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세트 - 전4권 - 개정2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반성완 외 옮김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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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리즈들도 그렇지만 특히 4권이 가장 현학적이고, 부르주아지(신흥부자)들과 자본주의에 대한 가없는 증오로 가득하다. 벼락부자에 대한 혐오 이면에는, 행운을 잡지 못한 아쉬움과, ‘내가 그렇게 돼야 했는데‘라는 회한이 가득차 있는 듯하다. 돈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지식을 쌓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렇게 똑똑한데 돈이 별로 없다니 세상은 썩었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지식인이란 이토록 역겨운 특성도 갖고 있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읽으면서 내내 든 생각 대충 다음과 같다.

*사람은 어떻게든 남과 달라지고 싶어 한다.
: 비교하고 구분 짓고 ˝남과 다름˝을 강조하는 이면에는, 오히려 인생의 본질은 ˝거기서 거기˝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예술은 형식이다
:본질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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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영화의 시대, 개정2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반성완 외 옮김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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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의 상황과 자연주의 문학>

우리가 아는 문학의 기틀은 1830년에 잡힌다.

1830년은 프랑스 7월 왕정(1830~1848)이 시작된 시기다.

7월 왕정을 한마디로 말하면 ˝절충과 타협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정치적으로는 진보, 경제적으로는 보수주의의 시기였다. 실상은 부르주아를 위한 정책을 대거 실시하여, 이 시기 이후 부르주아가 귀족의 자리를 완전히 대체하게 된다.

˝어떤 사회도 귀족 없이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7월 왕정의 귀족이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대기업가(부르주아지)들입니다˝

1836년 어느 의원이 했다는 이 말에서 7월 왕정 당시의 상황을 대략 짐작해 볼 수 있다.

즉 1830년 이후 모든 것은 자본의 논리에 의해 결정되고, 자본을 많이 쌓은 사람들이 칭송받는 사회가 된다. 자본주의는 중세 후기부터 계속 발전되었지만, 자본이 사회를 지배하는 논리로서 두각을 드러낸 것은 1830년 7월 왕정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요컨대 지금 사회의 기틀이 잡힌 게 바로 1830년 7월 왕정기이므로, 예술이 사회를 반영한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현대 문학의 기틀은 1830년에 잡혔다고 저자는 주장하는 것이다.

19세기는 또한 소설의 황금기였다.
1836년 <라 프레스(La press)>라는 신문이 광고를 싣고 구독료를 낮춤으로써 대중 독자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이러한 신문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읽을거리는 단연 연재 소설이었다.

신문으로 인해 소설 수요가 폭증하자 각국에서는 걸출한 소설가들이 나오게 된다.

프랑스 - 뒤마, 스탕달, 발자크, 플로베르, 졸라
영국 - 디킨스, 조지 엘리엇
러시아 -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19세기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연주의는 예술적 묘사에 자연과학의 정밀성을 적용한 사조다.

낭만주의까지는 진실성을 가늠하는 기준이 주관적이었다면, 자연주의부터는 그 기준이 더 객관적으로 바뀌게 된다.

자연주의가 19세기의 주도적인 사조로 자리 잡게 된 이유에는 1848년 혁명의 실패에 대한 좌절감이 깃들어 있다.

1848년 프랑스에서는 7월 왕정을 뒤엎는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그 결과 제2공화정이 시작되는데, 이 제2공화정은 3년 뒤 1851년 나폴레옹 3세가 일으킨 쿠데타에 의해 사라진다. 그 뒤 나폴레옹 3세의 제2제정기(1851~1870)가 시작된다.

이러한 실패한 혁명에 의해 사람들은 이상이 좌절됨을 느꼈고, 그에 따라 현실(사실)에 집착하게 된다. 이러한 결과로 19세기의 주도적인 문예사조는 자연주의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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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의 공통점은 서구식 개인주의를 사회악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19세기는 여러모로 벼락출세의 시기였다. 부르주아는 귀족을 밀어내고 새로운 귀족이 되었다. 돈만 가지고 있던 그들은 혁명을 교묘하게 이용해 정치적인 영향력까지 획득한다.

