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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 - 테오에세이
테오 글.사진 / 삼성출판사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여행기 관련 책은 거의 읽지 않았던 것 같다. 이상하게 손이 안 갔다.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타인의 여행기를 읽고 있으면 다른 분야의 책들과는 달리 저자와 나 사이의 거리감이 굉장히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일상을 벗어나 저자와 함께 자유로운 여행을 즐기고 있었지만 나를 훑고 지나가는 어제와 같은 무미건조한 도시의 바람과 내일과 같을 일상의 소음들은 이내 나를 무덤 같은 현실로 끄집어 내고야 말았다. 물론 책을 집어 던지고 저자의 흔적을 따라 훌쩍 떠나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현실은 시간과 경제적인 이유 같은 갖가지 핑계거리들을 내 앞으로 잔뜩 밀어 놓으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결국 저자의 달콤한 여행 발자취에 상대적 무력감을 느끼며 책을 덮어버린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제목부터가 남달랐다. <내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이 아닌 <당신의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이라니……. 자신의 여행담을 일방적으로 들려주는 게 아니라 마치 나와 함께 여행을 가자고 제안을 하는 것 같았다. 시린 쪽빛 하늘 밑으로 낮게 깔린 새하얀 뭉게구름, 지평선 끝까지 소금으로 뒤덮인 소금사막과 일렬로 줄을 선 양떼 같은 소금더미들. 볼리비아의 그 유명한 유우니 소금사막이다. 바로 이곳을 함께 여행하자는 것이다. 굳이 거절할 이유가 있겠는가? 나는 주저없이 'Yes!!'를 외치며 그를 좇아 마음의 짐을 꾸렸다.

 책 표지에서 암시했듯이 이 책은 위로 넘겨 보는 독특한 디자인이었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애용하던 스케치북─그 크기를 1/4로 축소 시켜놓은 듯한─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다기 보다 그가 여행에서 찍어 온 비디오 영상을 감상하는 것 같았다. 다른 여행기에 비해 무엇보다도 독특하다 느껴졌던 건 그가 거쳐간 지명은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었지만 그 곳에 대한 지리적 위치나 정보에 대한 그 어떤 설명도 이 책에선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단지, 그의 발걸음이 옮겨질 때마다 그 곳엔 사람이 있었고, 그 곳의 전통 음식이 있었으며,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풍습과 문화가 있었다. 그리고 그가 담은 이채로운 색감들이 남실대는 사진들 속에서 그의 말랑말랑한 감성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는 여행의 시작부터 수줍은 존댓말로 말을 걸어왔다. 존댓말은 일반적으로 상대방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만들지만 때론 반말보다도 더 쉽게 친근함을 느끼게도 만든다. 그의 존댓말은 후자의 느낌이었다. 덕분에 어렵지 않게 그의 바로 곁에 나란히 걸으며 그가 보고 듣고 느낀 모든 여행을 공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간혹 여행지에서 그의 나라를, 꼬레아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질문을 건넬 땐 달랐다. 그가 기억하는 꼬레아는 온통 잿빛으로 물든 도시의 사막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가 강하게 나를 밀어내거나 저만치 앞서 걸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난, 그에게 좋은 인상으로 남겨지지 않은 꼬레아에서 그의 곁으로 다가갔으니까…….

 여행 후반부 쯤, 유우니 소금사막을 걷다 발견한 플라밍고. 날개를 다친 플라밍고를 바라보며 그가 설명하는 꼬레아의 모습이 그토록 우울했던 이유를 담담하게 밝혔다. 그가 말하길, 그의 첫 여행 에세이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방문했습니다>─후에 개정판을 발간하면서 이 책은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어요>라는 제목으로 바뀐다.─의 곳곳에 흩뿌려진 슬픔의 근원이라고도 했다. 그의 첫 여행 에세이를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 책에서도 충분히 아직 아물지 않은 그의 상처가 느껴졌다. 비교적 용감했던 그의 고백으로 나의 작은 오해는 풀렸고 그의 선택적 기억 속에 담긴 어두운 꼬레아의 모습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계곡 마을 꼬로이꼬, 꼬추나 폭포, 호수 마을 꼬파까바나, 티티카카 호수, 볼리비아의 마지막 마을 까사니, 아마존을 만드는 마을 루레나바께, 세계에서 가장 큰 코챠밤바의 그리스도상, 대도시 코챠밤바, 볼리비아 최대 코카 마을 차빠레, 탄광 도시 뽀또시, 유우니로 향하는 기차가 출발하는 작은 마을 뚜삐사, 소금 사막을 지키는 마을 꼴차니 그리고 마침내 유우니 소금사막.(주로 지명 위주로 짚어내다 보니 중간에 빠진 여로도 꽤 있다.)

