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까치글방 142
스티븐 호킹 지음 / 까치 / 199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덮고 가만히 눈을 감아 본다. 몇 가지 느낌들이 떠오른다. 마치 퍼즐을 맞추어 나가는 과정을 본 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우주상’이라는 퍼즐의 마지막 그림도 그 그림을 어떻게 완성해 나가야 할지도 아무도 모른다.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나름대로 조각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만든 조각들을 논리와 상상력으로 이어 가기도 한다. 남이 만들어 놓은 조각과 이론을 쓰기도 하고, 자신이 만들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우리의 우주상’이 아닌 다른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조각을 만든다. 재미있는 건 다른 그림을 생각하면서 만든 조각과 논리들을 필요하다면 연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그 퍼즐 맞추기를 약 100년 넘게 해 온 과정을 본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퍼즐을 맞추기 위해 누군가는 고뇌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 가벼운 느낌은 아닌데…….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들을 너무 쉽게 넘어가서 그런가? 조각을 만든다는 것을,논리를, 다른 사람의 조각을 쓴다는 것(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각도 포함)을 생각해 보자. 조각을 만든다는 것은 자신의 상상력으로 그림을 완성해 나감을 의미한다. 논리는 그 상상력을 설득력있는 주장으로 변하게 한다. 다른 사람의 조각을 이용하는 건 이전 연구 결과들을 소화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가끔씩은 자기가 만들던 조각을 다른 사람이 먼저 만들어서 놀라기도 하지만, 마지막으로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조각을 이용한다는 건 조각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바탕으로 한 순간적인 아이디어를 나타낸다. 이런 요소들을 골고루 갖추는 데는 진지함과 겸허함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여섯 마리의 코끼리가 지구를 떠받치고, 그 아래쪽에는 뱀 위에 올라 타 있는 거북이 지옥을 떠받치는 형상의 그림이 책서두에 등장한다. 이것이 바로 인류가 처음으로 우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 상상 속에 그려 본 우주의 모습이다. 이 그림과 오늘날 인공위성이 찍은 지구의 사진을 들고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 아무에게나 다가가 어느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인지 물어보면 한결같이 후자를 택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물어본다면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전문적인 과학 지식이 없는 일반 대중조차도 그다지 어렵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설명이 되어 있다. 그렇다고 중요한 부분들을 수박 겉 핥기 식으로만 지나쳤을까? 아니다. 책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는 참으로 진지하고 겸허하다. 진지하다 함은 여러 학자들의 새로운 이론이나 반론을 받아들이는데 인색하지 않은 데서 발견할 수 있고, 겸허하다 함은 스티븐 호킹 자신이 예전에 수행했던 연구가 동료와 자신의 학생에 의해 오류가 있음이 지적되었을 때 자신의 오류를 당당히 시인한 점이다. 학자로서는 참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금세기 초에 그 이전의 과학을 뿌리에서부터 흔들어 놓은 아이슈타인의 특수 상대성이론 및 일반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을 비롯해서 소립자 물리학, 블랙혹, 초끈 이론에 이르기까지 현대 물리학의 줄기에 해당하는 중심적 사상이 담겨 있었다. 그 중에서도 스티븐 호킹 자신이 그 이론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블랙홀에 관한 장들은 상당한 깊이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 나 자신이 평소에 블랙홀에 대해 개인적으로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도 했다.

 책 전반에서 다루고 있는 시간의 본질에 대한 관점의 역사적 변쳔을 살펴 보았다. 절대적인 개념의 시간은 상대성이론에 의해 상대적인 개념으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서도 시간이란 것이 상대적이고 시간과 공간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고, 아무런 관련도 없는 별개의 무엇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어쩌면 아이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선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에 따라서 무질서도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은 과거나 미래를 구분하고 시간에 방향을 부여한다는 말은 비교적 이해가 되었다. 다만 우주가 팽창을 멈추고 수축하기 시작해 시간의 화살(arrow of time) 중 한가지 종류인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thermodynamic arrow of time)이 역전된다 하더라도 팽창 국면과 수축 국면 사이에 대칭은 없다는 사실이 좀 아쉬웠다. 만약 역전이 가능하다면 내일의 시험 내용을 기억하여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거나 로또 복권의 당첨 번호를 알아내어 엄청난 액수의 돈을 획득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스티븐 호킹은 결국 그 가능성을 찾아 내었다. ‘벌레구멍(wormhole)’이 바로 그것이다. 과거로의 여행을 이용한 벌레구멍이 어쩌면 내 소망을 이뤄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오늘날보다 진보된 문명에서나 가능한 말인걸 알고 다시 한 번 낙심하였다. 왜냐하면 벌레구멍은 어떤 물체가 통과할 수 있을만큼 오래 열어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시간여행은 곧 실현 될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븐 호킹은 “우주가 일련의 합리적인 법칙들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으며, 우리가 그 법칙들을 발견하고 이해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하나로 묶는 물리학의 통일이론을 추구하고 있다. 이는 다른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만든 조각을 필요하다면 ‘우리의 우주상’을 완성하기 위해 쓸 수 있다는 사실과 같다. 즉, 학문이 서로 얽히고설켜있고 나중에는 하나의 진리로 합쳐진다는 의미가 아닐까?

 밀도가 무한대의 상태인 빅뱅에서부터 오늘날의 팽창하는 우주의 모습까지 한 편의 영화처럼 뇌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매혹적이고 명쾌한 설명이 ‘우리의 우주상’을 둘러싸고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긴 시간 동안 우주물리학이 걸어 온 길과 그 과정에서 명멸한 수많은 지성들이 쌓아온 궤적을 파노라마처럼 엮어내고 있었다. 시간과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처절한 고뇌와 도전, 좌절, 새로운 발견을 거듭한 우주물리학의 역사에서 진정한 학문의 힘을 느꼈다. 아직은 미완성인 ‘우리의 우주상’이라는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븐 호킹과 책 중간에 수록된 학자들과 그 외에도 직ㆍ간접적으로 노력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진심으로 찬사를 보낸다. 뿐만 아니라, 무명으로 잊혀져 간 학자들에게도 그 못지 않은 감동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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