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꽃 / 이용악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채를 드리운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띠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 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 년이 몇 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도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게
울어 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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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의 토종 꽃이면서도 오랑캐꽃이라고 불리게 된 제비꽃의 유래담으로 시작하는 이 시는, 오랑캐꽃의 이미지와 일제 강점기에 고통받는 민족의 현실을 등치시킴으로써, 망국민의 설움과 비애를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