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가 가르쳐 준 것
기무라 아키노리 지음, 최성현 옮김 / 김영사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풀 농사 자알 지었네.”

“웬만하면 얘기 안하려고 했는데 주변 밭도 생각해 주어야지.”




나는 시골에 살고는 있지만 농부라고 말할 수는 없다. 농사를 업으로 하지 않을 뿐더러 땅을 거의 놀리고 있으니 말이다. 매년 풀이 키 높이까지 자라는 밭을 보면 주변 밭에 미안한 마음이다. 몇 번 예취기를 가지고 돌려보지만 비가 오거나 하고 나면 훌쩍 커버리는 풀들을 완전히 제거하는 방법은 없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땅. 황무지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밭의 주인은 게으름뱅이다.




사실 농사를 짓지 않는 땅에 공을 들이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자연스러움’이라는 믿음은 있다. 그래서 주변의 욕을 먹더라도 농약을 뿌리는 일은 절대 금물이다. 한때 주변의 시달림 때문에 처가 “차라리 농약이라도 뿌리자”라고 한 적도 있다.  

 

다투기는 했지만 내가 살고 아이가 뛰어다니는 곳에 독약을 뿌리는 일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는 쌓인다. 올해 다른 풀이 자라고 있다. 작년 키가 큰 벼과의 풀들이 점령하던 땅에 무수한  납작한 풀들이 자라고 있다.(한 여름에 어떻게 바뀌는지 두고 봐야 하겠다) 땅위의 환경이 스스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집 앞의 밭은 거의 놀리는 실정이다. 작년 가을 즈음에 느티나무 몇 그루와 소나무를 올 봄에 심고 아직 봄맞이 파종도 하지 않았다. 올해는 어떻게 풀을 키우고 주변 이웃들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다.




농사를 업으로 하는 농부나 텃밭을 재배하는 취미로 하는 이들이나 가장 중요한 일중에 하나는 김매기(제초)이다. 작물이 땅위로 올라오는 줄기의 하단부를 제외하고는 흙으로만 보이게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한 풀 뽑는 일을 직접 하는 집은 거의 없다.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 농가도 검은 비닐(지온을 상승시켜 작물이 자라는데 영향을 준다는 단점이 있다)에 구멍을 뚫어서 구멍 외에는 풀이 자라지 못하게 막는 장치라도 설정한다. 당연히 대부분의 농가들은 농약(제초제)을 뿌리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채소나 과일 재배에 있어 필수적인 것은 방제다. 곤충의 유충이 채소나 과실을 갉아먹는 것을 막기 위해 살충제를 뿌린다. 우리가 매일 먹는 김치. 원료인 배추농사를 지을 때도 살충제는 필수불가결하다. 초반에 방지하지 않으면 구멍 숭숭 뚫린 누더기 배추를 얻거나 아예 잎의 흔적조차 찾기 힘든 지경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바이러스에 의한 병을 막기 위한 약제 살포도 하게 된다. 열매가 맺히는 대부분의 작물에서 행하여지는데 적정시기와 적정한 양을 맞추는 것은 ‘관행’에 의해 농사짓는 대부분의 농민들에게는 어렵다고 보면 된다. ‘적으면 안하는 만 못하다’는 생각에 충분한 양의 몇 배가 넘는 양으로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무라아키노리의 이론과 경험은 위와 같은 상식을 완전히, 처절하게(?) 뒤엎는다. 자연농법의 개론서격인 후쿠오카마사노부의 <짚 한 오라기의 혁명>이 논농사에 관한 자연농법의 내용을 담았다면 이 책은 사과에 관한 것이다. 저자의 경험을 언론인이 편집한 <기적의 사과>에 이은 안내서라 할 수 있다.




사과는 특히 농약이 많이 필요하다. 사과 뿐 아니라 모든 과수농사가 마찬가지다. 약이 없으면 병에 견디지 못하는 허약한 체질의 나무를 돌보는 일이 바로 ‘과일농사‘다. 언제 어느 때에 얼마만큼의 투약으로 성공적인 맛좋은 과일을 생산하느냐가 바로 ’기술‘로 인정받는다. 책은 농약과 비료를 완전히 제거한 사과농사에 기초한 자연을 ‘관찰’한 경험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으며 실패한 10년간의 연구결과를 집약한다. 직관과 엉성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보통의 농법안내서와는 다르게 처절하게 관찰하고 경험하고 시행 착오한 내용을 담았다.




어려서 회계와 기계를 다루는 재능이 풍부했던 그가 고향으로 귀농하면서 겪게 되는 경험은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 농사에 별 흥미가 없었던 저자는 대규모 영농을 위해 당시 보편화되지 않았던 대용량의 트랙터를 사서 옥수수 밭을 가꾸는 일을 시작한다.  

