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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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말하다 


최고가 된 것은 운과 실력이었다. 폭풍우의 큰 파도를 타는 돛단배처럼 유연하게 침몰을 피하자 오히려 난파된 경쟁자들에 비해 가장 크게 성공한 것이다. A 기업은 빈약한 산업구조와 외환보유관리에 허술했던 모국 D의 국가부도사태에 재빠르게 대처했다. 자신보다 크게 위치했던 기업들이 버티다 발가벗을 때 가볍게 코트를 벗는 정도의 수고로 견디어 냈다.  

 

코트는 자신이 커온 세월의 피와 땀이 담긴 것이었으나 개의치 안았다. 그런 과감함이 A를 키운 원동력이었다. 곧 재계순위 1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들이 시류에 맞게 구조조정을 잘 한 탓도 있고, 다른 기업들이 민감하지 못했고 대처가 느렸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밀어붙인 정부의 규제완화와 재벌들의 성장을 지원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A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특별히 자랑거리가 없는 D국에서 세계적인 브랜드로 인정받는 유일한 A 의 핸드폰이 등장한 이후 경제위기마다 등장하여 국민들을 ‘오염’시키는 모토가 되었다. 1등 기업은 2위를 한참 따돌린 채 독주할 수 있었다.

공정한 게임에서 우승이라면 세상 모두가 축하해야 할 일이다. 이미 고도성장으로 빈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단숨에 뛰어오른 D국의 상황은 그러지 못했다. 과거 식민지를 겪고 나서 제 힘으로 독립하지 못했던(대부분의 식민국가와 마찬가지로) 탓도 있겠지만 역시 기회주의자들의 민첩함, 영민함이 세계를 통치하는 대국(大國)입장에서는 손잡기 쉽고 지시한대로 잘 따르는 맛이 있어서 좋았다. 이런 역사 속에서 우직함·정의 따위는 길가의 개밥으로나 던져주기 딱 좋았다.

A 기업의 성장 이면에는 오물로 범벅이었다. 기업 내부도 시칠리아의 마피아와 다름없는 구조였다. 창조성과 효율성을 모토로 하는 세계적 기업다운 면모는 가면이었다. 가면 뒤에 숨은 얼굴은 그 기업의 가장 정점에 있는 ‘미스터 빅(이하 빅)’이었다. 빅이 원래 미스터 빅인 것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가 독재정권과 손잡고 일으킨 기업을 형제들을 물리치고 물려받게 된 결과 얻게 된 이름이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정치계와 손잡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정치인들에게는 돈으로, 언론과 경제계 거물들과는 혼약(婚約)으로 끈을 단단히 이어갔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와는 달랐다. 아버지가 정치권력에게 손을 비벼서 기업을 이끌었던 것에서 이제 자신이 당당히 나라를 움직이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었다. 경제 정책의 대부분은 기업 산하 경제연구소에서 제시한 것들이었다. 모두 변함없는 ‘원칙’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었다. 국가 원수가 될 이들을 선거전에 자료수집하고 가장 될 확률이 높은 이에게 ‘투자’하는 것이었다. 투자의 원칙은 간단했다.  

 

“돈을 들이면 더 큰 이익이 온다.”라는 간단한 논리에 따른 것이었다. 선거자금이 필요한 정치인은 그렇게 A의 올가미에 들게 된다. 모든 투자가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한번은 투자를 잘못하여 생각지도 않았던 이가 대통령이 된 적이 있었다. 정적의 대선자금 조사는 기업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다. 물론, 보험은 들어 놓는다. 만약을 위해서 2위, 3위 대선후보에게도 ‘돈’을 들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제일 적게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 정권의 수장이 기분 나쁜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여하튼 검찰의 조사를 통해서 기업이 받게 될 상처를 줄이는 방법 역시 간단했다. 검찰의 사건담당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다. 사건의 중요도에 따라 금액도 틀려지지만 사과박스가 되기도 하고 여행용가방이 되기도 한다. 방문해서 직접 전달하는 것이다. 안면이 있는 기업의 임원을 이용하고 때로는 모임이후 차 트렁크에 선물처럼 싣는다. 대부분 돈, 현찰이다.

