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의 마음 / 나희덕
배추에게도 마음이 있나 보다.
씨앗 뿌리고 농약 없이 키우려니
하도 자라지 않아
가을이 되어도 헛일일 것 같더니
여름내 밭둑 지나며 잊지 않았던 말
―나는 너희로 하여 기쁠 것 같아.
―잘 자라 기쁠 것 같아.
늦가을 배추포기 묶어 주며 보니
그래도 튼실하게 자라 속이 꽤 찼다.
―혹시 배추벌레 한 마리
이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면 어떡하지?
꼭 동여매지도 못하는 사람 마음이나
배추벌레에게 반 넘어 먹히고도
속은 점점 순결한 잎으로 차오르는
배추의 마음이 뭐가 다를까?
배추 풀물이 사람 소매에도 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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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화자는 배추벌레와 같은 작은 사물에도 배려를 아끼지 않는데, 이러한 모습을 통해 자연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