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 박목월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六文三)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 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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