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리라이팅 클래식 4
강신주 지음 / 그린비 / 200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린비의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를 손에 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제목만 보고 끌리는 바람에 동생을 졸라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읽은 일이었다. 『열하일기…』는 산뜻한 제목 답게, 자칫 어렵게 다가올 수 있을 내용을 입담좋게 풀어나간 저자 덕분에 시종일관 웃음을 물고 책장을 넘길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리라이팅 클래식]이라는 브랜드가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되었다. 이번의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을 읽기로 마음을 정한 데에는 그 브랜드에 대한 강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 강신주는 그 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철학자 '장자'의 사상을 다시 세세히 들추어 내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전부터 철학에 큰 관심을 갖지 않은 일반 독자라면 장자의 이름과 사상을 그저 중고등학교 윤리교과서에서 지나가는 한두 줄로만 접했을 것이다. 본인도 역시 그러하다. 장자에 대해 본인은, 노자의 뒤를 잇는 사람, 세속에 뛰어들어 소통하기보다 스스로의 도의 완성을 추구했던 사람이라는 막연한 이미지만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의 장자는 우리가 알던 그가 아니다. 아니, 우리는 지금까지 그를 반대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책장을 넘길 때마다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는 책에서 장자의 사상이 잘못 이해되고 있는 부분을 세세히 집어내어 어디서부터 그런 왜곡된 이해가 시작되었을 지를 찬찬히 짚어준다. 장자가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제시했던 '망각-기존의 선입견, 초월성에 대한 선망의 폐기'가 정작 후세 사람들에게는 힘든 삶에 대한 망각, 초월성을 손에 넣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망각으로 잘못 이해되어 왔다는 것으로 말문을 여는 저자는 그러한 그의 사유가 지금까지의 우리의 이해와는 달리, 타인과의 수평적 연결을 최종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과 그로 인하여 이루어내고야 말 소통을 사상의 종착점으로 삼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장자' 내의 여러 에피소드를 동원하여 독자에게 낱낱이 납득을 시켜주고 있다. 이 때, 여러 은유적인 에피소드들과 더불어 동서양의 여러 철학자들이 제시한 비슷한 맥락의 사상을 같이 곁들여놓고는 어려운 용어는 따로 설명도 해주고, 그 사람들의 사상과 장자의 사상을 나란히 비교해가며 설명한 점이, 단순히 이렇다저렇다 하는 결론만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이해가 쉬워 좋았다. 그 동안 호기심에 접한 이런저런 철학서엔 그런 거두절미 식의 서술이 얼마나 많았는지! 기꺼이 내공 없는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울 법한 서술방식을 버리고 마치 아버지가, 형이 자식과 동생에게 이야기해주듯 나직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저자의 펜 끝이 참 고맙게 느껴졌다.
  각 장의 배치도 읽는 이로 하여금 지루하지 않을 정도의 길이에서 끊어주어 버스 안 앉은 자리에서도 용케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고 쭉쭉 읽어낼 수 있었다. 또한, 중간중간 따라오지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전장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을 거듭 이야기해주는 배려가 보이는데, 이는 '불필요하다'싶기보다는 '맞춤한 때에 다시 일깨워준다'는 느낌이었다. 따로 정리하면서 읽지 않아도 그렇게 알아서 길잡이를 내밀어주어, 그것만 잡고 열심히 산을 오르다보니 어느 새 산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었다는 기분이라 읽는 내내 힘든 줄도 몰랐다.

  책장을 덮고 나서는 곧 마음이 즐거워졌다. 지금은 '나 혼자 읽지 말고 한 세 권쯤 더 사다가 책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한 권씩 선물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좋은 내용을 부담없이 읽어낼 수 있어 친구에게 선물하면서도 받는 사람의 취향차를 걱정하느라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좋을 책, 단순한 요약서가 아닌 '저자와 같이 생각해보기'를 어렵지 않게 이끌어내는 책. 이런 책을 두고 양서라고 할 터이다. 요즘 좋은 책을 찾기 어디 쉽겠는가.
 
  덧붙여, 고미숙의 『열하일기…』를 읽고서 막연히 '아, 좋은 책이었다. 다음에 다른 시리즈를 더 읽고싶다.'하는 생각을 했다면 이번의 『장자…』를 읽고서는 '이런 것이 책을 읽는 재미인가'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점이 참 고맙다.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혹은 흘려넘기는 독서만 하다보니 '책을 읽으며 같이 생각한다'는 것은 요즘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머리에 낀 이끼를 좀 벗겨낼 수 있었다는 점이 고마운 것이다. 그 외에도, 어렵다는 선입견을 가진 분야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아직 옹알이하는 아기들에게 주는 건강이유식처럼 꼭꼭 내용을 씹어먹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이 책, 아니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가 갖는 미덕일 것이다. 때문에, 차후에 출간될 시리즈 안의 다른 책들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 그린비에 모쪼록 초심을 잃지 말고 지금처럼 좋은 텍스트를 골라 책으로 내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다.

댓글(2) 먼댓글(1)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저자 특강 안내!
    from 도서출판 그린비 2007-09-04 09:29 
    안녕하세요.돌아온 리라이팅 클래식,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출간을 기념해서 저자 강신주 선생님을 직접 모시고 특강을 진행합니다. 그동안 속세를 초월한 '신선사상'으로 오해되어왔던 장자의 철학을 현실참여적인 실천의 철학으로 재해석하고, 그 철학을 통해 갈수록 치열해져가는 우리 사회의 갈등 구조를 깨트릴 해법을 제시하려는 저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타자와의 소통과 연대를 추구한 철학자, 장자!2,000년의 세월을 넘어 현..
 
 
leeza 2007-09-09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라이팅 시리즈의 책들을 볼 때마다 참 어려운 책들을 이렇게 쉽게 재밌게 풀어낼 수도 있구나 하고서 느끼게 된다죠^^ 장자의 사상은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재밌더라구요~ 리뷰 잘 보고 추천하고 갑니다~

Solitaire 2007-09-10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라이팅 클래식, 정말 좋은 기획인 것 같아요^^ 맘같아선 한 100권 연속 쫘라락 나와줬으면 좋겠어요>.< 두고두고 읽어도 좋은 책들이지 않아요?*^^* 추천해주셨다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황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