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리뷰할 책 후보를 골랐다. 가급적 '좋은 책'만 리뷰할 생각이다. 

<불혹의 문장들>은 기실 '불혹'을 위한 책으로 한정하기엔 아까운 책이다. 하지만 나와 함께 늙어가는 '벗'에게, 편지 형식으로 서평을 쓰려고 한다. 언젠가 IVP 북뉴스에 연재할 때 종종 썼던 방식이다. <도쿄 산책자>는 기존 강상중 교수의 책보단 사실 별로다(뭔가 과도한 의욕으로 '기획'된 책은 대체로 그러하다). 그럼에도 강상중이므로, 평균 이상의 책이다. <남성과잉시대>의 부제는 "'지워져버린 소녀'들의 진실과 도래할 인류의 재앙"이다. 흥미롭도다. 한윤형의 청년 세대 다음으로 '잉여'가 될 유력한 후보는 '남성'이다. 잉여는 과잉의 산물이므로. 고로 '남성잉여시대'를 준비하는 각오로 이 책을 읽는다. <나라는 여자>는 매혹적인 위로의 책이다. 아내를 위해 읽고, 아내를 위해 쓰고 싶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는 5.18 즈음에 쓰고 싶다. 요즘 워낙 소설을 안 읽어 유독 문학이 고프다. 또한 공선옥을 워낙 좋아했던 터라, 기대가 크다. <협동의 경제학>은 주류경제학을 극복할 새로운 사회적 경제학 원론 수준을 욕심내는 책이다. '협동조합 시대'를 원한다면 공부해야 할 책. 서평은 쓰지 못하더라도 공부는 해 볼 작정이다. 

물론 관계자의 상황상 실제 서평까지 쓰게 될 책이 얼마나 될지는 며느리도 모른다는 소문이 유력하게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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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청년 논객 한윤형의 잉여 탐구생활
한윤형 지음 / 어크로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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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유일한 희망을 향한 '청춘'의 결기 혹은 위로  

[서평]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한윤형 지음│어크로스 펴냄│2013년 4월)


'청년 논객'으로 불리는 한윤형의 책인데다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마저 그렇게 읽힐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이 책의 독자가 꼭 '청년'일 필요는 없다. 청년 세대 담론의 중요성은, 부모 세대 혹은 386세대와의 비교 우위 때문이 아니다. 무엇보다 청년 세대는 '한국 사회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표층(表層)'이기 때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등록금 문제와 청년 실업 문제는 그들만이 아니라 그들 부모 세대의 고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책은 이 시대에 도래한 '잉여의 비루함'을 다루고 있고, 그것은 사실 우리 모두의 현실인 까닭이다. 


잉여 사회의 절망과 

세대론 논쟁의 허망함을 넘어 


한윤형은 스스로를 '잉여'로 규정한다. 잉여는 과잉의 산물이다. '소수의 인간이 관료 조직과 자동화 기계를 붙들고 화석 연료를 펑펑 쓰며 너무 많은 물건을 생산하자, 그 공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인간 대부분이 잉여가' 되었고, 그들은 '아무리 열심히 버둥거려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자의식을 가졌다.  

저자의 관찰에 의하면, 한국식 자본주의는 '집값은 높이고 사람값은 낮추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특히 IMF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IMF 이전에는 기업들은 빚을 져도 개인들은 저축하는 사회였지만, IMF 이후에는 기업들만 돈을 쌓아두고 개인들은 빚을 내어 돈을 굴리는 사회로 변모했다. 부자가 되는 방식은 대개 부동산의 지가 상승에 의존하는 것이었고, 이제는 월급만으로는 자립을 꿈꿀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기성 세대는 경제가 성장하면 자신의 삶도 상승하는 것을 경험했지만, 지금 청년 세대는 '자기 삶의 전성기가 십대'였을 때라고 말한다. 십대 이후 끊임없이 하강하는 인생이다. 한때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기 때문에 '루저'로 취급받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의 '루저'는 학벌 구조 안쪽에 있다. 즉 '오늘날의 잉여 인간들은 학벌 사회의 잉여 인간들'이다. 


'학벌 사회의 승자이면서 잉여 인간이 된' 이들은 극심한 열패감에 시달린다. 명문대 출신의 장기하가 부른 <싸구려 커피>의 화자는 "뭐 한 몇 년간 세숫대야에 고여 있는 물마냥 그냥 완전히 썩어가지고" 살았다고 말한다. 이는 잉여들의 일상, 그 열패감의 서사인 것이다. 


