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2.0 - 일상 속으로 파고든 '경제학의 재발견'
노르베르트 해링 외 지음, 안성철 옮김 / 엘도라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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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이 책을 읽게 된 것이 나에게는 어느 정도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전공은 이과, 취향은 순수하게 문학, 인문 쪽인 터라 생각만치 경제학 서적을 손에 쥘 기회가 지금껏 없었던 때문이다.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사회현상을 경제학 논리로 재미있게 풀어주는 책이라는 홍보문구를 보고 선택한 책이었는데, 홍보문구만큼의 역할은 다 해낸 책이라고 생각된다. 막상 학자들이 써낸 책은 딱딱하기가 쉬운데 이 책은 경제학 전공자이면서 동시에 언론지에 글을 기고하는 사람들이 쓴 책이라 그런지 대체적으로 읽기 쉬운 문단구성을 하고 있었다. 또한, 다루는 주제들도 영 실제적인 삶과 동떨어져있지는 않아서 경제학의 ㄱ도 모르는 나도 술술 가볍게 읽어낼 수 있었다.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크게 14장 72챕터의 주제로 나뉘어있는데, 우리가 고등학교 사회, 경제시간에 배웠던 원론적인 경제학 내용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추천사에 '현대 경제학은 단순하게 시장을 이해하려고만 들지않고, 시장을 개선하려고 한다'는 대목이 있는데, 그 일면을 맛보기로 보여주는 책이라고 하면 내가 받은 느낌을 어느 정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스포츠센터 정액권을 끊으면 이익인지 손해인지부터,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물리학과 경제학의 접목 등, 새롭고 신선한 내용들이 이 책 안에 가득 담겨 있어 시종일관 지루하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믿을 만한 논문들을 바탕으로 써낸 데다, 한 번 경제일간지에 연재되었던 내용을 묶은 책이라고 하니 내용 면에서도 신뢰가 가고, '보이지 않는 손' 운운 하는 지루한 내용이 없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니 경제학이란 학문에 막연하게 두려움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첫인상 좋게 하기-경제학아, 만나서 반가워!'라는 측면에서 먼저 이 책을 읽어보아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이 책 한 권 읽었다고 해서 일간지 경제섹션이 줄줄 이해되고 생판 모르던 경제용어를 쏙쏙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그런 쪽과는 포커스가 아예 다르다. 경제학 전반에 관한 기초지식을 쌓으려면 시중에 나와있는 입문서를 읽는 것이 좋겠다. 이 책은 경제학에 대해 친근감을 가질 필요가 있거나, 이미 고전적인 경제학 논리에 약간 물린 사람들이 기분전환 삼아 읽을 만한 것을 필요로 할 때 추천할 수 있는 책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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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찾기
마리네야 테르시 지음, 유혜경 옮김 / 책씨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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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책장을 덮고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지루한 마음에 먼저 펴들었던 역자후기에 '펑펑 울 수도 있다'는 대목이 이제 조금 이해가 될 것 같다. 책의 시작은 나른하고 조용해서 조금은 지루했지만, 끝으로 갈수록 책장에서 손을 놓지 못하게 하는 무언가가 이 작품에는 분명 있었다. 상처를 받아본 사람, 그 상처를 극복해야만 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중 화자 가브리엘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을 터이다. 
 

1. 찾으려는 것은 어떤 '모습'인가. 