 그렇게 좌절과 실패 속에서 도망치듯 시작했던 그의 여행은 어느새 습관이 된 듯 했다. 여행은 그가 잊고 있었던 시인이라는 꿈을 상기시켜 주었고 이렇게 테오에세이(Theo essay)를 통해 또 다른 삶을 선물해 주기도 했다. 여독이 풀리자마자 그는 익숙하게 또 다른 여행을 향하여 달려갔을 것이다. 그의 세 번째 에세이가 나올 때 쯤 나도 여행을 향하여 달려가고야 말겠다! 여행을 가로막는 건 오로지 나 자신 뿐이며, 여행은 이 도시의 사막에서 파삭파삭 메말라 버린 내 감성마저도 말랑말랑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그로 인해 깨닫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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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처럼 살아보기
미즈노 케이야 지음, 김지효 옮김 / 명진출판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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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끔 우리는 예상치 못한 곤경에 처하거나 머피의 법칙에 허우적거릴 때, "오~ 신이시여!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입니까!"라며 탄식을 한게 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되면 종교의 유무와 관계없이 떠오르는 존재는 바로 전지전능한 '신'인 것이다. 여기 두 명의 작은 신들, 슈나와 완다의 장난으로 최악의 하루를 보낸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알렉스. 그가 신들에게 선택된 이유는 흔히 볼 수 있는 가정을 가졌고, 매일 아침 정해진 회사에 출근하고, 주말에는 집에서 아이들과 노는, 마치 평범함을 한 폭의 그림으로 옮겨놓은 듯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불행해지리라곤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불행해진다, 라는 스토리에 슈나와 완다가 재미를 느낀 것이다. 과연 그는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일단 그의 운명을 불행하게 만들 신의 수첩을 살펴보자.   

신의 수첩
AM 10:00 알렉스, 자명종이 멈추다
AM 11:00 알렉스,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AM 11:30 알렉스, 업무상 대형사고를 치다
PM 02:00 알렉스, 원형탈모증에 걸리다
PM 03:00 알렉스, 회사에서 해고되다
PM 04:00 알렉스, 흠씬 얻어맞다
PM 06:00 알렉스, 사기를 당하다
PM 08:00 알렉스, 집이 불타다
PM 10:00 알렉스, 사망하다


 하루 아니, 정확히 12시간 동안 무려 9가지의 불행이 알렉스에게 닥친다. 목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보통 사람이라면 한 달 동안 걸쳐 일어어난다 하더라도 견디기 힘들 상황이다. 게다가 그 불행의 연속인 하루의 최후는 '사망'이라니……. 정말 신들의 장난으로 웃고 넘기기엔 너무 가혹한 운명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운명이 아니기에(;;) 얄궂은 장난의 신들이 원망스럽기보다는 파란만장한 운명 앞에 내동댕이쳐질 알렉스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슬슬 호기심이 생겼다.        