'잉여 세대'를 둘러싼 세대론 논쟁에서 정작 청년들은 논의의 주체에서 제외되어 있으나(또는 그들 스스로 무관심했거나), 그 세대론이 유통되고 인용되는 과정에서 당사자인 청년들은 어떤 사회적 문제나 정치적 패배의 책임을 추궁당하곤 했다(예를 들면, 김용민의 "20대 개새끼론"). 그런 면에서 대부분의 세대론은 공허하거나 부당하다. 


부모의 욕망에 엄밀하게 조응하여 움직이는 피에로

그중에서도 유의미한 것은 '88만 원 세대론'이다. 2007년 출간된 우석훈과 박권일의 책 <88만원 세대>는, '20대의 대부분이 88만 원을 받는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게 될 거라는 묵시론적인 예언'이다. 이는 기존 계급론에서 제기되던 불평등의 문제가 앞으론 특정 세대에게 전이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물론 사회과학적 근거를 인용한 합리적 반론도 있었고, 변희재와 <조선일보>에게 386세대를 공격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한윤형이 보기에 '88만 원 세대론'을 수용한 이들은, 원래부터 88만 원을 벌었던 청년들이 아니라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 왔는데도 88만 원을 벌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진 젊은이들'이었다. 즉 이 담론의 성공 배경은, 중산층의 불안 심리 내지는 중간계급의 욕망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세대론의 핵심은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혹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한국 자본주의의 실패와 직결된다. 그리고 저자의 안타까움은 '88만 원 세대'와 '쌍용자동차 투쟁'이 만나지 못한 그 막막한 현실을 주목한다. 

88만 원 세대가 쌍용자동차 투쟁과 만나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쌍용의 노동자들이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애저녁에 포기한 것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용 안전을 보장받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라는 것은 젊은이들의 상상 속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166쪽)


성장 동력을 상실한 한국 자본주의는 노동시장에 처음 진출하는 젊은 세대의 임금을 낮추고, 대학생의 85퍼센트를 비정규직으로 받아들이되 언제든 그들을 거세하는 방식으로 자본의 효율성을 확보한다. 이 지점에서 세대론과 계급론은 충돌하면서도, 상생의 가능성을 지핀다. 물론 당장 '뾰족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 현실'이지만, 바로 그 막막함이 현재 주어진 유일한 출발점이다. 




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본인이 거세당한 욕망을 '권리'로 인지하고, 그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현재 투쟁하는 이들과 연대하는 세상은 지금으로선 하나의 꿈이다.(167쪽)


출발점과 꿈을 명시한 한윤형의 희망은, 각성과 연대를 촉구한다. 허나 그 실효적 수행은, 우리의 처한 현실과 위선을 조망하는 것에서부터다. 부모의 욕망과 자녀의 욕망이 구분되지 않는 오늘날, 청춘의 시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부모의 욕망에 엄밀하게 조응하여 움직이는 피에로'가 있을 뿐이다. 청년 세대에 가장 비판적인 386세대는 기러기 아빠와 원정 출산 등의 행태를 기꺼이 감행한다. '대한민국 교육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비판과 기러기 아빠의 욕망은 공존할 수 있을 뿐더러 일맥상통'하는 것이 우리 진보의 현실이다. 

올더스 억슬리의 서사 "멋진 신세계"는 역설의 희망이다. 부질없는 욕망과 '꼰대짓'을 성찰한 저마다의 각성이 전제될 때, 다수의 루저가 교감하고 연대하는 것에서 역설의 희망은 움튼다. 한윤형은 같은 세대의 동지더러 '더 이상 부모와 선배 세대를 원망하지 말자'고 말한다. 청춘을 위한 나라가 없다면, '우리'가 다른 나라를 만들면 되니까.  