나폴레옹은 아무것도 없는 빈손으로 유럽의 황제가 되었다. 여러모로 19세기는 사회적 상승 의지가 강한 시대였다.

스탕달은 이를 ˝나폴레옹의 문제˝라고 말하며, 영웅적 개인을 추켜세웠다. 모름지기 영웅이라면 사회적 인습을 무시하더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같은 러시아 작가들은 이러한 서구식 개인주의를 자기파괴에 이르는 길로 보았다.

<죄와 벌>의 주인공인 라스콜니코프는 가난한 대학생이다. 돈이 없어서 학업을 중단한 그는 자신도 나폴레옹 같은 영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전당포를 운영하는 유대인 노파를 죽이는 일은, 벌어들인 돈을 사회에 환원한다면, 영웅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생각했던 대로 노파를 죽인 순간, 이것은 큰 죄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주인공은 파멸의 길로 나아간다.

˝포위당한 도시를 폭격하는 것이 왜 도끼로 살인하는 것보다 더 영예로운 건가, 나는 이해할 수 없어.˝

이러한 라스콜니코프의 말에서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톨스토이도 <안나 카레니나>에서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주인공(안나 카레니나)을 통해, 개인의 선택이 무한한 자유를 가질 수는 없다고 역설한다.

두 작가는 사회로부터의 개인의 해방, 개인의 고독/고립을 최대 악으로 보았다는 면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이는 러시아 문학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책의 작가인 아르놀트 하우저는 이러한 공동체 중심 사고방식의 이유를 러시아의 늦은 발전(20세기 초반까지도 러시아는 농업국가였다)에 있다고 보았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러시아 문학이 이 시대에도 읽히는 이유는 개인의 소외와 고립이 오히려 현대에 더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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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
메리 셸리 지음, 박아람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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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년에 출간된 책. 이 책이 200년을 넘게 살아남은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프랑켄슈타인>은 현대적인 소설이다.

형식적인 면에서 쉽고 간결하다는 것이 그렇고
내용적인 면에서 개인의 소외와 과학의 방종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쉽고 간결한 형식에 나는 약간 실망했다. 세계 최초의 SF 소설이라 하니, 어느 정도 과학적 서술이 나오려니 기대했으나, 이 소설에서 과학적인 내용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괴물의 창조 역시 구체적인 과정/원리 없이 번개처럼 갑자기 일어난 사건에 가깝게 묘사된다. 반면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자세하게 나오는 걸 보면, 아마 작가 본인이 과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이 책을 처음 구상하고 펴낼 때, 작가는 10대 후반이었다).

하지만, 이 책이 나온 시기가 1818년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전보가 발명되기 이전이었으며 진화라는 개념조차 정립되기 이전이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그녀의 상상력이 놀랍기만 하다.

가장 놀라운 건 서사가 매우 단조롭다는 것이다.

이 소설을 짧게 요약하자면, ˝어떤 사람이 시체를 되살리고, 되살아난 괴물이 창조주의 소중한 사람들을 죽이며 분풀이를 한다. 둘은 서로를 죽이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이다.

정말 단조로운 서사다. 보통 이야기가 풍부해야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소설은 단조로운 이야기에도 재미있다.

그 이유는 ˝설정˝ 때문인 거 같다. 다른 말로 하자면 ˝대립 구도˝가 흥미진진하다.

자신이 만든 괴물과 싸우는 프랑켄슈타인은, 자기 그림자와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 빛이 있는 한, 그 둘은 불가분의 관계다. 하지만 실체가 사라지면 그림자도 사라진다.

이 소설의 설정은 정말 여러 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고, 다 말이 된다. 그래서 고전이 되지 않았나 싶다. 시간이 흘러도 계속 재해석할 수 있어야 고전이 되는 건 아닐까?

원작을 보기 전에 뮤지컬을 먼저 봤는데, 소설을 보니 뮤지컬이 각색을 꽤 많이 했다 싶었다.

