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숲, 그 섬에 어떻게 오시렵니까 - 느낌이 있는 국립공원 속살 탐방기
박경화 지음 / 양철북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생각하고 느끼는 여행이 유행이다. 과거 휴양, 소비위주의 여행에서 벗어나 좀더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과 나누고 싶은 여정을 만들어가려는 노력인데 ‘책임여행’, ‘공정여행’등의 단어가 여행업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는 모양이다. 기획해서 상품으로 내 놓고 있을 정도니 색다른(?) 여행의 지원자가 꽤 되는 모양이다.




구지 돈을 들여 외국까지 나가는 것이 부담스럽거나 ‘내 것’부터 알고 ‘다른 곳’에 눈을 돌리고 싶은 이들이라면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웹에서 정보를 찾는 것이나 경험자들에게 조언을 얻는 것도 훌륭하지만 테마와 주제별로 한권에 묶은 여행서를 보는 것만큼 효율적인 사전답사는 없을 듯 하다.







그린벨트와 국립공원은 보호와 보존을 목적으로 한 제도다. 이 제도가 가져온 뜻밖의 결과에 대해 이제야 서서히 느끼고 있는 이들이 많다. ‘생각 없는’ 개발이 가져온 부작용들이 슬슬 불편하고 혐오스러운 결과물들을 내놓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보존이 잘 되어 온 곳들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순수한 자연이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한 일인지 스스로 증명하기에 바쁘다. 그래서 연일 시즌을 맞은 국립공원들은 사람으로 산을 이룬다. 특히 서울에 있는 북한산은 도무지 국립공원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지나친 사람들의 입산으로 보존을 위한 통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에 위치한 국립공원은 산과 바다에 있는 섬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누구나 너무도 잘 아는 지리산, 소백산, 계룡산, 태백산, 한라산 등과 태안반도, 부안, 한려수도의 바다를 접한 지역들은 누구나 한번쯤 가보았을 곳이다.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내가 다녀온 곳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가진다.




   
  닭벼슬을 쓴 용, 이것이 바로 계룡산인데, 여기서 닭의 벼슬은 관(冠)을 뜻하고 용은 임금이니 계룡산은 임금이 관을 쓴 것과 같다는 해석이다....중략.....계룡산이 예부터 영산으로 대접받은 것은, 태극의 정중앙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백두대간 산줄기는 남쪽을 향해 거침없이 내려와 지리산까지 장대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지리산에서 다시 뻗어 나온 산줄기가 마이산, 대둔산으로 이어지면서 금남정맥을 이루는데, 계룡산은 그 끝에 자리잡고 있다.
 
   

 




이름의 유래를 안다는 것은 대상에 대해 한층 친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이름의 유래를 아는 풀과 나무, 꽃들의 이름은 한번만 들어도 잘 잊혀지지 않는다.




   
  옛 사람들이 산봉우리의 이름을 지을 때는 몇 가지 방법이 있었다. 우선 눈에 보이는 대로 불렀다. 산봉우리 모양이 글을 쓰는 붓 끝을 닮았다 하여 문필봉, 농기구의 써레처럼 생겼다 하여 서래봉이라 지었다. 떡을 찌는 시루와 닮았다고 해서 시루봉, 장군의 투구를 닮았다 해서 투구봉, 단지를 엎어 놓은 드하여 단지봉이라 불렀다. 전설에 유래해서 이름 붙인 경우도 있다.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즐겼다 하여 신선봉, 은은한 향기가 쌓인다 하여 향적봉이라 불렀다.불교용어에서 유래된 이름도 있다. 관음봉, 문수봉, 비로봉은 대부분 불교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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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사시가>,<오우가>의 윤선도선생이 오래 묵어 유명한 보길도. 선생이 손수 설계한 세연정과 세연지의 아름다움은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 섬의 이름에 관한 재미있는 유래는 다음과 같다.




   
  옛날 영암에 사는 한 부자가 조상의 묘를 쓰려고 풍수지리에 능한 지관과 함께 섬을 찾았다. 몇 날 며칠을 돌아다닌 지관은 ‘십용십일구十用十一口’라는 결론을 내렸다. 섬에는 명당이 11곳 있는데, 10곳은 이미 다른 사람이 썼고, 한 곳만이 남았다는 것이다. 그러자 욕심많은 부자는 그 곳을 가르쳐 달라고 애걸복걸 햇다. 하지만 지관은 가르쳐주지 않고 그냥 떠나버렸다. 그 뒤 사람들은 지관이 남긴 글자를 조함하여 ‘보길 甫吉’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반면 국립공원을 아끼고 사랑하는 삶들의 일상도 비춘다. 공원지역에 살면서 불편함과 공원이 가지고 있는 자원에 대한 애정. 관람객을 위한 배려가 있기에 우리가 편안하게 등산이나 여행을 즐길수 있는 것이다. 쓰레기를 치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외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묵묵히 자기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큰 눈도 내리는데, 깊은 곳에서는 150cm나 쌓여 길과 계곡의 구별마저 사라진다. 이때 길을 아는 사람만이 ‘길을 틀 수’ 있다. 길을 내는 방법은 무척 단순하다. 한 사람이 앞서 걸으면 뒤따라 7~10명이 쭉 밀고 나간다. 그러나 허리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걷는 것은 쉽지 않다. 배로 누르고 뛰면서 온몸으로 눈길을 뚫는 것이다. 이 작업은 뒤따라오는 누군가가 길을 잃지 않고 갈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이다. 지금 내가 눈꽃을 감상하며 편히 걷는 길, 이 높은 산에 길을 내기 위해 누군가는 이렇게 눈 속을 헤맸으리라.
 
   

 




국립공원에 여가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생기는 일들이 있다. 아무래도 인파가 지나간 곳에는 흔적이 남기 마련이고 쓰레기처럼 치워지는 것외에 쉽게 지워지지 않는 흔적들도 있는 것이다. 쉽고 빠르게 공원의 깊숙한 곳으로 많은 이들이 접근하게 되는 것은 그래서 위험한 일이 되기도 한다.




   
  덕유산은 이제 누구에게나 만만한 산이 되었다. 그러나 덕유산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 편리한 시설물(곤돌라)로 쏠리는 바람에 향적봉은 점점 낮아질 지경이다. 사람들의 발길에 닳아서도 그렇고, 쉽게 올라갈 수 있어서도 그렇다. 기계는 사람의 힘으로는 못하는 일을 단숨에 해결해주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도리어 부메랑이 되어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되돌아오곤 한다.
 
   

 




책은 생명의 이야기를 전하는데 일부러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저 그곳의 소소한 이야기들로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그 느낌을 간직하는 것이 좀더 먼 미래에도 공권의 가치가 유지될 수 있는 길이라 말하는 것 같다. 전국의 ‘잘 보존된 곳’을 듣기만하니 좀이 쑤신다. 자연을 괴롭히지 않고 온전히 공원이 주는 기운을 받아 돌아오려면 ‘사랑’이 필요할 것이다.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곳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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