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애듀케이션 - An Educati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교육 An Education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자유의 대가로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를 지금 바로 살기 우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김예슬 선언 중

 
   

 




어릴 때 명문대를 목표로 하지 않는 이들은 없다. 부모라면 자신의 자녀가 훗날 명문대학에 입학해서 ‘이력서’의 기본을 다잡길 원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선발되는 1%의 학생들이 차지하는 그 자리는 이미 정해져 있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중등교육과정을 거치는 일부만이 도전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그런 곳에 가서도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없는 것이 오늘 한국의 대학이라는 것. 명문대 학생이 학교를 ‘거부한다’ 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게 만드는 현실이다.




‘학벌’이라는 단단하고 튼튼한 탑은 어떤 외침이나 저항에도 꿈쩍도 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탑을 이루는 성원의 하나가 빠지고 또 그 하나에 용기를 얻은 하나가 빠지면서 작은 행렬을 이룬다면 그 탑도 무너지지 않을 수 없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금 학교 교육의 현실은 그들이 움직이게 될 사회의 불안한 요소가 되어버리고 만다. 낙오자는 낙오자대로 선택된 자들은 그들대로 함께 하지 못하고 따로 놀며 사회구성원으로 가져야할 기본 소양을 잊고 마는 것이다.




영화 ‘교육 An Education’은 대학진학을 눈앞에 둔 여학생을 그린다. 보기만 해도 답답한 교복과 교양교육, 외국어수업과 에세이, 짜여진 교실에서 줄맞추어 앉은 젊은이들. 자거나 딴청 하는 아이들과 책을 들여다보는 아이가 대비된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 학교 풍경이다. 한국은 60년대에 학교를 다니는 여성은 거의 없었다. 극소수의 부유층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고 대부분은 유학을 거쳐 신문물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주도하던 여성들이다.




전쟁 후 196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사립 고등학교의 촉망받는 한 여학생이 주인공이다. 제니. 자유의 파리를 그리는 그녀는 ‘옥스포드’를 목표로 하는 고등학생이다. 부모님 뿐 아니라 학교의 선생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는 그녀에겐 고민은 별로 없어 보인다. 자신만만하면서 당당하지만 부모님, 선생님과 갈등하는 평범함(?)을 지니기도 했다. 옥스포드를 향한 걸림돌이라면 라틴어성적정도? 그런 그녀에게 색다른 일이 일어난다. 예쁘고 공부 잘하는 범생이 사랑에 빠지며 겪게 되는 ‘살아 있는 교육’이 영화가 주장하는 교육일까?




첼로를 들고 비를 맞는 소녀를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차를 대는 한 남자. 데이빗. 인상도 좋고, 차도 좋고, 매너 좋은 그 남자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제니. 데이빗은 점점 더 제니의 사생활로 깊숙이 들어온다. 말솜씨와 외모, 수완은 보통을 넘는다.(그의 직업은 사기꾼이다) 첫 만남에 그 완고하기 짝이 없는 부모님을 설득해서 밤외출을 허락받더니, 외박과 여행을 허락받기에 이르고 결국 결혼을 약속하기에 이른다. 부모가 데이빗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어느 날 데이빗으로부터 프러포즈를 받고 다음날 부모님에게 학교를 포기하고 결혼할까 고민하는 제니에게 “옥스포드야 나중에도 갈수 있잖아.”라는 아버지의 한마디는 영화의 백미다. (부모가 생각하는 딸의 학벌은 좋은 남자를 만나기 위한 도구였음이 분명했다.)




결국, 결혼은 이루어지지 못했다.(이 얼마나 교육적인가. 학생이 함부로 연애하다간 인생 종친다?) 데이빗은 ‘바람둥이’였고 법적인 아내와 자식도 있는 유부남이었던 것이다. 그와 함께 한때 즐겼던 여행, 공연, 파티와 멋진 드레스, 차와 그림, 음반들이 그녀의 선택이었다. 그를 보내면 그 행복도 함께 날아가 버린다. 남는 게 없는 껍데기가 되어버린 제니는 다시 학교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지만 이미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기란 더 쉽지 않다. 하지만 노력으로 결국 원래 목표하던 대학입학을 얻어내고 그 곳에서 성장한 존재로서 대학생활을 하게 되는 모습으로 영화는 맺는다.




‘교육을 받은 여자’가 가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조건을 갖춘 남자와 함께 하는 것으로 인생의 완성이 이루어질까. 교육이 가진 가치는 기껏 ‘간판’ 뿐이란 말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것만이 교육의 효과라고 볼 수 있을까.




‘교육’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모와의 관계, 이성과의 교제, 친구들과의 과외활동 등이 살아있는 교육을 이룬다. 영화에서 제니가 경험한 교육은 ‘사랑’이었다. 사랑과 배신을 겪으면서 자란다. ‘세상은 이런 것이구나. 학교밖 세상은 완전히 다르구나.’




제니가 되고 싶지 않은 여성의 모습은 엄마였다. 데이트를 마치고 들어온 밤 12시까지 그릇에 때를 지우지 못해서 싱크대 앞에서 낑낑대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녀. 좀 더 나은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필요한 것을 하려고 결심한다.




닫힌 공간인 학교가 주는 것은 없다. 자유와 낭만, 예술과 유희는 모두 밖에 있다. 학생은 경험할 수 없는 ‘좋은 것’들을 경험하게 해준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부모도, 선생도 주지 못한 생전 처음 맛보는 해방감을 안겨준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결국 그와 헤어짐은 모든 것이 끝나버릴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현명한 제니는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공부,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좋은 조건의 결혼을 하는 것이 결국은 자신의 미래를 밝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나는 차라리, 세상 경험을 호되게 치른 16세 소녀의 성장기라고 보고 싶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대학에 진학해서도 결코 그 안에 매몰되지 않는 자기를 가꾸어 나갈 수 있게 해 주었으니까. 그게 ‘교육’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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