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인가?
이계안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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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뻗어봐도 소용없다. 발을 허우적 대는 것은 더 위험한 일이다. 서서히 빠져드는 몸. 그곳에는 나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발버둥치지만 점점 더 절망으로 이끌 뿐이다. 개미지옥이다. 벗어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깔때기 모양의 모래 속으로 빠져 들어가면 커다란 입이 혀를 날름 내밀어 잡아먹어 버린다.


누가 봐도 지옥은 지옥이다. 현실은 그래서 수많은 자살자들과, 자식까지 아파트 고층에서 떨어뜨려서 먼저 죽는 꼴을 보고 죽는 동반자살자들과 국민을 지키라고 있는 경찰들과 사회계층의 아랫부분에 있는 서민들과의 목숨을 건 싸움을 방관하고 있지 않은가.


좀 나누어서 먹고 살자는 지방의 눈물을 온갖 술수와 그럴듯한 눈가림으로 무마시키고 자신들이 몸담은 ‘중앙’과 ‘메인스트림’의 몸집만 키우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위정자는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자신과 손잡은 이들의 안위에 애정을 쏟는다. 악어의 눈물처럼, 뒤로는 짓누르고 가면 쓴 얼굴이 “사랑합니다.”를 외치는 광고로는 지금의 민심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마찬가지, 책이 제시한 방향에도 이견이 충분히 있을 듯하지만 서울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조사하고 느껴본 경험을 바탕으로 한 현실의 비판에는 동의할 부분이 적지 않다.


칼레의 시민은 영국과 프랑스간의 전쟁이 한창이던 14세기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와 칼레 시민이었던 생피에르에 얽힌 일화다. 에드워드 3세가 칼레시에 진군하여 전 시민을 몰살하라는 명을 내리자 아량과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요청이 줄을 잇는다. 결국 관용과 자비로 6명의 시민을 선발해오면 처벌하겠다는 가혹한 명을 내린다.


누가 사형대에 자진해서 서겠는가. 투표를 해서, 제비뽑기를 해서, 범죄자, 사형수를 내세워서. 칼레시의 거부 생피에르는 자진해서 나선다. 그 뒤를 잇는 정치가, 부자, 법률가 등의 귀족들. 7명이 되자 처형장에 늦게 나타나는 자를 제외하기로 한다. 날이 밝자 생피에르가 보이지 않는다. 어찌된 일인가. 집에서 자결했다. 자신이 죽어서 나머지 지원자들의 용기를 북돋으려는 의로운 죽음이었다. 눈물을 흘리는 시민들. 이를 알게 된 에드워드 3세는 형을 중지하고 시민모두에게 살수 있는 권리는 주게 된다.


로댕의 작품으로도 유명한 ‘칼레의 시민’에 관한 이야기이다.


과거 한반도에 존재하던 귀족다운 고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돈 있는 자들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면죄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고 법을 집행하는 이들은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의 편에 서있는 지금. 우린 지옥이거나 지옥으로 가고 있는 중간 계쯤에 있는 것이 아닐까.


태어나서 말배우기 시작하면 온갖 교재의 압박에 유치원에서 영어를 시작하고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두세 학원을 거쳐 바쁜 일정을 자랑하는 우리 ‘어린이들‘. 놀이를 모르고 공부는 벌써 지겨운 것, 힘든 것, 평생을 지고 가야 할 것으로 인식하는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학을 들어간다고 해도 나아질 것은 없다. 또 다시 취업을 위해 엄청난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한다. 보통 수십 대일의 경쟁을 거치는 일자리는 불안정하기 짝이 없고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은 비인간화의 인격을 형성하는데 아주 제격인 곳이다. 이런 곳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내 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다.


운이 좋은 자식들은 부모님이 주신 돈에 억 단위의 대출을 보태 겨우 전세마련 할 수 있는 곳이 서울이다. 졸업 후 갚아야 할 등록금 대출이 있는 이라면 집을 위한 돈을 모으는 것은 꿈도 못 꾼다. 주거에 대한 불확실성을 안고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직장생활을 통해서 자아성취를 이루는 것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되어버린다. 뿐만 아니라 집 없이 전전긍긍하는 삶속에서 불안과 사회에 대한 적대감만 키우는 것은 국가 공동체를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결국은 노후에 대한 불안과 직접 연관된다. 변변한 보험이나 연금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노후에 대한 불안은 곧바로 사회 불안을 조장한다. 돈못벌고 삶을 근근이 이어가는 노년의 슬픔을 알아야 한다. 그 많은 수들의 노인들을 젊은 세대들이 책임져야 하는 일은 심각한 노소간의 갈등을 조장한다.


심각한 갈등과 분열은 국가를 운영하는 리더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이것에 돈 많고 힘 있는 이들도 나 몰라라 할 것이 아니라 같이 사는 사회의 밝은 미래를 위해 동조하고 적극적인 지지와 격려를 해야 할 것이다.


올바른 사회를 이끌어가는 높은 분들이 좀더 포용하고 이해하는 자세를 가져야 양극화, 계층화된 지금에 신뢰라는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다.

비정규직에게 오히려 정규직보다 임금을 더 주고 지배층이 사회를 위해서 자신의 재산을 환원할 줄 아는 사회가 되자고 역설하는 저자에 적극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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