  원래 이 책은 북카페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서 만난 한 회원님으로부터 책여행으로 받은 것이다. 그 분께서는 책을 보내오시면서, "내용은 어렵지 않았지만, 정작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인지 알아내는 것이 조금 어려웠다. 읽고 나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해 달라"고 말씀하셨다. '어려웠다'는 말이 머리속에 내내 남아서, 이 책을 잡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실제로는 200페이지 남짓한 짧은 소설책이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무작정 끌려갈 수 밖에 없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니. 그것도 한참 불안정한 사춘기 소년의 서술로. 내 피는 이미 개구리의 그것만큼이나 차갑게 식었는데, 이 소년의 불안정한 맥박을 어찌 따라가야 할지 걱정부터 앞섰다. 무작정 읽어나가기엔 심적 부담이 컸던 지라, 우선 제목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자고 마음먹고 첫 책장을 편 기억이 난다. ('무슨 모습을 찾고 싶어한다는 거지?') 
  이 책의 원제는 [De Gabriel a Gabriel]이다. 스페인어를 잘 모르지만, 눈치껏 때려맞추자면 [가브리엘이 가브리엘에게] 정도 되는 제목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이 책에는 가브리엘이 두 사람 나오는데, 하나는 화자인 소년 가브리엘이고, 또 하나는 그의 아버지인 가브리엘이다. (두 부자는 이름이 똑같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쓰는 편지가 소설 전반을 구성하는 큰 뼈대이기 때문에 적당한 제목이라고 생각되지만, 한국어판 제목인 [모습찾기]도 센스있게 잘 붙인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큰 주제가 '편지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인정해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는 과정.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주변을 비로소 바라보게 되는 과정. 누구나 언젠가는 겪고 지나가야 하는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이 짧은 소설 안에 오롯이 녹아들어가 있다. 

 
2. 아이는 아프고 난 뒤에야 어른이 된다. 

   소설 속에서, 소년은 '자신과 엄마를 버리고 사라진' 아버지에게 답장받지 못할 편지를 매번 쓴다. 그토록 자신을 사랑했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였는데도 소년에게 아무런 해명도 없이 사라져버린 아버지에게 아이가 갖는 감정은 복잡다단하다. 의문. 당황. 분노. 상황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 하지만 그 바닥에는 항상 사랑이 있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자신이 아버지에게 대가 없이 주었던 사랑과 신뢰. 그 하나만을 믿고 소년은 편지를 쓴다. 집에는 더 이상의 소통이 없어, 왜 아버지가 사라졌는지 자신에겐 이야기도 해주지 않는 엄마가 있고, 학교에는 친하게 지내면서도 굳이 속내 이야기까진 하고 싶지 않은 알레한드라가 있다. 소년의 초점은 살아있는 두 사람을 애써 외면한 채,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 하나에만 맞춰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왜 자신에겐 아빠의 이야기를 숨기느냐'고 엄마를 다그친 날, 엄마가 해준 이야기를 듣고 가브리엘은 결국 진짜 사실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자신 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직 어린 나이에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을 상처. 어떤 선택권도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불공평한 운명. 그것에 어떻게든 애써 저항해보려 했던 것이 가브리엘에게 있어서의 '편지'였다. 고치였고 희망이었고 믿음이었던 '편지'가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신기루마냥 부서지자 가브리엘은 곧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다시 기운을 차리는데, 그 배경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그동안 외면했던 엄마와 알레한드라가 있었다. 그렇게 그는 추억 뿐이었던 아버지를 놓아주고, 그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의 옆으로 돌아온다. 
  소년은 종잇장으로 만들어진 꿈에서 깨어나, 이제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들의 세계에 남았다. 마치 새로 태어난 양, 주변의 모든 것에 처음부터 다시 적응을 한다. 어머니와 서툰 대화를 하고, 아빠에게 편지를 쓰는 대신 알레한드라에게 펜을 들어 답장을 받을 수 있는 편지를 쓰며, 아기가 걸음마를 하면서 세상과 부딪치듯 그를 둘러싼 새로운 세상과 부딪치고 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받아들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아픔을 고스란히 껴안고 하나하나 삭일 줄 아는 맷집을 기르면서, 상처를 마주보고 객관화하는 힘을 키우면서 가브리엘은 이제 막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걸음마를 한다. 아버지가 준 추억을 꼭 쥐고, 꿋꿋하게 세상 밖으로 걸음마를 한다. 역자후기에서의 '펑펑 울 수도 있다'는 대목은 아마 이 장면을 읽고 받을 감동을 가리킨 것이 아니었나 싶다. 주저앉지 않고 용기를 낸, 작은 소년의 발걸음이 이렇게 아름다워 보일 줄은 내 미처 몰랐었다.