장발장과 부모의 순정

지난 대선은 보수와 진보로 양분된 세력의 놀라운 결집을 보여주었다.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20대의 높은 열기는 진보 진영에게 승리의 환상을 선사했으나, 50대는 '투표율 90퍼센트'라는 경이적인 기록으로 그 환상을 무참히 무찔렀다. 저자가 보기에, 2030세대와 50대 이후의 세대가 대결한 것처럼 보이는 세대 분열의 구도는, 우리가 처한 비루한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그들은 부모-자식 관계로 얽혀 있으며 생존에 대한 공동의 모색과 연대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언어들의 모략에 속아 '각 세대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따로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혁명에는 동참하지 않지만 목숨을 걸고 수양딸의 정인을 구하는 장발장은, 당신이 가진 전부를 자녀에게 물려주겠다는 우리 부모의 순정과 멀지 않다. 바리케이드에 갇힌 희망과 그곳에 뛰어드는 장발장의 희망은, 지향점은 다르지만 공동의 운명에 처했다. 우리 현실이 그러하다. 장발장은 죽음 이후, 혁명군의 대열에 합류하여 '민중의 노래'를 부른다. 우리도 그러할 수 있지 않을까. 아득할지 모르나, 현재로선 거의 유일한 희망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모든 세대론을 뛰어넘는 '화해'다. 


앞서 이 책은 청년을 포함한 모든 세대를 위한 책이라고 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청년을 자녀와 제자로 둔 부모와 선생들이, 그리고 소위 '386'을 위시한 모든 '좌파 꼰대'들이 이 책을 읽기 바란다. 청년 세대론에 대한 당사자 반론이 담긴 '2부'를 곱씹어 소화한 후에, '1부'에 담긴 저자 한윤형의 처연한 잉여 인생론과 사적 비망록을 읽어내길 바란다. 이 과정에서 '공감'에 이를 수 있다면, '3부'를 통해 그 '희망'에도 닿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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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던지고 싶다 - 아동 성폭력 피해자로 산다는 것
너울 지음 / 르네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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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견뎌야만 이를 수 있는 생존자의 길
[서평] 꽃을 던지고 싶다_아동 성폭력 피해자로 산다는 것 
(너울 지음르네상스 펴냄2013년 3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여자 '정혜'의 일상은 언뜻 단조롭고 평화로운 듯 보인다. 꽃이 놓인 식탁, 아파트 화단에서 주워온 고양이 한 마리가 노니는 풍경 속에 그녀는 홀로 외롭다. 어린시절 고모부에게 강간당한 '정혜'는 결혼하지만, 신혼여행에서 '첫 섹스'를 묻는 남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결혼을 끝내고 만다. 고모부를 죽이는 것도 자신을 용납하는 것도, 그녀의 몫이 아니다. 어느 날 그녀에게도 사랑이 다가오지만, 그 사랑이 그녀의 오랜 상처를 다독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영화 <여자, 정혜>(2005)의 이야기다.


ⓒ LJ 필름


아동 성폭력 피해자로 산다는 것

한 달 넘게 책상에 놓여있던 책 한 권을 다시 폈다. 두려움에 차마 몇 장 못 넘기고 덮은 책이다. 들뜨지 않은 분홍 패랭이꽃 빛깔의 표지, 제목은 <꽃을 던지고 싶다>. '아동 성폭력 피해자로 산다는 것'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에서부터 치유는 시작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치유는 폭력 당한 경험을 잊으려는 노력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여성주의 시각으로 재해석할 때 가능하며, 이때 그들은 희생자가 아니라 생존자가 된다"고 썼다.

이 책은 13살 때 성폭행을 당했던 여성이 25년 만에 그것을 기록하면서 시작된다. 그것을 드러내 말하고 기록하는 것 자체가 투쟁이다. 저자는 그 투쟁의 과정을 때로 처참하고 때로 죽고 싶을 만큼 아프게 담아냈다. 피해자가 생존자가 되는 과정은 어쩌면 죽음을 관통해야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열세 살을 살고 있는 서른여덟의 몸을 가진 괴물이 돼 있었지만, 세상은 나의 고통과 치유와 상관없이 변화하고 성장했다. 오직 나만 25년 전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본문 62쪽)

저자는 9살, 12살, 13살, 그리고 스무살 언저리 대학생 시절을 걸쳐 수차례 성폭력을 당했다. 엄마가 일하러 가고 방치된 상태에서 얼굴도 모르는 아저씨에게, 삼촌이라는 친족에게, 등굣길에 만난 황토색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아저씨에게, 그리고 대학생이 돼서도 아르바이트하던 곳에서 고용주에게 당한다. 9살 이후, 그녀는 저항할 수 없었다. 그 지독한 두려움은 그녀의 정신까지 짓밟았다.