원작과 뮤지컬의 차이로는
1. 빅토르 어머니의 죽임이 괴물 탄생과 직접적 연관 없음
2. 괴물의 탄생이 앙리 클레르발과 연관 없음
3. 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원작에서는 자세히 묘사되지 않음

이 세 가지가 가장 큰 거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뮤지컬의 각색이 정말 좋은 거 같다. 특히 괴물의 탄생을 앙리와 연관시킨 부분 덕분에, 둘 사이의 관계에 이입하기가 더욱 쉬워진 느낌이 있었다. 괴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무대 연출이 정말 좋았기에, 원작에서는 어떻게 괴물을 만들지 기대했는데 정말 아무런 원리도 없이 뚝딱 만들어져서 좀 어이가 없었다.

괴물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살인마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내가 앙심을 품은 건 불행하기 때문이야.˝ -201p.g

세상에서 배척당하면 증오와 이기심을 품는 게 당연한 걸까?

197~199p.g 부분에서 괴물이 어떻게 주인공 동생과 하녀를 죽였는지에 대한 트릭 설명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정말 작위적이고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초반부, 괴물에게 어느 정도 선한 마음이 있는 것처럼 묘사한 것치고, 그렇게 갑자기 악해지는 게 개연성(혹은 핍진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조커>에서 조커가 되기 전 주인공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살인마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현대의 목소리에 이 작품은 약간 맞지 않는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소설이 앞으로도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부족한 부분보다 훌륭한 부분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모든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매우 현대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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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눈 풍요의 바다 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윤상인 외 옮김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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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은 러일전쟁 종전(1905년) 7년 뒤인 1912년과 그 1년 뒤인 1913년

주인공인 마쓰가에 기요아키는 후작의 아들로, 그의 할아버지는 메이지 유신 때 정부에서 큰 역할을 해서 귀족의 기틀을 마련해놓는다. 그의 아버지인 후작은 군인 출신으로, 돈은 많으나 ˝진짜 귀족˝에 대한 열등감이 있다. 그래서 아들을 아야쿠라 가문에 어렸을 때부터 조기유학을 시킨다.

아야쿠라 가문은 이른바 오래된 ˝진짜 귀족˝으로, 아야쿠라 백작의 딸인 아야쿠라 사토코와 마쓰가에 기요아키는 어렸을 때부터 사이좋게 지낸다.

기요아키는 사토코를 좋아하지만 그런 좋아하는 감정을 들키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젊음을 숨기기 어렵듯 사랑을 숨기기도 어려운 게 18살이다. 기요아키는 이를 무척 수치스럽게 생각하며, 한낱 여인의 손에 휘둘리는 자신의 모습을 혐오한다.

기요아키는 사토코에게 허세 가득한 편지를 보내며 ˝나는 너한테 휘둘리지 않음˝을 과시한다. 하지만 보내고 나서 이불킥하는 문자처럼 기요아키는 그 편지를 보내자마자 바로 후회한다.

그래서 사토코에게 전화를 걸어 편지를 절대 읽지 말고 불태워버리라고 부탁한다. 나중에 사토코의 하녀인 다데시나에게 편지를 어찌 했냐고 묻자 하녀는 ˝받자마자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기요아키는 안심한다.

하지만 그것은 하녀의 거짓말이었으며 사토코는 편지를 읽었다는 걸 나중에야 기요아키는 알게 된다. 그래서 그 뒤로 사토코와 아예 연락을 끊어버린다. 몇 번이고 편지가 오지만 모두 불태워버리거나 찢어버린다.

몇 달 뒤 아버지가 기요아키에게 ˝사토코가 다른 사람과 결혼해도 괜찮겠느냐˝ 라고 묻는다. 기요아키는 괜찮다고 말한다. 그 결과 사토코는 천황의 친척에게 시집 갈 준비를 한다. 그 첫 번째 관문인 칙허는 천황에게 결혼을 허가 받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칙허 소식을 듣자마자 기요아키는 자신이 사토코를 사랑함을 비로소 인식한다.

