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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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수장이가 돌종을 만들 때면 탱, 태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난다.
돌과 정이 부딪쳐서 내는 소리. 
그것은 석수장이의 땀과 피의 소리이며, 종이 되고자 하는 돌의 인내의 비명이기도 할 것이다. 석수장이가 아니면 결코 제 안에 크고 장엄한 무엇이 있는지, 돌은 모른다. 땀과 피와 인내의 시간을 견디고 나서야 돌은 제 안에서 빛날 것이다.
탱, 태앵 하던 것이, 비로소 육중하고 부드러운 울림을 갖는 것이다.

나의 사랑도 늘 그러했다.
다만 그 둔탁한 소리와 부딪침에 먼저 화들짝 놀라 도망가곤 했을 뿐.
지나고 나면 그것이 얼마나 열정적이고 아름다운 부딪침이었는지,
빛나는 돌종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살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그 상처들을 보듬고 나서야 오히려 생에 유연해질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사랑을 위한 사랑만을 했다.
 

전경린의 장편소설을 처음 읽었다.
'사랑'에 대한 소설이었다.
아마도 읽는 이마다 다르게 해석될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든, 유리공예이든 무관하게
나에게 주인공 누경의 삶은, 돌종을 만드는 일과도 같은 것이었다.

문장들이 종종 칼날 같아서, 쉽게 마음을 베었다.
그럴 때면 잠시 책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한 동안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석수장이가 땀과 피로 만든 것 같은 문장이었다.
누경의 삶과 그녀의 사랑 앞에서 나는 자주 무너져내렸다.
그것은 공감에서 비롯되는 위로였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내게 빛나는 돌종 하나를 선물해준,
나를 지나간 모든 사랑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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