 

3. 중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였다는 사실 뿐. 지금 우리가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뿐. 

  사랑을 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나 사이에 탯줄을 잇는 것과 같아서, 누구와 사랑에 빠지면 그 탯줄을 통해 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과 환희와 고양감을 그와 공유할 수 있게 된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 몸인 것마냥 모든 것을 나누고 있다는 벅찬 환희가 그를 생각할 때마다 내 가슴을 떨게 하는 것이다. 다만, 상대방에게 외면당하거나 여의치 않은 일로 이별을 겪게 되면 마치 그 탯줄을 강제로 잘린 양 갑자기 절망이 찾아오고 급기야는 그에 대한 분노에, 원래 탯줄이 이어져있던 적이 없다는 듯 매몰차게 굴게 되는 일이 많은데 이별은 이별대로, 사랑했던 기억은 사랑했던 기억대로 각각 갈무리를 할 수 있는 성숙함이 어른이 될 수 있는 필요조건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가브리엘처럼, 떠나버린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동시에 아버지에게서 받았던 사랑을 차곡차곡 마음에 담아둘 수 있게 되면 말이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그는 많은 일을 겪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 새로이 소통하는 법을 배웠고, 사랑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법도 배웠고, 부끄러움 없이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법도 배웠다. 나이도 어린 녀석이, 스물 여섯 먹은 나조차 못하고 있는 일을 너무 의연하게 해내고 있다. 그래.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알량한 자존심, 버림받지 않았다는 믿음에 매달려 주변을 돌아보지조차 못하는 모습? 아니다. 그렇지 않다. 순간이나마, 아름다웠던 그 때를 '진정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마음이 아프더라도 사랑을 사랑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꿋꿋한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비록 그랬었더라도, 저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당신도 저를 사랑했었다는 것을 압니다.' 하는 그런 마음. 그래. 가브리엘. 그거 하나면 된 거야. 사랑하였으므로, 내 진정 행복하였네라. 그 말 한 마디. 쉬우면서도 정작 우리 어른들은 말하기 힘든 그것. 저자 마리네야 테르시가 우리네 덜 익은 어른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도 이 점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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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꾼 프랭클린 플래너 - 프랭클린 플래너 파워 유저들이 들려주는
한국성과향상센터 지음 / 바다출판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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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래너 유저를 위한 새 책이 나왔다. 자, 무엇부터 말해야 할까.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근 5년 간, 프랭클린 플래너를 써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런 책을 읽을 때 갖게 되는 마음가짐이 항상 둘로 갈린다. 이번에도 허탕치게 될 것인가. 혹은 쏠쏠한 정보 하나쯤은 건질 수 있게 될 것인가 하는 그 두 가지로 말이다. '프랭클린 플래너'라는 물건이 쉽게 덥석 사서 쓸 만큼 만만한 가격대의 물건도 아니고, 가치니 사명이니 하는 전문용어와 드넓은 목표설정 및 메모공간으로부터 받게 되는 심리적 압박도 만만치 않은 터라 그런지, 주변에서 이 물건 하나 사서 쓰고 있다는 사람 찾기 어렵고 몇년 째 꾸준히 쓰고 있다는 소위 '고수'를 만나기는 더더욱 어렵다. 말하자면, '팁' 얻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얘기다. 내년이면 유저 인생 6년차, 소위 '꺾인다'는 햇수에 접어드는데도 아직 내 눈에는 플래너가 '보이지' 않는다. 뭔가 더 잘 활용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핵심공략법이 있을 것만 같은데 그게 보일 듯, 보일 듯 하면서 보이지를 않으니...이건 뭐 20년 전, 유리창 틈으로 여탕 훔쳐보는 사춘기 남학생도 아니고...포기하기도 뭣하고 확 '보여주세요!!'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이 심정은 똑같이 플래너를 대하면서 한두 번쯤 좌절해본 사람만 알리라. 보여달라고 하고 싶어도 아, 주변에 고수가 있어야 보여달라고 조를 것 아닌가.

