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훈 선생의 꿈꾸는 국어 수업 - 고딩들의 저자 인터뷰 도전기
송승훈 엮고 씀 / 양철북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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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즐겨 읽는다. 책읽기는 외로움을 덜어주며 나를 몰두하게 만들어서 다른 온갖 잡념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책읽기의 장점은 경험해본 이들만 공유할 수 있다. 그 행복한 경험을 누구에게나 아무런 사심 없이(?) 추천하고 싶어진다.  

 

성격, 품성 등의 선천적인 면이 글 읽기를 가로막는 경우에도 우연한 후천적인 경험으로도 독서에 푹 빠지는 일은 흔하다. 나의 경우도 그랬다. 길고긴 학생시절, 교과서와 참고서만으로도 지긋지긋했다. 당장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드는 경우를 제외하고 책을 깊이 있게 읽는 일은 드물었다. 세상에 나가 인생의 고난과 방황, 역경의 시기에서 만난 몇 권의 책이 나에게 보이지 않던 길을 보여주어 인도하는 역할을 했고 나는 기꺼이 그 길로 따르리라고 마음먹었다. 읽으면서 자주 만나는 저자의 삶이 궁금했고 그의 지식세계에 감탄하고 때론 질투가 났다.




욕심을 가지면 책의 저자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다. 일년에 책 한권보지 않는 이들이라도 유명한 책의 저자를 만나는 일은 설렌다. 티브이를 통해서 자주 등장하는 유명인을 만나는 일처럼. “나 누구 만났어.”라고 시작해서 듣는 이의 궁금함을 한방에 사그라지게 만드는“그냥 만났다구”로 끝나더라도 본인은 그 만남 자체에 깊은 감흥을 간직하게 된다. 어른보다는 어린이가, 어린이 보다는 청소년 시기의 학생들이 더 깊은 감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유명인에 그렇게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인생을 던지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죽었다. 뉴스와 인터넷을 누비는 옷 벗은 중학생, 케첩과 달걀범벅의 찢어진 교복차림의 학생들이 담긴 동영상은 거꾸로 그들이 속한 학교와 그들의 존재가 단지 ‘억압’속에 있었다는 증거다. 선생과 제자는 악수하거나 포옹하고 부모는 눈물 흘리는 졸업식을 볼 수 없는 것은 더 이상 학교가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할 수 없음을 말한다.  

 

돈이라는 신이 지배하는 망가진 세상, 그 안에서 특히 약자인 학생이라는 신분은 정신을 놓지 않으면(군대든 학교든 정신 줄을 놓으면 무척 편해진다) 견디기 힘든 경쟁의 큰 틀 속에 자신의 위치가 성인이 되기도 정해지는 계급사회의 표본이다. 학교에서 소모되고 꿈 없이(좋은 대학 가는 것은 꿈이 될 수 없다) 학원에서 써버리고 남는 것 없는 껍데기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희망은 있을까.




아직, 교육은 살아있다. 일부지역의 교육감, 몇 학교의 교장과 선생, 학부모들이 손을 잡고 아이들을 구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흔히 ‘대안’이라고 불리는 교육의 틀 속에서 아이들은 감성을 회복하고 자아, 자존감을 쌓는다. 책의 저자인 송승훈 선생도 그 중 하나이다.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미래를 꿈꿀까. 자신을 찾고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인간이 될까 하는 고민에 충실한 선생 본연의 자세를 위해 본인을 가다듬는다.




애들아, 독서와 서평쓰기는 시작이다. 이제 저자를 만나서 대화를 나눌 시간이다. 두 달간의 프로젝트는 5명의 모둠이 한 책을 선정하고 그 책의 서평을 쓰고 저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리고 그 모든 내용들을 정리해서 글로 남기는 것이다.  

 

기본은 이렇다.  

책을 선정하고 (서평이 쉬울 것 같은 책에 몰리므로 각 모둠의 대표가 나와 가위바위보를 하는데 지는 쪽이 책을 고른다)그 책을 조원이 모두 읽고 서평을 각자 쓴다. 서평을 모아서 저자에게 전달하며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뜻을 전한다. 날짜와 시간이 정해지면 모두 모여서 약속장소로 이동하고 만나는 분께 고마움을 표시할 만한 선물을 준비한다. 이야기 꺼리는 미리 준비하고 부담이 될만한 내용은 피한다. 대화의 과정과 진행과정을 사진 촬영한다. 만나고 돌아와서 보고서를 쓴다.

각 역할은 분담하는데 모둠의 모두의 고른 참여를 위한 것이다. 기획, 외교, 사진, 질문, 보고서의 각 역할을 한명씩 맡아서 진행한다.




이 책을 읽으며 행복해진다. 아이들의 보고서는 서투르다. 선택하기에 길들어진, 자신을 표현하는데 서툰 시골(?) 고등학교 학생들의 글이다. 반면, 그 간 읽어온 딱딱하고 잘 짜여진 문장들을 보다가 조금 엉성하고 순박하게 느껴지는 학생들의 솔직한 글을 읽으니 익숙하게 짜여진 구조와 단어를 조합해서 글을 쓰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했다. 솔직함보다 겉멋에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반성의 시간이었다. 깊지 않은 반성이 좋은 글을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행평가’만 아니면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도전(대부분의 아이들이 보고서 서두에 밝히고 있다).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일들은 아이들이 기꺼이 해내었다. 만화가 박재동, 건축가, 이일훈, 여성학자 이총각, 페미니스트 정희진, 역사학자 최상천 등의 저자와 만나고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거나 먼 거리여서 학생들이 만나기 힘들 경우엔 관련운동단체, NGO등을 연락해서 가능한 ‘선배’를 만나는 데에 성공했다.  

 

기껏 한번의 만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과정에서 소통방법(메일 쓰기, 전화통화 하기)의 경험을 쌓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홍보도 하게 된다. 질문지를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책의 내용을 곱씹게 되며 삶과 지식의 연관성에 대한 경험은 그 나이 입시생으로서는 경험하기 힘든 특별한 일이 될 것이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인간을 만나는 것은 얼마나 색다른 경험인가. ‘저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구나. 그래 내가 풀지 못한 해답이 저것이겠구나. 역시 책을 많이 읽어야 해. 나도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을 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 저렇게 사람을 크게 만드는 구나.’ 등의 감상이 주어진 ‘문제풀이’에만 몰두하는 대학진학을 앞둔 학생들에게는 인생을 좌우하게 될 자산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참 교육에 관한 고민을 안고 사는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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