 때 맞춰 놓은 알람이 제 시각에 울리지 않아 학교나 회사에 지각해 본 경험 한 번씩은 다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보통 사람들은 자명종을 내동댕이치거나 애먼 가족들에게 왜 깨워주지 않았냐며 화풀이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알렉스는? 짜증나는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며 '나의 피곤함을 씻어주기 위해 일부러 울지 않았구나……. 주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참으로 갸륵한 자명종이로다.'라고 웃으며 중얼거렸다. 알렉스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기대했던 신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알렉스에게 이후, 더 큰 불행이 찾아왔다. 자명종 때문에 회사에 지각하게 된 그는 상사에겐 미운 털이 박혔으며, 업무에 생각지도 못한 큰 차질이 있게 된다. 한나절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탓인지 30대의 젊은 나이에 원형탈모증까지 걸렸다. 회사에선 특별한 이유없이 해고 되었고 까페에선 건장한 청년과 시비가 붙어 흠씬 두들겨 맞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보이스피싱에 낚여 1만 파운드를 사기당했다. 크리스마스라서 아내가 칠면조를 굽던 오븐에서 불이 나서 집은 불타버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을 책망하며 불평불만을 늘어놓거나 발만 동동 구를 상황에서 알렉스는 문제를 계기로 전진하여 원하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역경을 게임처럼 즐겼다. 그리고 역경 속에서도 늘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노력했다.

완다의 정리
나쁜 운을 쫓고 좋은 운을 부르는 플러스 발상법

1.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2. 자신의 실수는 솔직히 인정한다.
3.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다.
4. 역경을 게임처럼 즐긴다.
5. 자기 자신을 소중히 생각한다.
6. 자신의 결점을 역 이용한다.
7.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발견한다. 
                                        하려고 노력한다.
p.s.  이웃에게 웃는 얼굴을 선사했기에, 늘 웃고 있을 수 있었다.


 그를 관찰하던 신들 중, 완다라는 신이 정리해 놓은 것이다. 결국 신들의 예상과는 달리 그의 평범하지 않은(?) 행동들은 신들마저 감동시켰다. 그럼 이제 여느 해피엔딩의 동화책처럼 얄궂은 운명 앞에서도 '운이 나빴다'라고 탓하기보다 긍정적으로 상황을 바꾸려 노력하는 알렉스에게 감동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신들은 그의 운명을 바꿔 죽음만은 피하게 해주었을까? 하지만 신의 수첩에 한 번 적힌 인간의 운명은 전지전능한 신 제우스라도 손을 쓸 수 없다는 재미있는 설정(알렉스에게는 진심으로 미안하지만 난 이 설정이 참 맘에 들었다.)이 있었다.  결국 우리의 알렉스는 사망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남을 즐겁게 해주려는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망했다. 그렇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며 역경을 헤쳐나간다 하더라도 어차피 우리 모두는 언젠가 알렉스처럼 뜻하지 않은 죽음만큼은 피할 수 없다.

 사람들은 대게 노력해서 안되는 일이 없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신의 수첩에 적힌 알렉스의 하루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때도 있다. 살다보면 분명 노력해도 안되는 일은 있다. 그 어떤 노력이 '죽음'을 피해갈 수 있을까? 죽음은 운명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책의 제목은 '알렉스처럼 살아보기'일까?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은 책 서두에서 해리 에머슨 포스딕이 말해주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는 A현이 끊어지면 남은 3개의 현으로 연주한다. 이것이 인생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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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 1 - 마교의 장
전동조 지음 / 명상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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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우혁의 <퇴마록>을 시작으로 판타지 소설 삼매경에 처음 빠진 뒤 <왜란종결자>, <드래곤 라자> 그리고 <묵향>을 접하고 나서 더 이상 판타지 소설을 읽지 않았다. 많은 양의 판타지 소설을 읽어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만의 맛깔나는 문체와 독특한 위트 때문에 비교적 질이 낮은(?) 다른 소설을 읽고 판타지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 실망을 금치 못하게 될까봐 나의 판타지 세계로의 여행은 <묵향>으로 끝을 내고 싶었다.

 도서관의 이전 대출 기록을 살펴보니 (2003.08.04~2003.08.09)의 대출일과 반납일이 나왔다. 벌써 4년이나 흘렀구나!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생소한 부분이 많았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됐다. 4년 전 나의 옛친구를 다시 만나는 설레이는 기분으로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어느새 밤을 지새고 말았다.