  때문에, 서점 책꽂이에서 플래너를 다룬 책을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목차라도 훑어보는 편인데, 그 때마다 살아있는 실례를 보기보다는 스티븐 코비 스타일의, '이론에 치중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플래너 관련 서적들에 대한 솔직한 내 평이다. 오랜 기간 동안 이런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는 명언으로 축약되는 심리상태를 유지한 덕택에, 이번에 나온 이 책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싶다.

앞부분은 '역시나' 싶은 플래너 입문용 가이드라는 느낌이었지만, 뒷부분에 나오는 실제 유저들의 이야기에서는 얻을 만한 쏠쏠한 팁이 이것저것 있어서, '그래, 내가 원하던 게 이거라니까!' 하고 실실대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이런 사용 팁은 원래 혼자 생각해내긴 어려워도, 남이 쓰는 법을 눈여겨보면 금세 자기만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법이니까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는 정보를 얻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 이번 책에서는 그런 점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준 것 같아서, 책값을 날리진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했다.

다만 너무 맛만 보여준다는 느낌도 없잖아 있어서, 다음 번 책에는 그 점이 좀 더 보충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잊을 만할 때쯤이면 이렇게 플래너를 소개하는 책을 내주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제 입문용 가이드북보다는 실제 유저들을 위한 책을 더 내주면 어떤가 하는 생각을 한다. '플래너 이렇게 이용하면 백전백승(?)' 이라든가 하는 제목을 달아서, 좀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사용팁만을 본격적으로 다룬다든가 하는 그런 책 말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플래너에 대한 인식을 들어보면 '비싼데 오래 쓰긴 어려운 물건'이라든가 '정말 바쁘게 살지 않으면 살 필요 없는 물건'이라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이런 인식이 퍼진 이유 중의 하나가 '정보부족'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내가 오바를 하는 걸까? 쓰기 어려운 물건, 오래 쓰기 힘든 물건...원래 그런 물건이면 플래너라는 것 자체가 이미 오래 전에 명맥이 끊겼어야 한다. 하지만 플래너 매니아도 있고 꾸준히 잘 쓰고 있는 사람도 있는 걸 보면 '이 물건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싶은 그런 것은 아님이 분명할 게다. 문제는 정보의 흐름이다. 플래너를 잘 쓰는 사람은 욕심도 많고 꿈도 많은 지라 주로 바쁘게 산다. 때문에, 굳이 시간을 따로 내서 인터넷 유저 카페에 팁을 올려준다든가 하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하고 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회사 측에서 직접 점조직마냥 흩어진 '고수'들의 인터뷰를 따고 정보를 모아들여 책으로 제공해도 좋지 않을까?

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중간에 실려있는 유명인사들의 인터뷰가 책의 컨셉을 맞추기 위해 약간 억지스럽게 들어간 부분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내용 자체야 문제가 없지만, 입문내용과 인터뷰와 사용팁이 들어가면서, 책의 색깔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색깔이 되어버렸다. 그 점이 좀 아쉬웠다. 다음 번에 책을 내줄 때는, 책의 컬러를 확실히 정해서 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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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3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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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3 무렵, 막 수능을 마치고 가,나,다군 입시대비 논술수업을 듣고 있을 때였다. 학원에서 나눠준 인문/사회/자연영역 교양서 요약집을 읽다가 그저 '묘한 제목도 다 있네' 라고 생각하고 넘겨버렸던 것이 이 책과의 첫만남이었는데, 그 때는 이 책이 '이기적 품성을 만드는 유전자'에 관한 내용인 줄만 알았다. 명색이 이과인 나였지만 선택과목을 화학2로 골랐기 때문에 생물2 쪽은 거의 깜깜하다시피 해서 제목에 유전자가 나오든 DNA가 나오든 큰 관심은 갖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용케 논술시험을 보지 않고 가군에 합격한 덕분에 학원에서 받은 요약집은 애저녁에 재활용 쓰레기로 분류해서 내다 버렸지만, 의외로 이 책은 대학 시절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꿈에 부풀어서 괜히 꼼꼼히 읽던 학보에 '새내기에게 추천하는 대학 필독교양도서' 명목으로 이 책이 소개되어 있기도 했고 전공 특성상, 물리-생물-화학 전 분야를 아울러야 하는 탓에(?) 고등학교 때만 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생물 공부를 대학 내내 하게 되었는데 그 때 유전 부분을 배우면서 은근슬쩍 교수님께서 도킨스의 이 책을 추천하고 지나가신 적도 있었다. 제목을 계속 듣게 되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긴 했지만 역시 학교 수업 따라가느라 바쁘고 친구들이랑 노느라 바빠서 모처럼 서점에 갈 때도 표지만 슬쩍 만져보고 오곤 했는데, 대학까지 다 졸업한 지금, 겨우 인연이 닿아서 이 책을 손에 쥐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결국 읽을 책은 읽게 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기는 한다.

