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로이즈 [1101~1164]
요약
프랑스의 수녀.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P.아벨라르와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서한》은 수도생활에 대한 중요한 문헌의 하나로서 13세기부터 널리 읽혀졌다.
원어명 Hloose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종교
본문
파리의 노트르담 수도회의 수사(修士) 퓔베르의 질녀(姪女)이다. 보기드문 재원(才媛)으로 고전에 정통하였으며, 17세 때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P.아벨라르의 제자가 되어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으나, 숙부의 완강한 반대로 결혼하지 못하였다. 실의에 빠진 아벨라르가 생드니수도원 수사가 되자, 그녀도 아르장퇴유 수도원 수녀가 되었다. 그 후 두 사람은 서로 만날 기회가 전혀 없이 오로지 편지로만 영적인 사랑을 나누었다.
1142년 아벨라르가 죽자 엘로이즈는 그 시체를 인수하여 매장하고 그 무덤을 22년간 지키다가 63세에 죽었다. 아벨라르의 유해는 1817년 파라클레투스 수녀원에 있는 엘로이즈 수녀의 무덤에 합장되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갔던 12통의 편지를 모은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서한》은 학문과 수도생활에 관한 엘로이즈의 질문에 대한 아벨라르의 응답이 위주인데, 수도생활에 대한 중요한 문헌의 하나로서 13세기부터 널리 읽혀졌다.
아벨라르 [1079~1142.4.21]
요약
12세기의 프랑스 스콜라 철학자 ·신학자. A.기욤으로부터 당시 변증법이라고 일컬어지던 논리학과 수사학을 공부했다. 한 공개토론에서 스승 기욤을 압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 변증술을 신학에 적용하여 ‘삼위일체설’을 제창하였다.
원어명 Pierre Abélard
별칭 라틴명 Petrus Abaelardus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철학
출생지 프랑스 낭트 부근 르팔레
주요저서 《나의 불행한 이야기》 《신의 일체성과 위격에 관하여》
본문
낭트 부근 르팔레 출생. 라틴명은 Petrus Abaelardus. 22세 때 파리로 나가, A.기욤으로부터 당시 변증법이라고 일컬어지던 논리학과 수사학을 공부했다. 한 공개토론에시 스승 기욤을 압도한 것으로도 유명한 그는, 파리 성당 학교의 교수로 있으면서 문필과 강연에도 크게 활약하였다. 여제자 엘로이즈와의 연애는 두 사람이 성직자였기 때문에 특히 여론을 자극하였는데, 내면의 세계를 그린 《나의 불행한 이야기》는 온 유럽 독서계를 풍미했고, 교황청 안에서도 몰래 읽혔다고 한다.
그의 철학은 실념론(實念論)과 유명론(唯名論)의 중간설인 개념론(槪念論)에 서서, 보편은 정신이 개체에 관하여 자기 안에서 만들어 내는 관념상(觀念像)이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변증술을 신학에 적용하여 ‘삼위일체설’을 제창하였다. 그러나 1121년 스와송 공의회에서 그의 저서 《신의 일체성과 위격에 관하여》(삼위일체설)가 사설(邪說)이라 하여 분서(焚書) 선고를 받고, 자신도 부르타뉴의 생메다르 수도원에 금고되었으며 엘로이즈도 아르장튀유 수녀원의 수녀가 되었다. 그 뒤 그들은 만날 기회가 없어 편지로서 영적인 교제를 계속하였다.
1140년 아벨라르가 상스 공의회에서 다시 논란되고, 이단으로 단죄되어 2년 뒤에 사망하자 엘로이즈는 그의 무덤지키기를 22년, 63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두 사람의 서한은 13세기부터 이미 유명해졌으며, 인간적인 애정이 넘쳐 흐르는 내용은 오늘날에도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