 미국, 북녘 = 소련)을 말한다. 그러면 봄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의 아름다운 논밭, 즉 우리 동포들이 살고 있는 바로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 

제3연에서 시인은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을 노래한다. 분단된 민족으로서 우리가 겪고 있는 괴로움을 겨울에 비긴다면, 그것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것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기다리는 통일을 그 밖으로부터 바란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따름이다. 민족의 분단에 의한 고통은 바로 그 고통을 겪는 사람들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만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찾아올 통일의 미래(그 날)을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그려 본다. 오늘의 우리 강토를 덮고 있는 것은 '미움의 쇠붙이들', 즉 증오와 불신으로 가득 찬 군사적 대립과 긴장이다. 우리 민족 모두의 마음 속에서 싹트고 훈훈하게 자라나는 봄은 마침내 이 '쇠붙이들'을 모두 녹여 버리고 새로운 통일의 문을 열게 될 것이다. 그 때, 제주도에서 두만강까지 펼쳐진 아름다운 논밭과 삼천리 마을은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라는 간절한 꿈이 담겨 있다. 그런 뜻에서 이 작품은 한 편의 시이면서 오늘의 시대적 상황에 관한 예언적 진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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