 

  책을 찬찬히 읽어나가면서 가장 처음 느꼈던 것은 처음에 생각했던 '이기적 품성을 만드는 유전자'에 관한 내용이 전혀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히려 이 책의 주요 논지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유전자가 갖는 '이기성'에 관한 것으로, 우리가 행하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도 알고 보면 모두 이 유전자의 이기주의에 따른 결과라는 것이다. 이 이기성은 단순히 떡 하나를 두고 두 사람이 서로 먹겠다고 투닥투닥 싸운다는 피상적인 수준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껏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윤리, 도덕관에까지 모두 영향력을 끼치고 있을 정도로 절대적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충격이 컸던 부분은 부모자식 간의 이타성에 대해 서술해놓은 부분인데, '당연히' 부모니까, 자식이니까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기존의 윤리관을 철저하게 냉정한 이기주의로 분해를 하다시피 해놓아서 읽어나가면서 이유 모를 무서움에 부르르 몸이 떨린 적도 있다. 그 밖에, 책에 실린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되도록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해 확실한 혈연관계가 있는 순서대로 상대를 아낀다는 이야기며, 자신과 같은 계열의 유전자를 가진 개체를 보호하기 위해 본의 아니게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동물들-원숭이나 돌고래-의 이야기는 지금껏 우리가 '온정'이니, '따뜻한 마음'이니 하는 것으로 윤색해서 보아오던 것과는 전혀 다른, 아주 냉정한 것이었다. 서문에 나오는 한 여학생의 '인생이 허무하고 목적도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는 푸념도 이해가 갈 법 했다.

  또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신선했던 점은 유전자(gene)의 개념에 맞추어 인간에게 통용될 수 있을 문화적 유전자-밈(meme)의 개념을 만들어 놓았다는 점이다. 단순히 유전자 개념만을 가지고는 인간의 진화를 완벽히 설명해낼 수 없다. 인간에게는 이미 잘 발달된 두뇌가 있고, 경우에 따라 유전자의 명령에 굴하지 않고 후천적으로 학습 혹은 세뇌된 가치관에 따라 행동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점을 매끄럽게 설명해내기 위해 새 개념을 도입한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개념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어떤 사소한 것 하나도 모두 자신이 하고 있는 학문에 맞추어 생각해낼 줄 아는 학자의 면모를 엿본 것 같은 기분도 들어서 참 신기했다.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면 저도 모르게 모든 것을 자신이 하는 일에 맞추어 생각하게 되는, 자기만의 프레임이 생기게 된다는데 도킨스의 프레임이 아마 meme 부분에서 특히 빛을 발한 게 아닌가 한다. 이 meme으로부터 풋내기 과학도로서 도킨스에게 본받고 싶은 점을 우연찮게 알게 되어 개인적으로 기뻤다.