정·경·학 각계의 권력에게 돈을 주기위해서라도 항시 필요한 것은 현금이었다. 순간에 수천만 원, 억대의 돈이 반출되는 곳은 A기업의 28층 끝에 위치한 비밀금고다. 벽과 바닥은 3중으로 되어 있고 2면은 건물 외벽으로 되어 있었다. 내부에서 벽처럼 위장되어 있는 문을 통해서 들어간다. 들어가면 철창으로 2중 보안이 되어 있고 그 안에는 현금, 상품권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이 금고의 입구는 비자금 총책인 K사장의 집무실이다. 복도에는 보안이 철저하며 출입도 소수의 기업핵심인물과 직원만이 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서 A기업에 입사하게 된 ‘꿈나무’는 앞날에 대한 기대가 컸다. OJT를 거쳐 재무팀에 발령을 받고 3개월 만에 사장실에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었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지방에 있는 관계사 J모직 경리과에서 가방을 가져다가 사장실의 금고에 넣는 것이었다. 업무가 많을 때에는 본사 지하주차장에서 인계받은 가방들을 카트에 얹어서 전용엘리베이터를 통해 금고로 나르는 일만으로도 벅찼다. 이런 일을 몇 년 하고 나서는 곧 임원급으로 승진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는 가방 나르는 일에 대한 중요성과 ‘빅’님의 돈을 만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라를 주무를 정도의 위치에 서면 특권의식이 생기게 마련이다. 수십만 명의 직원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떤 바람이 있는 지에는 별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런 일들은 ‘실’에서 알아서 하기 때문이다. ‘빅’은 출근하지 않는다. 집에서 대부분의 업무를 소화한다. 관계사(흔히 우리는 계열사라고 말한다)들의 사장들은 회의가 있는 날이면 회장 집에 딸린 별채에서 회의를 갖는다. 특이한 것은 한나절을 회의를 해도 화장실에 가지 않는 회장덕택에 임원들은 아침부터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다.

‘실’(기업의 ‘구조본’)은 기업권력의 핵심이었다. 실이 지시한 사항들이 기업을 움직였고 가장 중요한 ‘비자금’을 축적하는 것이 일이었다. 기업 내 주요한 인사는 거의 관여한다고 봐야했다. 관계사 사장들도 항명하지 못했다. 자신들의 모가지도 ‘실’에서 떼었다 붙였다 하니 그런 것이다. 돈줄과 목줄의 쥐고 있는 실에게 관계사 사장들도 꼼짝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권력이 세력을 유지하기위해서는 정보가 중요했다. 정보를 얻기 위한 전산팀, 통신팀은 국가의 비밀첩보기관인 ‘국정원’의 시스템에 버금갔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훨씬 더 나았다. ‘미스터 빅’의 사택 지하에 하나, 본관에 하나, 그리고 그가 이동하는 장소에 따라다녔다. 언제 누구와라도 연결이 가능했다. 임원들은 핸드폰을 꺼뜨리지 못했다. 혹시 연결이 되지 않을때 ‘호출’ 받을까 두려워서 배터리도 여분을 가지고 다녔다.

재산축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곧 상장하는 계열사의 주식 지분으로 ‘빅’의 자산은 껑충 오르게 생겼다. 검사들과 판사들에게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온 탓에 시민단체나 학계가 낸 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었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비자금’을 사유재산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집안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그들만의 세계에 산다. 비자금을 조성하는 것이 왜 나쁜지, 서민들의 삶은 어떠한지, 직원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다. 귀족, 아니 왕족의 삶을 이어온 것이다. 옛날 프랑스 혁명당시에 어느 왕녀가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될 일이지”라는 어처구니없는 세상물정에 대한 이해의 수준을 보여주었다면 빅의 둘째따님은 “백만 원짜리 옷을 누가 입겠어?”라고 말해 왕족의 수준을 모르는 일반인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비싸서 못 입는게 아니라 너무 싸구려라 아무도 입지 않을 것이라는 황당한 말이었다. 만원·이만 원짜리 입는 천 만이 치를 떨만한 이야기였다.

그들만의 세상은 현실세계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지도에서 한 구역 넓게 차지하고 있는 회장집, 아들집, 딸집이 한동네에 모여 살다 보니 일반인들과 격을 두고 싶어졌다. 그래서 낸 묘수가 미술관을 짓는 것이었다. 고가의 미술품들을 전시해 놓고 경비를 강화하여 자신의 주거지를 보호했다. 그 아래 치과병원을 지어놓고 간판과 수납창구를 없앴다. 일반인들의 진료는 이루어지지 않는 병원이었다. 가족들만을 위한 전용 치과병원인 것이었다.

