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조각들 - 타블로 소설집
타블로 지음 / 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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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시간이 아닐 때의 TV화면은 노이즈로 가득차 치지직거린다. 빌 브라이슨에 따르면 그 노이즈 중의 1%는 빅뱅의 잔재라고 한다. 우주가 만들어질 때의 경이가 작은 TV화면에서, 누구라도 볼 수 있게, 무심한 얼굴로 매일 우리 곁을 찾아온다는 것은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지.

그렇게 먼 과거가 아닐지라도 우리는 언제나 과거와 직면한다. 지금은 사라졌을지도 모를 별을 보며 소원을 빌기도 하고, 지금은 다른 사랑을 시작했을지도 모를 당신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과거는 때때로 이상향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의 과거는 책망의 대상이다. 내가 타임머신을 발명한다면 미래보다 과거로 먼저 갈 것 같다. 과거의 부끄러운 것들을 없애고 더 좋은 지금을 만들기 위해서, 나는 과거의 나에게 갈 것이다.

하지만 타블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당신의 조각들>에서는 비린내가 난다.

날 것 그대로의 냄새
젊음과 심장의 냄새.
격발된 탄피의 어색한 뜨거움. 
일찍이 김연수가 얘기했던 바로 그 '스무 살'의 냄새.

그것은 처음엔 먼 행성에서 보내온 신호처럼 막연했다. 먼 도시 뉴욕의, 조나단이나 마크라는 사람이, 줄리어드에 다니거나 마리화나를 피우는 게, 바로 그런 것이 일상인 소설일 뿐이었다. 소설은 잘게 부숴진 파편 같았다. 우스울 것도, 심각할 것도, 심지어는 포즈조차도 없는 10개의 기록.

그러다 오늘 TV에서 타블로를 보았다. TV에서의 그는 비린내와는 거리가 먼, 세상의 인파이터이자 인사이더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는 슬픔을 노련하게 연마해 출세에 성공한 아웃사이더이기도 했다. 그래서, 반가웠다. 다시 책을 펼쳤고, 그가 비명처럼 보내는 신호가 들렸다. 나와 같은 나이의 한 소설가 지망생이, 단말마처럼 내질렀을 그 슬픔이 마른 가슴을 가볍게 쳤다. 그것은 어떤 특별한 공감이었고, 속삭임 같기도 했다. "야, 우리 지금 잘하고 있는 거 맞지?"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다. 그 간격은 엄청날 것이다. 비교하자면 한 우주와 다른 우주만큼. 그래서 우리는 늘 껴안고 키스하고 소리지르며 서로를 그리워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서로가 보내는 신호는 너무나 미약해서, 우리는 때때로 이런 방식으로 소통하기도 한다. 우주가 나에게 보내는 TV화면의 노이즈처럼, 그것의 1%처럼. 

그럴 때면 오히려 어떤 경건한 공감이 형성되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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