 잘짜여진 영화는 5분 안에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잘쓰여진 책은 5장 안에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묵향>은 그렇지 못했다. 묵향의 활동 배경이 될 한나라 중원의 사림에 대한 지루한(?) 설명이 무려 4장에 걸쳐서 장황하게 설명되어 있다. 내 기억으로 이 부분을 읽다가 지쳐서 그냥 반납했다가 후에 다시 빌려본 것 같다. 두번째 볼 때는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그냥 넘겼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까 이건 <묵향> 전반적인 내용에 기본바탕이 되는 내용으로 이해하고 있으면 좀 더 쉽게 소설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지루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렇게 다시 만난 묵향은 여전히 괴팍한 성격에 사색을 좋아하는 청년이었다. 언제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성격의 소유자라 그의 다음 행동은 늘 예측불가능이었지만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살펴보면 외강내유라는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강한 자에게는 더없이 강해지고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약해지는 묵향이다. 그렇다고 그가 겸손하다거나 훌륭한 인품을 지녔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스스로를 이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몇 안되는 고수(사실이 그렇다.)라 칭한다거나 자기를 "치사하다.", "비겁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왕이면 격조 높게 비열하다고 하거라, 하하하."하면서 한 술 더 뜨는 위인이다. 요즘같이 가식적인 겸손과 거짓이 입에 발린 사람들한테 지친 독자들은 이런 그에게 더 열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나 역시 그런 독자들 중에 한 사람이다. 얼마간은 이렇게 <묵향>에 푹 빠져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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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까치글방 142
스티븐 호킹 지음 / 까치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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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을 덮고 가만히 눈을 감아 본다. 몇 가지 느낌들이 떠오른다. 마치 퍼즐을 맞추어 나가는 과정을 본 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우주상’이라는 퍼즐의 마지막 그림도 그 그림을 어떻게 완성해 나가야 할지도 아무도 모른다.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나름대로 조각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만든 조각들을 논리와 상상력으로 이어 가기도 한다. 남이 만들어 놓은 조각과 이론을 쓰기도 하고, 자신이 만들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우리의 우주상’이 아닌 다른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조각을 만든다. 재미있는 건 다른 그림을 생각하면서 만든 조각과 논리들을 필요하다면 연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그 퍼즐 맞추기를 약 100년 넘게 해 온 과정을 본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퍼즐을 맞추기 위해 누군가는 고뇌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 가벼운 느낌은 아닌데…….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들을 너무 쉽게 넘어가서 그런가? 조각을 만든다는 것을,논리를, 다른 사람의 조각을 쓴다는 것(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각도 포함)을 생각해 보자. 조각을 만든다는 것은 자신의 상상력으로 그림을 완성해 나감을 의미한다. 논리는 그 상상력을 설득력있는 주장으로 변하게 한다. 다른 사람의 조각을 이용하는 건 이전 연구 결과들을 소화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가끔씩은 자기가 만들던 조각을 다른 사람이 먼저 만들어서 놀라기도 하지만, 마지막으로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조각을 이용한다는 건 조각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바탕으로 한 순간적인 아이디어를 나타낸다. 이런 요소들을 골고루 갖추는 데는 진지함과 겸허함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여섯 마리의 코끼리가 지구를 떠받치고, 그 아래쪽에는 뱀 위에 올라 타 있는 거북이 지옥을 떠받치는 형상의 그림이 책서두에 등장한다. 이것이 바로 인류가 처음으로 우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 상상 속에 그려 본 우주의 모습이다. 이 그림과 오늘날 인공위성이 찍은 지구의 사진을 들고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 아무에게나 다가가 어느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인지 물어보면 한결같이 후자를 택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물어본다면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전문적인 과학 지식이 없는 일반 대중조차도 그다지 어렵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설명이 되어 있다. 그렇다고 중요한 부분들을 수박 겉 핥기 식으로만 지나쳤을까? 아니다. 책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는 참으로 진지하고 겸허하다. 진지하다 함은 여러 학자들의 새로운 이론이나 반론을 받아들이는데 인색하지 않은 데서 발견할 수 있고, 겸허하다 함은 스티븐 호킹 자신이 예전에 수행했던 연구가 동료와 자신의 학생에 의해 오류가 있음이 지적되었을 때 자신의 오류를 당당히 시인한 점이다. 학자로서는 참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금세기 초에 그 이전의 과학을 뿌리에서부터 흔들어 놓은 아이슈타인의 특수 상대성이론 및 일반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을 비롯해서 소립자 물리학, 블랙혹, 초끈 이론에 이르기까지 현대 물리학의 줄기에 해당하는 중심적 사상이 담겨 있었다. 그 중에서도 스티븐 호킹 자신이 그 이론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블랙홀에 관한 장들은 상당한 깊이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 나 자신이 평소에 블랙홀에 대해 개인적으로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도 했다.

