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2 - 7月-9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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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 어때? 재밌어? 무슨 내용이야?”
<1Q84>를 읽은 누군가에게 어떤 방법으로 질문하든, 아마 명확한 대답을 듣기 어려울 것이다.
……<1Q84>는 요약할 수 없다.
긍정으로든 부정으로든, 요약되어지지 않는 것의 품격을 지니고 있다.
이를테면 하나의 이야기가 가지는 자세랄까, 그런 것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숱한 가십과 화제의 중심에서도 도통 벗어날 생각을 않는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이런 문제작을 만나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나 역시 처음 <1Q84>란 제목을 들었을 땐 너무나도 생경했다. 
검색을 해보면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란 음악이 가장 먼저 검색되었고, 조지 오웰 <1984>의 오마주라는 얘기도 들렸다. 전혀 무관한 <아Q정전>의 판매가 늘었다. 원고매수로 환산해보면 정확히 1,984매라는, 황당한 소문도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1Q84>를 로 읽었다.

그 모호함과 실험적인 제목, 알려지지 않은 내용을 모두가 유쾌하게 즐겼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일찍이 평론가 남진우가 얘기했듯이, ‘그의 작품은 독서나 분석의 대상이라기보다 차라리 매혹의 대상’이라는 하루키 소설의 감성적 특징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요약할 수 없는 관계로, 나의 리뷰는 철저하게 주관적이며 고즈넉할 것이다.
한없이 본질을 향하고 있지만, 또한 아무 것에도 닿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나는 겨우 몇 가지의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에 그칠 것이다.

‘리틀 피플’은 사회학적 언어로서 가장 흥미로웠다. <1984>에서 얘기한 ‘빅브라더’라는 개념의 대체재라고 볼 수 있는데, 이미 모두가 경계하기 때문에 ‘빅브라더’와 같은 구조의 감시체제가 인간을 구속할 수 없다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대신 잘게 나누어진 군중집단과도 같은 새로운 체제가 인간을 구속하게 된다는 것인데, 굉장히 설득력이 있었다. ‘리틀 피플’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는 것도, 어쩌면 그 체제의 속성이 표면적이거나 가시적이지 않기 때문일 수 있을 것이다.

두 개의 달이 떠 있는 Question의 세계, <1Q84>의 세계에서의 고독은, 흥미롭거나 오싹하기보다는 무력할 정도로 가슴 아팠다. 모든 것이 올바르게 놓여있지만, 그곳이 내가 알던 세계와 약간의 어긋남이 생긴 새로운 세계라면, 그것을 나 혼자 인식하고 있다면, 그 고독의 깊이는 어떠할 것인가. 아오마메가 느낀 그 무력감을 하루키는 완벽하게 전달해주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1Q84>의 결말이다.
결국 현실과 새로운 세계의 경계가 무너져버리며 아오마메와 덴고의 만남, ‘고양이 마을’의 해석, 아오마메는 방아쇠를 당겼는가…… 모든 것이 논란이 되는 지점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일본의 많은 독자들은 3권을 기다린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1Q84>는, 지금까지의 독법을 부정하며 독자의 가장 안쪽까지 파고들어와 인파이팅을 하는 것이다. 잽도, 탐색전도 없다. 단 한 방의 카운터펀치가 있을 뿐이다.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를 ‘고양이 마을’과 ‘수도고속도로의 비밀통로’로 되돌아가게 한다. 그것이 <1Q84>가 우리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이다.


좋다, 나쁘다고 평가할 수 있는 범주의 바깥에 있는 소설.
이 소설을 읽게 될 다음 독자에게 해줄 수 있는 단 하나의 말은 이것이다.
우리는 <1Q84>의 세계에 내동댕이쳐져서,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당신이 책장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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