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항지(寄港地) 1 / 황동규
걸어서 항구(港口)에 도착했다.
길게 부는 한지(寒地)의 바람
바다 앞의 집들을 흔들고
긴 눈 내릴 듯
낮게 낮게 비치는 불빛
지전(紙錢)에 그려진 반듯한 그림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반쯤 탄 담배를 그림자처럼 꺼 버리고
조용한 마음으로
배 있는 데로 내려간다.
정박(碇泊) 중의 어두운 용골(龍骨)들이
모두 고개를 들고
항구의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두운 하늘에는 수삼 개(數三個)의 눈송이
하늘의 새들이 따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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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가 있는 어느 여행지의 밤 풍경의 묘사를 통해 삶의 쓸쓸함과 황량함을 간접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특히 배의 앙상함(용골)과 겨울 밤 하늘에 흩날리는 눈송이(하강 이미지를 상승 이미지로 전환)는 우울함을 더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