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묵향 1 - 마교의 장
전동조 지음 / 명상 / 1999년 9월
평점 :
절판
이우혁의 <퇴마록>을 시작으로 판타지 소설 삼매경에 처음 빠진 뒤 <왜란종결자>, <드래곤 라자> 그리고 <묵향>을 접하고 나서 더 이상 판타지 소설을 읽지 않았다. 많은 양의 판타지 소설을 읽어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만의 맛깔나는 문체와 독특한 위트 때문에 비교적 질이 낮은(?) 다른 소설을 읽고 판타지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 실망을 금치 못하게 될까봐 나의 판타지 세계로의 여행은 <묵향>으로 끝을 내고 싶었다.
도서관의 이전 대출 기록을 살펴보니 (2003.08.04~2003.08.09)의 대출일과 반납일이 나왔다. 벌써 4년이나 흘렀구나!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생소한 부분이 많았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됐다. 4년 전 나의 옛친구를 다시 만나는 설레이는 기분으로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어느새 밤을 지새고 말았다.
잘짜여진 영화는 5분 안에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잘쓰여진 책은 5장 안에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묵향>은 그렇지 못했다. 묵향의 활동 배경이 될 한나라 중원의 사림에 대한 지루한(?) 설명이 무려 4장에 걸쳐서 장황하게 설명되어 있다. 내 기억으로 이 부분을 읽다가 지쳐서 그냥 반납했다가 후에 다시 빌려본 것 같다. 두번째 볼 때는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그냥 넘겼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까 이건 <묵향> 전반적인 내용에 기본바탕이 되는 내용으로 이해하고 있으면 좀 더 쉽게 소설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지루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렇게 다시 만난 묵향은 여전히 괴팍한 성격에 사색을 좋아하는 청년이었다. 언제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성격의 소유자라 그의 다음 행동은 늘 예측불가능이었지만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살펴보면 외강내유라는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강한 자에게는 더없이 강해지고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약해지는 묵향이다. 그렇다고 그가 겸손하다거나 훌륭한 인품을 지녔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스스로를 이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몇 안되는 고수(사실이 그렇다.)라 칭한다거나 자기를 "치사하다.", "비겁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왕이면 격조 높게 비열하다고 하거라, 하하하."하면서 한 술 더 뜨는 위인이다. 요즘같이 가식적인 겸손과 거짓이 입에 발린 사람들한테 지친 독자들은 이런 그에게 더 열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나 역시 그런 독자들 중에 한 사람이다. 얼마간은 이렇게 <묵향>에 푹 빠져 지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