 책 전반에서 다루고 있는 시간의 본질에 대한 관점의 역사적 변쳔을 살펴 보았다. 절대적인 개념의 시간은 상대성이론에 의해 상대적인 개념으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서도 시간이란 것이 상대적이고 시간과 공간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고, 아무런 관련도 없는 별개의 무엇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어쩌면 아이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선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에 따라서 무질서도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은 과거나 미래를 구분하고 시간에 방향을 부여한다는 말은 비교적 이해가 되었다. 다만 우주가 팽창을 멈추고 수축하기 시작해 시간의 화살(arrow of time) 중 한가지 종류인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thermodynamic arrow of time)이 역전된다 하더라도 팽창 국면과 수축 국면 사이에 대칭은 없다는 사실이 좀 아쉬웠다. 만약 역전이 가능하다면 내일의 시험 내용을 기억하여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거나 로또 복권의 당첨 번호를 알아내어 엄청난 액수의 돈을 획득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스티븐 호킹은 결국 그 가능성을 찾아 내었다. ‘벌레구멍(wormhole)’이 바로 그것이다. 과거로의 여행을 이용한 벌레구멍이 어쩌면 내 소망을 이뤄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오늘날보다 진보된 문명에서나 가능한 말인걸 알고 다시 한 번 낙심하였다. 왜냐하면 벌레구멍은 어떤 물체가 통과할 수 있을만큼 오래 열어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시간여행은 곧 실현 될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븐 호킹은 “우주가 일련의 합리적인 법칙들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으며, 우리가 그 법칙들을 발견하고 이해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하나로 묶는 물리학의 통일이론을 추구하고 있다. 이는 다른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만든 조각을 필요하다면 ‘우리의 우주상’을 완성하기 위해 쓸 수 있다는 사실과 같다. 즉, 학문이 서로 얽히고설켜있고 나중에는 하나의 진리로 합쳐진다는 의미가 아닐까?

 밀도가 무한대의 상태인 빅뱅에서부터 오늘날의 팽창하는 우주의 모습까지 한 편의 영화처럼 뇌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매혹적이고 명쾌한 설명이 ‘우리의 우주상’을 둘러싸고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긴 시간 동안 우주물리학이 걸어 온 길과 그 과정에서 명멸한 수많은 지성들이 쌓아온 궤적을 파노라마처럼 엮어내고 있었다. 시간과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처절한 고뇌와 도전, 좌절, 새로운 발견을 거듭한 우주물리학의 역사에서 진정한 학문의 힘을 느꼈다. 아직은 미완성인 ‘우리의 우주상’이라는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븐 호킹과 책 중간에 수록된 학자들과 그 외에도 직ㆍ간접적으로 노력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진심으로 찬사를 보낸다. 뿐만 아니라, 무명으로 잊혀져 간 학자들에게도 그 못지 않은 감동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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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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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서있는 곳은 만물의 숨결마저 삼켜버린 암흑 속이었다. 기분 나쁘게 끈적이는 것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와 온몸을 감싸안았다. 놀란 나머지 그것들을 떨쳐 내려고 몸부림을 치며 악을 썼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고요한 암흑 속에서 나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적막을 깨고 요란한 핸드폰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받아야할 중요한 전화가 있었기에 그 와중에서도 폰을 찾으려고 무의식중에 팔을 뻗었는데 보드라운 천 위로 차고 매끈한 무엇인가가 스쳤다. 눈을 감은 채 더듬어 모양과 크기를 가늠하여 보니 책인 듯 싶었다. 손바닥에서 느껴진 의외의 감각에 서서히 의식이 깨어났다. "아! 꿈이었구나." 아마도 책을 읽다가 살짝 잠이 든 모양이었다. 잠결에 통화를 마친 후, 침대에 걸터앉아 잠시 숨을 가다듬으며 베개 옆에 놓인 책을 집어 들었다.

