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 / 김영랑 

  

검은 벽에 기대선 채로 

해가 스무 번 바뀌었는데 

내 기린(麒麟)은 영영 울지를 못한다. 

 

그 가슴을 통 흔들고 간 노인(老人)의 손 

지금 어느 끝없는 향연에 높이 앉았으려니 

땅 우의 외롱 기린이야 하마 잊어졌을라. 

 

바깥은 거친 들 이리 떼만 몰려다니고 

사람인 양 꾸민 잔나비떼들 쏘다니어 

내 기린은 맘둘 곳 몸둘 곳 없어지다. 

 

문 아주 굳이 닫고 벽에 기대선 채 

해가 또 한 번 바뀌거늘 

 

이 밤도 내 기린은 맘 놓고 울들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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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권 상실과 그 극복에 대한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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