 

  출판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신선하고 충격적인 내용들이다. 인류학이나 동물학 쪽은 데즈먼드 모리스의 책 두어 권 읽은 것이 전부라서 깜깜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다위니즘 및 동물행동학에 관한 다른 책들을 더 찾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흥미를 끌었다. 특히 이 다음 저작이라는 '확장된 표현형'은 조만간 수중에 돈이 들어오는 대로 구입을 할 생각이다. 다만, 본문 445쪽이라는 적지 않은 양의 텍스트를 읽어내면서 독해속도에 도움을 주지는 못할 망정, 계속 태클을 걸어온 번역 문제는 말을 한 마디 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평소에 일반 소설은 1시간에 150쪽에서 200쪽, 논픽션이나 인문서적의 경우엔 1시간에 적게는 50쪽에서 많으면 100쪽을 읽는 정도인데, 이 책은 한 시간에 15~20쪽을 겨우 읽는 정도에 그쳤다. 읽으면서 내내 '내가 난독증에 걸렸구나'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한 페이지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는데, 이는 한 번 읽는다고 내용이 바로바로 머리속에 들어오는 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내용도 내용이지만 번역자의 글다듬기 내공도 약간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했다.  

  개인적으로 한국 작가의 저작보다 번역서, 특히 인문철학, 논픽션 계열 번역서의 문장에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편인데, 이는 그 분야가 읽는 이를 배려하여 성의껏 번역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비록 일반 소설 장르보다 책이 소비되는 정도는 적지만, 그 대신 꼭 읽어야 하는 사람, 읽겠다고 맘먹은 사람들이 작정하고 잡게 되는 분야가 이 쪽 분야이다. 호기심에 잡고 읽다가 금방 덮는 류의 책들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런 만큼, 이런 쪽의 번역을 맡는 사람들이 좀 더 매끄럽고 읽기 쉬운 번역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항상 갖고 있는데, 이 책의 경우에는 원문 하나하나를 꼼꼼히 옮기려는 노력은 엿보였지만 그 탓에 정작 한국인도 읽기 어렵다고 느끼는 한국어판이 되었다. 단번에 해석하기 어려운 비문도 간간이 보이고, 영어단어의 뜻을 그대로 옮기려다 그만 어색한 한국어 표현을 쓴 흔적도 보이는 것 같아서 그 점이 아쉬웠다. 전문 용어가 아니라면 원문에 실린 단어의 사전적 뜻이 아닌 다른 우리말 표현을 대신 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함으로써 독자의 '문장의 의미 이해'를 더 높일 수 있다면 말이다. 다음 판이 나오거든 그 때는 베타테스터를 뽑든지 해서 일반 독자가 더 읽기 쉬운, 흐름 좋은 글로 책을 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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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심리학 - 인간관계가 행복해지는
이철우 / 더난출판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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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갖고 있는 가장 옛날 기억인 유치원 시절부터 이미 사람을 대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상대가 누구인가에 상관없이 사람과 마주하기만 하면 아주 막연한 불안감이 나를 감싸는 바람에 어떤 때는 바보같이 말 한 마디를 제대로 꺼내지 못한 적도 있었다. 물론 계속 그런 상태로 살 수는 없으므로 철이 든 이후부터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스스로의 성격을 절차탁마했다. 보기 좋아 보이는 화법도 벤치마킹하고 스스로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한 발짝 떨어져서 관찰하는 방식으로 '어느 시점에서 마음을 가라앉혀야 하는지'를 몸에 익혀나가서, 지금은 일단 사회생활하는 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수준까지 스스로를 끌어올려놓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왜 그 어린 시절부터 사람 대하는 것이 어려웠을까?'에 대해서는 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 어머니도 나에게 명확하게 설명해주지 못했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막연하게나마 이번에 읽은 이 책 속에서 찾은 것 같다.  

