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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처럼 살아보기
미즈노 케이야 지음, 김지효 옮김 / 명진출판사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가끔 우리는 예상치 못한 곤경에 처하거나 머피의 법칙에 허우적거릴 때, "오~ 신이시여!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입니까!"라며 탄식을 한게 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되면 종교의 유무와 관계없이 떠오르는 존재는 바로 전지전능한 '신'인 것이다. 여기 두 명의 작은 신들, 슈나와 완다의 장난으로 최악의 하루를 보낸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알렉스. 그가 신들에게 선택된 이유는 흔히 볼 수 있는 가정을 가졌고, 매일 아침 정해진 회사에 출근하고, 주말에는 집에서 아이들과 노는, 마치 평범함을 한 폭의 그림으로 옮겨놓은 듯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불행해지리라곤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불행해진다, 라는 스토리에 슈나와 완다가 재미를 느낀 것이다. 과연 그는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일단 그의 운명을 불행하게 만들 신의 수첩을 살펴보자.
신의 수첩
AM 10:00 알렉스, 자명종이 멈추다
AM 11:00 알렉스,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AM 11:30 알렉스, 업무상 대형사고를 치다
PM 02:00 알렉스, 원형탈모증에 걸리다
PM 03:00 알렉스, 회사에서 해고되다
PM 04:00 알렉스, 흠씬 얻어맞다
PM 06:00 알렉스, 사기를 당하다
PM 08:00 알렉스, 집이 불타다
PM 10:00 알렉스, 사망하다
하루 아니, 정확히 12시간 동안 무려 9가지의 불행이 알렉스에게 닥친다. 목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보통 사람이라면 한 달 동안 걸쳐 일어어난다 하더라도 견디기 힘들 상황이다. 게다가 그 불행의 연속인 하루의 최후는 '사망'이라니……. 정말 신들의 장난으로 웃고 넘기기엔 너무 가혹한 운명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운명이 아니기에(;;) 얄궂은 장난의 신들이 원망스럽기보다는 파란만장한 운명 앞에 내동댕이쳐질 알렉스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슬슬 호기심이 생겼다.
때 맞춰 놓은 알람이 제 시각에 울리지 않아 학교나 회사에 지각해 본 경험 한 번씩은 다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보통 사람들은 자명종을 내동댕이치거나 애먼 가족들에게 왜 깨워주지 않았냐며 화풀이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알렉스는? 짜증나는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며 '나의 피곤함을 씻어주기 위해 일부러 울지 않았구나……. 주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참으로 갸륵한 자명종이로다.'라고 웃으며 중얼거렸다. 알렉스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기대했던 신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알렉스에게 이후, 더 큰 불행이 찾아왔다. 자명종 때문에 회사에 지각하게 된 그는 상사에겐 미운 털이 박혔으며, 업무에 생각지도 못한 큰 차질이 있게 된다. 한나절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탓인지 30대의 젊은 나이에 원형탈모증까지 걸렸다. 회사에선 특별한 이유없이 해고 되었고 까페에선 건장한 청년과 시비가 붙어 흠씬 두들겨 맞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보이스피싱에 낚여 1만 파운드를 사기당했다. 크리스마스라서 아내가 칠면조를 굽던 오븐에서 불이 나서 집은 불타버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을 책망하며 불평불만을 늘어놓거나 발만 동동 구를 상황에서 알렉스는 문제를 계기로 전진하여 원하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역경을 게임처럼 즐겼다. 그리고 역경 속에서도 늘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노력했다.
완다의 정리
나쁜 운을 쫓고 좋은 운을 부르는 플러스 발상법
1.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2. 자신의 실수는 솔직히 인정한다.
3.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다.
4. 역경을 게임처럼 즐긴다.
5. 자기 자신을 소중히 생각한다.
6. 자신의 결점을 역 이용한다.
7.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발견한다.
하려고 노력한다.
p.s. 이웃에게 웃는 얼굴을 선사했기에, 늘 웃고 있을 수 있었다.
그를 관찰하던 신들 중, 완다라는 신이 정리해 놓은 것이다. 결국 신들의 예상과는 달리 그의 평범하지 않은(?) 행동들은 신들마저 감동시켰다. 그럼 이제 여느 해피엔딩의 동화책처럼 얄궂은 운명 앞에서도 '운이 나빴다'라고 탓하기보다 긍정적으로 상황을 바꾸려 노력하는 알렉스에게 감동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신들은 그의 운명을 바꿔 죽음만은 피하게 해주었을까? 하지만 신의 수첩에 한 번 적힌 인간의 운명은 전지전능한 신 제우스라도 손을 쓸 수 없다는 재미있는 설정(알렉스에게는 진심으로 미안하지만 난 이 설정이 참 맘에 들었다.)이 있었다. 결국 우리의 알렉스는 사망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남을 즐겁게 해주려는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망했다. 그렇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며 역경을 헤쳐나간다 하더라도 어차피 우리 모두는 언젠가 알렉스처럼 뜻하지 않은 죽음만큼은 피할 수 없다.
사람들은 대게 노력해서 안되는 일이 없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신의 수첩에 적힌 알렉스의 하루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때도 있다. 살다보면 분명 노력해도 안되는 일은 있다. 그 어떤 노력이 '죽음'을 피해갈 수 있을까? 죽음은 운명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책의 제목은 '알렉스처럼 살아보기'일까?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은 책 서두에서 해리 에머슨 포스딕이 말해주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는 A현이 끊어지면 남은 3개의 현으로 연주한다. 이것이 인생이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