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의 비명(碑名) ― 청년 화가 L을 위하여 / 함형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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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나이에 죽은 어떤 화가를 추모하기 위한 작품인 동시에 정열적인 삶을 바라는 작가 자신의 소망을 나타낸 작품이기도 하다. 다섯개의 행을 모두 '말라,'달라','생각하라'라는 명령형으로 끝맺음으로써 단호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