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게리 윌스의 기독교 3부작 3
게리 윌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코흘리개 어린시절, 그곳에 가면 노래 부르고 간식도 먹을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꾀어 처음 간 교회. 누군가를 경배하고 기도하는 일이 짧은 생이지만 처음이었던 나로서는 생경함과 어색함으로 목재의자위에서 몸을 꼬고 있었다. 나는 왜 그곳에 있었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예수님’을 만났다.




일가를 통틀어 다닌 적 없는 교회를 나만 다니는 일은 유일하게 아버지가 집에 계시는 날, 집에 돌아와서도 무척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좋은데 왜 안다니지‘로 정리될 수 있는 일이라면 떳떳했겠다. 문제는 어정쩡한 마음이었다. 주중에 난삽하기 짝이 없는 방탕함으로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학교친구가 청년부 대표로 기도하는 자리에서 단 몇 분 동안의 울음으로 그동안의 죄를 사함을 받고 희희낙락하는 모습에 경악했다. 정말 용서하셨을까? 매번? 그런 하나님이라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예수님을 존경하고 하늘에 계실 ‘아버지’를 경외한다. 세상엔 분명히 나약한 인간이 ‘머리’로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믿지 못하겠는 것은 한국의 교회다. 그리고 그곳을 운영하는 이들. 교회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좀더 자신의 입지와 자본의 획득에 도움이 되는 수단으로서 교회를 선택한다. 번쩍거리는 세단에서 내려 명품 핸드백을 들고 귀금속을 걸치고 예배에 참석하는 이들은 보면서 나는 일찌감치 저런 곳이 예배당이라면 내가 속해있을 곳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기도하는가. 그들이 마음에 새기는 예수는 어떤 모습일까.




예수는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역할이었다. 자신이 전지전능한 힘을 부리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인간’이었다. 우리가 그를 닮는 방법은 없다. 우리는 병든자들의 병을 낫게 하고 수천 명의 굶는 이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눌 수 없다.




   
  우리들이 그를 직접적으로 모방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은 우리들 자신이 신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은 바로, 그가 엄격히 금지했던 일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들에게 맨 앞에 나서는 대신 맨 뒤에 머물고, 가장 뛰어난 자가 아닌 가장 겸손한 자로 행동하라고 일렀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의 상식과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기독교인들은 절대 ‘예수와 같아’ 질 수 없다. -본문 중  
   

 




예수를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역사책, 성경을 보아야 한다. 같은 성경도 어떤 시각을 가진 사람이 어떤 부분을 중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수만명이 동시에 듣는 교회의 설교와 기독교정신에 충실한 개척교회의 목사가 전하는 말씀은 다르다. 우리는 그대로 성경이 후대에전하고자 하는 바를 얻고자 한다.




   
  그는 하층민과 계절별로 고기잡이에 의존해 살아가는 어부, 혹은 멸시받는 직업을 가진 자들(로마를 위해 세금을 징수하던) 중에서 제자들을 선택했다. 그의 제자들 중에는 율법학자도 없었으며 법을 연구한 자도 없었다. 게다가 예수는 집 없는 자들을 더 좋아했다. 자신도 집이 없었으며, 공적인 생애 동안 집 없이 태어나 집 없이 살았다.-본문중
 
   

 




저자는 현재 예수상은 많이 왜곡되어 있다고 생각한모양이다.(책을 읽고 나니 나조차도 편견이 있었음) 제목에서 ‘예수가 뜻하는 바’를 바로 전하겠다는 의도를 표한 것도 바로잡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예수는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서문으로 시작해서, 성경에서 보이지 않는 예수의 청년기, 급진주의자, 종교인이 아니었던 점, 하늘나라에 대한 의미, 삶과 죽음을 통해서 본 하나님으로 나누어진 챕터를 통해서 결국 ‘사랑’으로 통하는 ‘그분의 뜻’을 잡아낸다.




   
  너의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외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마태 5.44-45
 
   

 







그리고 현실 정치, 종교인들에게 실랄한 비판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신 분이었다. ‘벽을 보고 욕이라도 하라’는 전대통령의 말씀처럼 집도 없이 교회도 없이 말씀을 전하고 몸으로 실천하진 예수의 삶은 고스란히 성경에 드러난다.




   
  그때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르지 말아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지기 힘든 무거운 짐을 묶어서 남의 어깨에 지우지만, 자기들은 그 짐을 나르는 데에,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경문 곽을 크게 만들어서 차고 다니고, 옷술을 길게 늘어뜨린다. 그리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며, 장터에서 인사받기와, 사람들에게 랍비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마태 23.1-7
 
   

 




진보적인 성향이 강한 예수.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는 ‘진보‘ 라고 한다면 어떤 답을 할 것인가. 가진자가 아니라 가장 가난하고 병들고, 힘든 이들을 위해 가진것을 내주어야 하고 입을 것을 벗어주길 원하셨고, 많이 가진자가 ’천국‘에 가는것은 불가능하다고(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 하셨다. 삶도 먹고 입고 하는 문제에 연연하기보다 하늘의 ’의의‘를 따르는 것을 종용하셨다.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다.―마태 6.30-34  
   

 




현실에 이런 정치인이 있을 수 있는가.




   
 

그러나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 해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하고, 너희를 모욕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네 뺨을 치는 사람에게는, 다른 뺨도 돌려대고, 네 겉옷을 빼앗는 사람에게는 속옷도 거절하지 말아라. 너에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사람에게서 도로 찾으려고 하지 말아라. 너희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여라.

너희가 너희를 사람 하는 사람만 사랑하며,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너희를 좋게 대하여 주는 사람들에게만 너희가 좋게 대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그만한 일은 한다. 도로 받을 생각으로 남에게 꾸어주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죄인들에게 꾸어준다. 그러나 너희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또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어라. 그러면 너희는 큰 상을 받을 것이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다.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남을 심판하지 말아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를 심판하지 않으실 것이다. 남을 정죄하지 말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너희를 정죄하지 않으실 것이다. 남을 용서하여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남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니, 되를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안겨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여주는 그 되로 너희에게 도로 되어서 주실 것이다.―누가 6.27-38

 
   

 




결국,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세상을 아우르는 사랑이 모여 사는 우리를 좀더 천국과 가까운 세상으로 이끌어줄 것이다. 기독교인이 아니었던 예수님의 뜻을 받들 오늘의 교회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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