 

주요수입은 사과재배였으므로 사과농사에 투자하는 시간이 훨씬 많았는데 농약으로 인한 건강의 위협을 느끼고 무농약에 도전한다. 매년 투약 량을 줄이다가 1회, 그리고 무농약에 도전한다. 하지만 사과는 받아주지 않았다. 꽃이 피지 않고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는 사과를 두고 눈물의 투쟁이 시작된다. 매일 벌레를 잡는 일에 전력을 다해도 나아지지 않는 사과를 어루만지며 말을 건다.  

 

‘밥보’, ‘파산자’소리를 듣고 주변 농가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고, 수입이 없는 가족의 자산은 탕진하고 그 좋아하던 트랙터도 넘기고 빛에 몰리면서 야간에는 파친코, 유흥주점일까지 하게 된다. 말이 쉽지 2~3년이면 대부분의 의지가 강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고집이 센 것인지 신념이 강한 것인지 6년까지 버티다가 결국 가족에게 사죄하는 길로 죽음을 택하고 산에 오른다.  

 

어둠을 가르고 오른 산 중턱에서 줄을 매려고 다가간 나무에 사과가 풍성하게 열린 것을 본다. 사실은 도토리나무였다. 실하게 열린 도토리와 주변 나무들의 싱싱한 열매들을 보고 깨달음을 얻는다. 죽음까지 몰리는 고집을 넘어서게 된 계기는 흙이었다. 산이, 자연에 가까이 하고자 했던 저자에게 내려준 계시다. 주저앉아 흙을 만지고 무릎까지 주변을 덮은 풀들을 눈물로 바라본다. 그것은 바로 ‘자연’이었다. 자연이 주는 것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자연 상태에 이를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것뿐이다. 그의 신념은 확신에 이른다.




당장 시작한 것은 풀을 키우는 것이었다. 나무 주변에 콩을 심어서 땅을 기름지게 만들고 그 주위로 무릎까지 자라는 풀은 내버려 두었다. 그러기를 3년 만에 열매가 맺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 온통 만발한 사과꽃 아래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사과나무에게 고마워했다.

그는 지금 세계적으로 지명도를 얻은 강사다. 아프리카 오지까지 연 100회에 이르는 강의를 하고 있으며 일본 내에 청소년농업학교를 운영하게 된다. 관행농이라면 비전없다 할 젊은이들이 그를 본받고 농업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성공하게 된 비결은 끈기였다. 꾸준히 주변의 질타와 비아냥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네가 믿는 길을 가라”는 어머님의 말씀을 좆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얻은 결실이다. 3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사과. ‘기적의 사과’라 불리는 그의 사과는 예약판매를 시작함과 동시에 바로 동이나 버린다. 한국에서 그를 배우기 위해 몇 백 명의 농부들이 방문하고 그의 과수원은 연간 3만 명의 발자국으로 채워진다.




국내에도 그를 따라서 무농약에 도전하는 사과농가들이 생겨났다. 일부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실정이라 하지만 머지않아 ‘기적의 사과’를 생산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모든 농사가 방제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믿음이 여전히 지배적이다. 되긴 되지만 힘들어서 못한다는 결론이 대다수의 생각이다. 적게 투입하고 적게 거두는 일이 아직까지 생산량위주의 정책아래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것 같다.

도처에 인삼밭으로 들어찬 논밭에는 매월 약냄새로 진동을 한다. 어찌나 많이 뿌려대는지 농민들조차 농약 범벅인 인삼을 먹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인삼을 재배한 곳에서는 몇 년은 휴경해야 작물재배가 가능하다고 한다. 삼이 지력을 소진시킨다는 이론이다.  산삼이 나는 주변반경에는 어떤 풀들도 자라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장뇌삼이나 산양삼을 재배하는 현장을 보아도 풀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자라는 모습이 보이는 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이 책을 읽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원인은 농약이다. 농약에 완전히 절어있는 땅이 회복되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인삼밭에서는 어떤 작물도 자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안전한 먹을거리를 먹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가 자연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화학물질의 반응에 대해서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선택적 제초나 한 가지 해충에 대한 방제효과를 보이는 물질의 이면에는 수만 가지의 반응이 도사리고 있으며 자연 생태계에 어떤 형태로 영향을 미치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뻔한 일을 눈감고 자연을 다스리려 하는 인간은 어리석기 그지없다. 중요한 것은 자연을 이해하고 그 흐름에 순응하려는 인간의 노력이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인위적인 ‘투입’과 ‘개발’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은 저자의 10년간의 ‘눈물’로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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