  이 책, 이철우 씨가 쓴 『나를 위한 심리학』에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소한 행동들에서,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이면들을 뽑아낸다. 왜 우리가 시험 전날에 기를 써가며 책상정리를 해대는지, 왜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위기가 닥치면 그에게 살갑게 대하기보다 되려 무뚝뚝하게 굴게 되는지- 아무리 '안 그러고 싶다'고 생각해도 나도 모르게 하게 되는 이런 '청개구리 식'의 행동들이 실은 '셀프 핸디캐핑'이라고 하는 심리학적 용어 하나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분위기가 안좋아지면 괜히 한 일도 없으면서 스스로 책임감을 느낀다거나,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말을 제대로 못꺼내고 식은땀만 흘리는 경우는 대개 '공적 자기의식'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길든 짧든 인생을 살다보면, 주변에서 흔하게 보더라도 정작 그 안에 무슨 의미가 숨겨져 있는지는 미처 모른 채 그냥 흘려보내게 되는 자잘한 사건들이 있기 마련이다. 저자는 그렇게 우리가 놓치곤 하는 작은 행동들이 갖는 무의식적 근거를 낱낱이 끄집어내어 우리 눈 앞에 좌판처럼 벌여준다. 때문에 읽다보면 '아, 이게 그렇기 때문이었어?' 라고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일도 종종 있다. 또한 그렇게 알려주는 여러 정보를 바탕으로, 우리 앞에서 상대가 하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가지고 이 사람의 속내가 무엇인지 좀 더 수월하게 알아낼 수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단편적인 행위 속에 담긴 자잘한 지식만을 전달해주는 것은 아니다. 책의 초반에는 사람의 성격을 큰 범주로 나누어 놓고, 각 범주에 속한 사람이 평소에 살면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또는 어떤 점에 주로 어려움을 느끼는지를 서술해놓았다. 나처럼 대인관계가 어려운 사람은 주로 '공적 자기의식'이 높기 때문이란다. 좀 더 어깨에 든 힘을 빼고 남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반대로, 평소에 너무 멋대로 굴어서 눈밖에 난 상태였던 어느 밉상인 후배는 남 생각은 안하고 자기만 챙기려 드는, '사적 자기의식'이 충만한 상태였다. 이 친구는 좀 더 남을 배려하는 버릇을 들이는 것이 중요한데, 그 간단한 방법으로 거울을 자주 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해서 보는 버릇이 길러지기 때문이란다. 공적 자기의식이 높은 것도, 사적 자기의식이 높은 것도, 어느 한 쪽이 딱 바람직한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다. 새삼스레,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밖에도, 책에는 주로 권력지향적인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지배욕구'라든가, 평소에 왠지 모르게 사람들에게 미움받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반사회성' 등등에 대한 내용들이, 간단하게 앉은 자리에서 자신의 위험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짧은 테스트와 함께 나오고 있다. 아마 이 책을 읽는 사람들 중엔 '설마 나는 안그렇겠지' 하며 테스트에 임해도 생각보다 점수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에 충격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게다. 그만큼 스스로 생각하는 자기 모습과 실제의 자기 모습에 갭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나랑은 상관없는 얘기같은데…'라고 생각하며 테스트에 임했다가 가슴 철렁한 적이 있었다. 아직 애인도 없는 미혼처자이므로, 혼삿길을 우려하여 어떤 테스트였는지는 밝히지 않으련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는 각 챕터의 끝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모습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간단한 조언을 덧붙이는데, 처세서가 아닌만큼, 정말 '간단한' 수준에 그친다. 생각해보면 책을 읽는 사람은 많고 많은데, 저자의 한 가지 조언이 그 많은 독자에게 다 맞는다고는 볼 수 없으므로, 이런 일반론적인 간단한 조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스스로를 걱정하며 이 책을 찾아읽을 정도로 평소에 절박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굳이 저자가 구체적인 조언을 하지 않아도 책을 읽으며 깨달은 내용을 토대로 해서 서투르나마 스스로 행동을 감행할 수 있을 테니 이 편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웬만한 신흥컬트종교의 교리서가 아닌 이상 어느 누가 '나'에 대해 꼭 집어 이래라저래라 말해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책을 잡는 사람들 중에 혹시나 그런 생각-주로 우리가 정신과의사나 상담센터 카운슬러에게 헛되이 기대하는 정도의-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기대치를 조금만 낮추라고 권하고 싶다. 일반대중을 위해 쓴 책이므로 그에 걸맞는 수준의 지식만 들어있지, 몇몇 특이케이스에 대해 확실한 '교정'에 관한 해답이 나와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고민에 대한 어떤 힌트는 반드시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먼저 책을 읽어본 본인이 인정할 수 있다. 스스로의 모습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대인관계에 괜시리 자신이 없는 사람,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일반독자에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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