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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바이 베스파
박형동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노쇠한 해변가의 작은 놀이동산 매표소를 지키는 늙은 미키마우스,
사랑하는 톰과의 하룻밤 불장난을 첫경험으로 간직하고 사는 제리,
너무 오랫동안 요술봉을 쓰지 않아서 마법이 녹슬어버린 요술공주 할머니 밍키,
늙고 지친 이 오래전의 요정들에게는 이제 꿈과 희망 대신 무미건조한 현실의 어둠이 짙게 배어있다. 스타벅스 카페모카 톨사이즈나 에비앙 500mm, 회색 SM5와 같은 폼나게 획일적인 그런 것들. 물론이다. 나도 그런 것들을 갖고 있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재미있었다고도, 생각했다. 그런 것이다. 삶에서 어떤 것을 얻고 나면, 어떤 것은 반드시 버리게 된다.
그래서 <바이바이 베스파>를 보면서 가슴이 두근거릴 수 있는 것이다, 어른이라면.
앞으로도 내가 가진 것들을 놓을 생각은 없다. 그것을 무엇과 바꾸었는지 알기 때문이다. 늙은 미키마우스의 텅 빈 동공, 예전 그 안에 가득했을 맑은 꿈의 값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혹시 어른이 되려는 거니?"
늙은 미키마우스가 나에게도 이렇게 묻는다면, 나도 베스파를 몰고 조용한 해변가를 달릴 것이다. 그것이 마지막 순수라는 것을 알기에 베스파에게, 미키에게 큰 소리로 외칠 것이다.
"바이바이! 안녕!"
그 때 한 손을 높이 흔들어줄 것이다. 두려운 얼굴로 울음을 참는 어린 나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