유독 13살 때의 상처가 가슴에 남았다. 그날의 폭력이, 어느 날 그녀의 꿈속에서 재현됐다. 단순한 꿈 같았으나, 그녀의 삶까지 죽을 것 같은 공포로 지배했다. 불면의 날이 이어졌다. 해마다 3월이 되면 몸은 이유 없이 아팠다. 그녀의 몸은 그 해 4월에 있었던 폭력을 기억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신체화장애(somatizing syndrome)가 반복해서 그녀를 괴롭혔다.

그럼에도 그녀는 용기를 내기 위해 몸부림친다. 한때는 죽으려고도 했다. 삶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죽음만은 명확하게 자신의 선택이길 바랐다. 그러나 어느 날, 도서관에서 폴 발레리의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라는 글귀를 만나 '나도 살고 싶다'란 희망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녀는 상담소를 찾았고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자조모임'에도 참여했다.

치유는 결코 천사의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괜찮아졌다고 여기는 순간, 지독한 우울증이 예고 없이 그녀를 점령했다. 생존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느 순간 내 몸과 마음이 점령당하는 식민지의 상태'와 같다. 반복되는 일상이며 고통이었다. 평온한 삶은 여전히 그녀의 것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끝내 절망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엇보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폭력에 맞서고 싶다.

"여성을 꽃으로 비유하면서 꽃을 취하는 행동을 자연의 섭리라고 말하는 세상을 향해 꽃을 던지고 싶다. 꽃이라고 '은유되는 여성'을 던져버리고 싶다. 성폭력 피해를 양산하는,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에게 폭력적인 문화를 향해 꽃을 던지고 싶다."(본문 204~205쪽)

그녀는 아직 투쟁 중이다. 극심한 전투 끝에 거둔 잠깐의 승리는 언제 다시 패배의 나락에 떨어질지 모른다. 부디 그녀가 그 투쟁에서 승리하길, 아니 몸과 마음이 더 이상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아직도 투쟁 중인 '그녀들'을 위해

그녀에게 '아동 성폭력의 경험은 지독한 가난과 같은 그림으로 새겨져 있다'. 모든 피해 여성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가난과 성폭력의 문제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고 설명될 필요가 있다. 범죄심리 전문가인 이수정 교수는 "아동 성폭력이 가난한 동네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한다. 가난한 아이들이 성폭력에 취약하다는 것은 성폭력이 단순히 성의 문제가 아니라 약자에 대한 폭력의 문제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성폭력 피해 여성들은 사실상 방치돼 있다. 국가는 가해자 처벌에만, 그것도 이슈가 될 때에만 집중한다. 성폭력 피해자에서 '생존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인프라가 확보돼야 한다. 치료는 물론, 최소한의 학업도 마쳐야 하고 직업 교육도 받아야 한다. 만만찮은 재정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하지만 국가는 피해 여성들을 돌보는 일을 대부분 여성단체로 떠넘긴다.

그녀의 바람대로, 이 고통스러운 기록이 또 다른 피해자들에게, 특히 아동 성폭력에 희생당한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단초가 되면 좋겠다. 책을 읽으며, 그녀처럼 무도한 폭력을 당한, 숱한 피해 여성들이 생각났다. 더 큰 문제는 그 폭력 이후의 삶이다. 처음 겪는, 처음 걷는 생존자의 길. 상상만으로도 아득하고 아찔한 그녀들의 세상, 그리고 삶. 우리는 그녀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영화 <여자, 정혜>를 보고 난 후,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여자였던 '정혜'를 모두가 이해하게 됐던 것처럼, 이 책 <꽃을 던지고 싶다>를 읽은 이들이 '아동 성폭력 피해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섣부른 동정이 아닌, 사려 깊고 진중한 실천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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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신간 목록 중 필립 로스와 로맹 가리의 소설은 유독 관심이 간다. 스베냐 플라스푈러의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와 폴라 스테판의 <경제학은 어떻게 과학을 움직이는가>도 흥미롭다. 이 두 책은 출판사에 대한 주목을 동시에 요한다. 주목할 만한 책의 배후에 주목할 만한 출판사가 있다는 것은, 독자로서 반가운 일이다. 반면 쌤앤파커스에서 김영란, 김두식의 책이 나왔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어떤 맥락에서? 비밀이다). 아무튼 이 다섯 권의 책은, 주목할 만한 목록 중에서도 '콕' 집어 기억해 두련다.  