황제의 생일잔치엔 특급 아나운서의 사회와 최고의 연주자들, 가수들이 초청되었다. 그들이 두 세곡 부르고 2~3000만원씩 챙긴다고 했다. 그렇게 주는데 안 오는 이도 있다고 했다. 그 가수는 “듣고 싶으면 표를 사서 들어라”라고 당당히 말했다고 한다. 대중을 위한 가수지 귀족을 위한 광대가 아니라는 자존심 이었다. 잔칫상엔 전용기로 공수된 생 푸아그라가 놓였다. 손님들의 상에는 냉동 푸아그라였다. 그 차이는 생삼겹과 냉동삼겹의 가격과 맛차이보다 훨씬 컸다. 술도 마찬가지다. 가격으로 따지면 수십 배 차이가 나는 술이 가족상과 손님상들의 계급을 가르고 있었다. 손님을 천대하는 계급의식 때문이다. 자기 동네에서는 끗발 좀 날리는 손님들도 그 자리에선 하인처럼 굴었다.

당연히 전용 비행기도 있었다. 전용기는 럭셔리 했다. 침대, 바, 휴게실 등의 공간으로 구분이 되어 있고 중간급의 항공기를 리모델링 한 것이라 했다. 좌석수를 현저히 줄이니 공간이 넓게 남았다. 서빙하는 아가씨들은 전문모델 뺨치는 외모에다가 무릎을 땅에 붙이고 기듯이 걸어 다니며 접객했다. 누구나 누리고 싶어 했을 그 비행기는 ‘빅’이 쓰지 않을 때는 계열사 사장도 쓸 수 있었다. 감히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혹시 자기가 이용할 때 ‘빅’이 찾을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신처럼 행세하고 이를 받치는 가신들. 수십만 명의 직원을 먹여 살리는 회사의 최고 경영자 1인 체제. 그것도 평생을 바뀌지 않는 독재체제. 말이 곧 법이고 진리가 되어버리는 곳에서 정세의 흐름이나 시류에 대한 유동성이나 ‘전문성’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소프트웨어로 승부하는 흐름에 하드웨어 사양만을 강조하다 아차 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휘슬 블로어

느와르 필름을 보는 듯한 ‘A 기업의 뒷면‘은 법률팀에 있다가 ‘실’에 몸담았던 Y변호사가 세상에 드러낸 것이다. D국의 검사로 전직대통령의 비자금 수사 경력을 자랑하며 잘나가던 이가 부장검사 발령 자리를 마다하고 입사한곳이 A기업이었다. 윗선의 명령에 따르고 아래 명령을 강요하는 ‘부장검사’자리가 싫어서 나온 것이었다. 변호사는 더 싫었다. 검사와 짜고 범죄를 만들어서 서민의 등을 치는 직업이라 여겼다.

기업의 구조본부에서는 인사부서에 근무시킨다는 약속을 어기고 법무팀으로 발령 냈다. ‘변호사는 싫다고’라고 항변해도 소용없었다. 그곳과의 인맥을 이용하려고 채용했던 회사는 그에게 좋은 대우를 해 주었다. 기업 오른팔의 눈에 들어 핵심인 재무팀에 몸을 담게 되었다. 매주 정재계인사들과 골프로 주말에는 쉴 시간조차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을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이 혐오하는 것들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퇴사를 결심했다. 권력의 핵에 있다가 회사를 나오게 되자 정신이 들었다. 아니, 회사가 정신을 차리게 해 주었다. 회사의 뒤통수를 치지 못하게 하기 위한 모든 조처들이 다가왔다. 도청, 미행은 기본이었다. 공공연하게 접근해서 협박을 일삼았다. Y는 힘을 키우기 위해 여러 곳의 문을 두드렸고 비교적 진보적 성향의 신문사에 채용이 되었다. 이후에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협박’대신 ‘협력’을 약속했다. 하지만 2년이 넘지 않아 사단이 났다.  

 

회사는 언론을 통해서 드러난 관계사의 비리에 관한 내용에 Y가 뒤에 있음으로 지목했다. 그리고 끝났다. 몸담고 있던 법무법인에서 해고 통지가 왔다. 순식간에 길거리에 나앉게 된 그는 갈등과 번민을 거듭하다 결심했고 자신이 몸담았고 비리에 동참했던 회사에 대한 자료를 정리했다. 워터게이트 이상 가는 ‘대박’이었으나 훗일을 두려워하는 언론사들은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결국 찾아간 곳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이라는 길고 복잡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종교단체였다.

이년여의 싸움. 그리고 소설 같은 책이 나왔다. 출판사의 광고는 어디에도 실리지 못했다. A 의 힘이었다. 수백만 원씩 쓰다가 지금 천 원짜리를 세고 있는 그는 그래도 행복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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