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맹학교 수업을 다시 해보자, 고 했던건 그 녀석과 술을 마시다가 나온 얘기였다.
대학 시절, 3년..그러니까 6학기 동안 나는 시각장애인 학생을 가르쳤다.
나와 그 녀석이 속해있던 동아리 활동은 그것이었다.
나이는 같았지만, 한 번 학교를 때려치고 재수 아닌 재수를 한 내가 한 학번 아래였으니
녀석이 그 동아리의 17대 회장, 내가 18대 회장이었다.
일 주일에 한 번. 방과 후에 2시간쯤 시각장애인 학생들의 공부를 봐주는 것.
그렇게 내가 한 해는 영어를, 한 해는 사회를 가르쳤던 동갑내기 학생은
무난히 원하던 학교, 원하던 학과에 합격했으니 나름의 의미는 있었던 셈.
회사 생활에도 익숙해지고, 뭔가 의미있는 일들을 다시 해보자고 한 것이 맹학교 수업이었다.
말하자면, 수업도 하고 술도 먹고.. 그런거? -_-
까마득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불기만 하는 08학번 후배한테 수업 연결해달라고 졸라대서
고1 학생과 첫 수업을 하게 된 날이 바로 지난 주 수요일, 14일이었다.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그 길을 지나 몇 년만에 찾은 서울맹학교.
새로 가르치게 된 학생은 열 여섯. 내 반틈만큼 살아온 시각장애 1급의 남학생.
일렉기타리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란다. 4급으로 올라가게 되면 오토바이를 타고 통학하고 싶다고.
대학은 별로 갈 생각이 없다고.
아, 이런. 그럼 나는 이 아이와 무얼 해야하나.
수업을 마치고, 역시 첫 수업을 마친 녀석과 만나 '백송'에서 설렁탕을 먹으며 아이들 얘길 했다.
그 녀석이 맡은 학생과는 1시간 동안 듣기 평가 한 문제 풀었다고.
앞으로 수업은 이렇게 하는게 좋지 않을까, 얘기 하면서
설렁탕과 소주 2병, 맥주 1병을 비우고, 집 근처 가서 먹자고 홍대로 이동.
홍대 가츠라에서 정종 대포 한 잔씩을 비우고
집에 들어간다는 녀석에게 3차 가자고 졸라 크리스마스에 갔더니,
녀석은 데낄라 3잔을 한꺼번에 시키더니 한 잔씩 차례로 들이켰다.
나는 더치커피가 들었다는 맥주 한 잔.
크리스마스 주인 아저씨가 기분이 좋으셨는지,
시나리오 비슷한걸 낭독하시며 혼자 방송을 하시는 동안 녀석은
낙서를 하고 있었다. 저렇게.
서른인데, 스물일 때랑 기분이, 마음이 똑같다. 어쩌냐. 하는.
아침에 텀블러에 맥주를 따라, 일하면서 홀짝홀짝 들이켰다는 녀석은
그렇게 밤 늦도록 또 술을 홀짝이며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이겨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켜볼 밖에.
다음날 점심. 해장이나 하자는 녀석의 말에
삼계탕을 먹으며.. 녀석은 또 소주 반 병을 비웠다.
(대단한 회사다..저러고 회사 다니다니;)
나는 또, 지켜볼 밖에.
이겨내야해,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