1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필립 로스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4월
15,800원 → 14,220원(10%할인) / 마일리지 79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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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드디어 번역되었다. 흔히 ˝미국 3부작˝으로 꼽히는 작품. 미국적 삶, 그리고 이데올로기에 대한 깨알 조바심 같은 것이 이 책의 국내 출간을 유보시켰을까. 500쪽이 넘지만, 5월에 꼭 읽어야할 소설로 찜한다.
레이디 L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4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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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혁명, 사랑의 혁명, 관용의 혁명. 모두 저마다의 자리에서 혁명 중`.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 경쟁 사회에서 자유와 행복을 찾아서
스베냐 플라스푈러 지음, 장혜경 옮김 / 로도스 / 2013년 4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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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금욕과 방탕의 자리에 우리를 흥분시킬 향락이 들어서야 한다.` 그것은 바로 노동의 향락이다. 노동 과잉 혹은 중독의 나라, 우리나라 노동자들께서 이 책을 많이 읽으시길 바란다. (근데 좀 놀아보니까 알 것도 같다. 그때 왜 우울했는지. 이렇게 쓰니, 아, 또 우울하고나.)
남성 과잉 사회- 지워져버린 소녀들의 진실과 도래할 인류의 재앙
마라 비슨달 지음, 박우정 옮김 / 현암사 / 2013년 4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13년 05월 04일에 저장
절판
빌어먹을, 과잉 혹은 잉여의 남성들. 빌어먹을, 남성 과잉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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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2013년 5월호)_“독서선집”


'공부의 길'을 숙고하다

공부하는 삶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지음│이재만 옮김│유유│2012)

청춘의 커리큘럼 (이계삼 지음│한티재│2013)




기독교는 흔히 책의 종교라 불린다. 기독교인은 '그 책의 사람들'이어야 마땅하다. 식민 지배를 받던 이스라엘은 '그 책'의 예언을 소망으로 삼아 험난한 세월을 견뎌냈고, 마침내 이 땅에 오신 예수로 말미암아 초대교회는 그 책을 완성하고 확장하였다. 

  ‘그 책’은 모든 사람에게로, 모든 학문적 영역으로, 모든 사회의 환희와 고통 속으로 확장되어야 마땅하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계승자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는 그 확장을, 지성인에게 주어진 고귀한 소명으로, 공부하는 삶이라는 격조 높은 제목으로 소개하고 권면한다.  


  먼저, 이 책의 치명적 단점 몇 가지를 지적하고 넘어가자. 역자 이재만은 이 책의 내용 일부가 ‘시대에 뒤진 듯한’ 예스런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지성인은 남성으로 상정하고 아내의 역할은 남편의 공부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세르티양주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버지니아 울프(1882‐1941)나, 이 책이 쓰이고 널리 읽힌 시기에 성장한 한나 아렌트(1906‐1975) 등을 떠올리면, 이 책의 전제는 예스럽다 못해 가부장적 독선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딜레탕티슴(dilettantism, 향락적 문예도락)’을 가치 없는 것으로 배제하며, 대부분의 소설은 정신에 해롭다고 단정짓는 것도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세르티양주가 말한 ‘책을 다루는 방식’에서, 이 책을 사용하는 방법을 차용할 수 있다. 즉 이 책은 공부라는 우리의 목표에 대한 하나의 출발점으로선 매우 훌륭하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 책 문제에서 핵심이다. 책은 신호, 자극제, 조력자, 기폭제다. 책은 대체물도 아니고 속박하는 사슬도 아니다. 우리의 사유는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한다. 책을 읽을 때 저자는 목표가 아니라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246쪽)
 
  이 책은 지성인에게 주어진 소명으로서의 공부를 다루고 있다. 지성인이란 ‘지적인 일에 일생을 바치려는 사람’이며, ‘지적 소명’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제1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제1본성은, 진리가 드러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 진심으로 우리의 전부를 바칠 때, 진리는 우리에게 자신을 허락한다. 따라서 공부하는 삶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순결한 진심과 곧은 의지이다. 
  지적 소명은, 어떤 지적 성취에 만족할 수 없다. ‘위대한 사유는 심장에서 나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적 소명은 도덕적 덕목 속에서 그 가치를 입증한다. ‘참된 것과 선한 것은 같은 토양에서’ 자라며, 순결한 영혼이 순수한 사유를 담보하며, 마침내 신과 함께 진리에 동참한다.

