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념의 기(旗) / 김남조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 

없는 것 모양 걸려 왔더니라.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해 

눈 오는 네거리에 나서면, 

 

눈 길 위에 

연기처럼 덮여 오는 편안한 그늘이여, 

마음의 기(旗)는 

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日沒)이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 가는 

그 일이란다. 

 

황제의 항서(降書)와도 같은 무거운 비애(悲愛)가 

맑게 가라앉는 

하얀 모랫벌 같은 마음씨의 

벗은 없을까.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서 

때로 울고 

때로 기도드린다. 

 

========== 

순수한 삶에의 열망과 종교적 염원. 

인간과 신에 대한 사랑을 지니고 있는 시적 화자의 마음을 형상화한 시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