˝기요아키에게 환희를 안긴 것은 불가능이라는 관념이었다.˝ -235p.g

기요아키가 사토코를 사랑한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된 것은, 그 이전까지는 언제든 손에 닿을 수 있던 존재가, 이제 그럴 수 없게 됨을 알게 됐기 때문인 거 같다. 금지된 것이 더 유혹적인 것이다.

이렇게 기요아키와 사토코는 밀회를 시작하게 되고, 둘의 사랑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 몇 가지 있다.


1.자존심이란 무엇일까?

˝나는 위험하고도 대단한 사랑을 한다˝는 자존심,
사토코에게 휘둘리지 않겠다는 자존심,

이 자존심은 기요아키의 세계를 떠받치는 기둥 같은 것이며
역설적으로 그것 때문에 그의 세계는 무너진다.

자존심은 열등감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데
열등감은 무엇을 실제로 얼마나 갖고 있는가와는 전혀 상관없다.

실제로 후작은 백작보다 더 상위의 귀족이지만, 마쓰가에 후작은 아야쿠라 백작에게 귀족적인 면에 대해서 열등감을 갖고 있다.

아야쿠라 백작은 마쓰가에 후작에게 경제적인 면에서 열등감을 갖고 있고, 자존심이 상한 백작은 딸을 통해 복수 하겠다고 마음 먹는다.

모든 것은 자존심과 열등감이라는 한 가지 감정의 두 가지 면으로 인해서 생겨난다.
내가 있으면 남이 있듯 자존심이 있으면 열등감이 있게 되는데
이는 나르시시즘 적인 면에서 기원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자신을 너무 사랑하고 싶은 사람은 타인을 무시하게 되나보다.


2.유미주의라는 것은 무엇일까?

유미주의(탐미주의)는 감각에 몰두하는 것이다.
내용보다는 형식을 더욱 중요시하는 사조다.
미시마 유키오는 유미주의적인 문장으로 유명한데, 실제로 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매우 잘 짜여진 비단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단순히 형식(문장)만 유려한 게 아니라, 소설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내용(서사) 측면에서도 매우 흡인력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가 신경숙이 그의 문장을 표절했으니, 문장이 아름다운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3.전쟁을 아름답게 표현한다면 실상까지 미화될까?

대포 탄환 한 쌍으로 장식된 사당에 가며 ˝깨끗한 나무로 만든 쌀 되 안에 들어간 듯한 기분을 느낀다˝는 표현이 있다. 이는 아마 작가의 실제 감정이 아닐까 싶다.

1925년 생의 실제 귀족인 작가는 10대 중후반에 일본 제국의 몰락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몰락되기 전의 일본은 러시아와도 싸워 이겼으며,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도 싸웠을 정도로 강대국이었다(고 작가는 생각할 것이다).

전쟁을 그리워하는 걸까? 아니면 그 시기의 자신을 그리워하는 걸까. 귀족이라는 건 역사적으로 전쟁을 먹고 자란 계층이므로, 전쟁이 일어나면 자신에게 이득이고, 자신은 죽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옛 선조에 대해서, 전쟁에 대해서, 천황에 대해서 아름답게 표현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비단을 짜내는 누에를 보는 기분이다.
창작품과 실제 창작자와의 갭이 너무 커서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감상해야 할지 모르겠다.

미시마 유키오는 이상주의적인 경향이 강한 거 같다.

톨스토이도 실제로 귀족이고, 전쟁을 참가한 경험이 있는데, 그는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임을 주장하지 않고, 그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설득시킨다.

톨스토이는 전쟁에 있어서만큼은 철저한 현실주의자인 것이다.

전쟁에서 희생당한 한 사람 한 사람은 제각기 깨진 세계다. 어떠한 미문도 전쟁을 미화할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허나 이 작품의 초반부를 넘어가면, 그 뒤에는 군국주의에 대한 찬양이 나오지 않으므로 읽을 만하다.

요컨대 작품과 창작자의 관계는
작품에 창작자의 향이 너무 진하게 묻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비단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 위에 누에가 올라간다든지
누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든지 해서는 비단조차 아름답지 않아진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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