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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김혜자 지음 / 오래된미래 / 2004년 3월
평점 :
가끔 내가 사는 세상이 너무 잔혹하고 비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무정한 사람들이 싫고 나를 혹사시키는 상사가 밉고 내가 오늘날의 위치에 이르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부모님이 원망스럽다. 나는 왜 이렇게 행복하지 못할까.
카드 할부금 걱정을 하고, 약정기간의 위약금을 계산하고 융자금의 지출을 생각해야 하는 오늘이 싫다. 오르지 않는 월급과 나의 생활을 향상시켜줄 경제부흥을 이루지 못한 대통령을 원망한다.
커다란 눈망울. 눈꺼풀위에 달라붙은 파리들. 좆을 힘조차 없어서 가만히 누운 채로 눈만 껌벅인다. 앙상한 나뭇가지 같이 뻗은 팔. 뼈와 뼈가 이어져 관절임을 쉽게 알게 해주는 불툭한 실루엣과 많이 먹어서라기보다 굶어서, 또는 세균과 기생충이 자리를 차지하는 볼록한 배.
많이 보아서 익숙한 그들의 모습에 익숙해져서라기보다, 내가 먹고 살기 힘들어서 너무 바빠서, 그리고 당장 울고 있는 처자식을 위로하기 위해 나를 혹사시키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생각된다. 그들을 위로하는 나의 대리인, 흔히 내 친구 같고 항상 티브이만 켜면 만날 수 있는 탤런트, 배우들이 그곳에서 그들을 안아주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에 위안을 삼는 것은 아닌가.
살을 빼기 위해 끼니를 거르고 칼로리는 줄이는 나와 한모금의 물조차 먹지 못해 굶어 죽어가는 그들을 비교한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구나. 누구는 많이 먹어서 병이 들게 하고 누구는 못 먹어서 세상을 원망하게 만드누나.
부의 불분배. 그들은 그 옛날에도 밥을 굶었을까? 제국주의가 낳고 자유무역주의가 가져온 폐해에 희생된 그들의 농업은 누가 보상할 수 있을까. 자신은 껴보지도 못할 다이아몬드를 위해 희생되는 수많은 생명들. 핸드폰의 자원을 위해 죽어가는 어린영혼들.
이제 눈물만 흘려서는 안 된다. 손을 내밀어 그들과 함께 가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