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에꽃 / 최두석
새벽 시내 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 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자리를 옮겨 다니며 보고
다시 꽃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 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일 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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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추운 겨울, 새벽의 시내 버스 차창에 어린 성에를 통해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에 대한 애정과 시대 현실에 대한 아픔을 함께 그리고 있다. 화자가 동시대인들의 삶의 모습을 차창 너머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버스를 탔던 사람들이 남긴 숨결을 통해 느낀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한편, 이 시에서 '엄동 혹한'은 군사 독재가 외피만 바꾼채 연장되고 있던 당시의 암울한 시대상을 상징하는데,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라는 부분에서 이 점이 분명히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