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돌의 내력 - 제11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오쿠이즈미 히카루 지음, 박태규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이런 이야기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역사가 개인에게 주는 폐해를 진중하게 말하는 소설.
'돌의 내력'은 두 중편을 싣고 있는데, 뒤의 것(세눈박이 메기)은 긴장감이 전혀 없어서 그렇게 좋은 소설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렇지만 작가의 소설세계를 아우르는 아래의 독백만큼은 인상깊었다.
'......와타루 삼촌은 어떤 징조, 혹은 징후를 기다리고 있다. 어느 쪽으로든 결단을 재촉하고 최종적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삼촌이 낚아올리는 물고기가 꼭 그와 같은 계기를 만들어주리라는 장담은 할 수 없다. 그러나 무엇이건간에 그의 주변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 변화가 생기기를 바랐다. 사건 그 자체는 초월자의 의지에 따른 것이지만,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의 일이다.'
본편으로 돌아가, '돌의 내력'은 위의 내포작가의 의지를 잘 형상화했다. 내용은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어느 일본 청년의 일생이라고 요약해도 무방할 듯 싶다. 전쟁의 상처이자 또한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로서의 상징이 '주인공이 수집하고 조탁하는 돌'이며, 그 상징물을 중심으로 주인공의 가족사를 다루고 있다.
최소규모의 집단이며 동시에 비밀과 개인사를 안고 있는 '가족'이라는 사회의 특징이,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사회성과 개별성을 동시에 지니는 일종의 상징으로 작용한 듯싶다. 그래서일까, 주인공의 고뇌와 가족의 붕괴가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과정이 매끄러웠고, 그래서 더 가슴이 아렸다.
'수천만 년에 걸친 물의 움직임이 만들어낸 지층의 불가사의한 연계. 아무도 없는 산 속에 혼자 들어섰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광물의 숨결. 오감으로 느껴본 후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우주의 질서. 그 놀라움을, 감동을, 전율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흘러넘칠 듯한 한 여름의 태양빛을, 지금 이 곳에서 아들에게 가르쳐줄 수만 있다면. 그러나 무엇 하나 제대로 말할 수 없었다.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었다. 원통함과 슬픔에 콧속이 뜨거워지며 눈에 눈물이 고였다.'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역사의 구성원으로서의 인간과 자아 발현의 욕망을 지닌 인간 사이의 충돌. 이것이 모든 충돌의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것이 외로움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회성과 개별성이 충돌하는 지점, 그 곳에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근원적인 외로움이 태어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