 꿈 속에서 느꼈던 그 불쾌한 기분은 여전히 현실의 연속선 상에 놓여 있었지만 십여 장 남은 책을 마저 읽기 위해 책을 펼쳐들었다. 마치 불편한 진실을 무미건조한 말투로 들려주려는 자와 다시 마주 앉은 기분이었다. 휴우. 마른 입술 사이로 무거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감추고 싶지만 감춰서는 안되는, 잊고 싶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숙명처럼 기억하고 살아가야하는 우리의 가슴 아픈 근현대사. 희망과 자유가 억압당한 그 시대에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1912.5.25.~1989.4.21.)의 삶을 오롯이 그려낸 책이었다.

 그러나 소설을 읽는 내내 이 책이 베스트 셀러가 맞나 하는 의구심만 늘어갔다. 에피소드에서 느꼈던 스릴감과 박진감은 소설 서두에서부터 지루함과 따분함으로 바뀌어 책 읽는 속도를 더디게 만들었다. 작가의 특색없는 문체와 개연성 없는 사건 진행 역시 한 몫을 했다. 뭔가 큰 비중있는 인물인 것처럼 등장한 갑수는 소설 중반에 동생 기수와 수 년만에 일본에서 조우하였으나 그 자리에서 괴한의 습격으로 허무하게 죽어버렸고 가족과의 생이별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독립 운동을 한 허승은 비장해 보였으나 박무영과 이기수를 엮어주는 일 외에 딱히 조명할 일이 없었다. 독특한 캐릭터의 주변 인물로 인해 소설은 재미가 배가 되고 생기를 띄기 마련인데 오히려 눈에 거슬리는 존재가 되었다.

 고종의 사랑스러운 막내딸이었지만 일본의 볼모로 잡혀가 감내해야 했던 37년간의 비참한 삶, 원수나 다름없는 남자와의 강제결혼, 15년간의 정신병동 감금, 하나뿐인 딸의 자살, 조국의 외면은 한 인간의 삶으로만 본다 하더라도 분명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삶이었음은 틀림이 없었다. 스러져가는 나라 앞에서 황녀의 삶이 그 정도였다면 당시 민중들의 삶은 어떠했을지 그녀는 상상조차 할 수 있었을까? 위안부로 끌려가거나 그보다 더 악독한 삶을 살았던 분들도 많았을텐데 덕혜옹주의 입에선 "차라리 황녀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황녀로서 당하는 부당한 대우에는 서슬 퍼렇게 분노하면서도 결국은 현실에 주저앉아 시대와 신분 탓으로 변명하기 바쁜 그녀. 신분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시대 임에도 스스로 신분의 틀을 깨고 나올 생각은 하지 않고 누군가가 구해주길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나약하고 수동적인 그녀. 어쩌면 자유를 갈망하는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건 일본도 조국도 신분도 아닌 그녀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과연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비록 조국은 그녀를 외면했지만 조국을 향한 그녀의 깊은 애국심? 아니면 역사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 그녀의 비참했던 삶에 대한 재조명?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이 소설은 부족한 점이 많다. 마음 속으로만 외쳐대던 그녀의 조국 사랑은 가슴에 와닿질 않았고, '덕혜옹주의 삶'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발견했음에도 작가 특유의 상상력과 역량을 발휘하지 못해 고귀한 신분으로 어두운 시대에 태어나 초라한 삶을 살다간 한 여인으로만 그려냈다. 굳이 긴장감 흐르는 소설 전개나 덕혜옹녀를 영웅적 인물로까지 그리지 않았아도 소설을 통해 말하려던 덕혜옹주에 관한 뚜렷한 주제 하나만 있었더라도 책을 덮었을 때 밀려오는 소소한 감동 하나쯤은 기대해도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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