  세르티양주는 무엇보다 공부하는 자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고 다독인다. 모든 여건이 척박하더라도 자신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공부하는 삶은 시작된다. 비범한 재능이 아니라 끈질기고 집요한 노력이 요구된다. 공부하는 사람은 마치 정성을 들여 착실히 일하는 노동자와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루에 ‘두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열정적인 고독’과 ‘고요한 확실성’을 쏟아부을 수 있는 ‘두 시간’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단언한다. 

  이 책은 독자를 설득하지 않는다. 세심한 격려로 우리의 가슴을 북돋기도 하고, 때로는 단호한 어조로 여러 세심한 규칙을 요구하기도 한다. 소리 내어 읽고 싶은 단단한 문체로 실천적 적용을 모색한다. 텍스트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공부하는 삶을 향한 불끈 솟는 결연한 의지에 이르게 된다. 바로 그때, 세르티양주는 거듭하여 공부의 목표를 되새긴다.


읽기와 공부가 정신과 삶이 되게 하라.(203쪽)


  이 책의 부제는 “배우고 익히는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지식”이다. 좋은 책이고, 공부하는 삶에 대한 충만한 자극으로 그득한 책이다. 앞서 지적한 몇 가지 문제를 제외하고, 저자가 제시하는 여러 사례를 지금의 상황에 맞게 적절히 변용한다면 대단히 유용한 실용서가 될 것이다. 이만큼 품위 있는 실용서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또 있다. 공부하는 삶이 지향하는 목표가 너무 막연하다. 정신과 삶이 되는 공부는, 그래서 과연 무엇을 이루는 것인가. 세르티양주의 시대가 아닌, 우리의 시대에 공부는 과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 모름지기 소명이란 훨씬 구체적인, 담대한 그 무엇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공부하는 삶’ 너머 ‘공부의 길’

성서적 가치는, 갇힌 진리가 아닌 세상으로 확장된 진리로서 실천되어야 한다. 공부하는 삶은 그 길을 찾는 것이며 그 길은 이 땅의 ‘상황’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공부의 길은, 깊은 사유이되 구체적인 실천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청춘의 커리큘럼》의 부제는 ‘고민하는 청년들과 함께하는 공부의 길’이다. 저자 이계삼은 11년간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일하다가 퇴직 후, 밀양 송전탑 반대대책위 일꾼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의 대부분은 ‘밀성고 2학년 4반 교실’에서 썼다고 한다.


그때 아이들은 숨죽여 공부를 하고 있었고, 가끔 나는 아이들의 무구한 얼굴들을 바라보곤 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들 앞에 놓여 있는 세상사의 격랑들을 생각하며, 그들이 견뎌 내야 할 세파의 고통을 생각하며 마음 저리곤 했다. 이제 이 책을 그 아이들과 그의 친구들에게 바치고자 한다.(8‐9쪽)


  저자는 '청년들이 이 가망 없는 대학과 취업의 좁다란 울타리를 걷어차고, 드넓은 들판을 질주하는 그날을 기다린다'고 썼다. 이 책은 E. F. 슈마허와 웬델 베리, 하워드 진, 도로시 데이, 다카기 진자브로 등을 통해 공부의 이유를 찾고 대중문화, 민주주의, 핵 문제, 전쟁과 평화, 문학, 교육, 철학, 영성 등의 분야에 있어 공부의 길을 탐구한다. 무엇보다 ‘자식 같은 제자’를 향한 ‘아비 같은 스승’의 마음이 담겨 있다. 


  세르티양주와 이계삼의 공통점은, 치열한 고독이라는 전제, 그리고 ‘비틀거리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사람이 걸음을 더 멀리 내딛는다’는 각오를 가졌다는 것이다. 세르티양주가 공부의 자세와 방법을 다루고 있다면, 이계삼은 그 공부가 성스러운 독방이 아닌 거친 광야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디, 세르티양주에게 한껏 자극받은 공부에 대한 충만한 결의가, 이계삼이 교직을 내려놓고 뛰어든 그 광야 같은 세상에서 단단한 걸음으로 펼쳐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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