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드라마 때문에 원작 소설을 찾아 본 것은 아니었다. 무심히 책장을 뒤지다가 도발적인 청바지의 여성의 뒷모습이 눈에 꼭 들어왔다고나 할까.

글래머러스한 몸매와 그에 꼭 맞는 패션을 보여주는 옷차림. 환하게 개방된 오피스에는 간결하면서도 스타일리쉬한 모던함이 넘치는 집기와 용품이 배치되어 있고 반 층쯤 올라간 독립공간에는 그 공간의 일꾼을 호령하는 사령관이 자리 잡는다.

드라마 <스타일>은 이런 공간으로 ‘패션’을 집약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환상의 공간에서 환상적인 일을 하고 있는 직업군인 패션잡지 에디터들의 모습을 비추어준다. 실상 그렇게 잘나지도 그렇게 멋있지도 않은 일들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들의 옷은 최첨단을 걷는 패션의 리더들과 같고 메이크업이며 코디도 거의 완벽해서 마치 모델들이 런웨이를 걸어 나와 오피스로 들어가 앉아있는 것과 같은 어색함을 보여준다.

극치는 부장에서 편집장으로 승진하여 잡지 ‘스타일’을 이끌어가는 박기자(여기서 기자는 이름이다)이다. 지적이고 도도하며 매혹적인 여신과 같은 이미지를 찾는 배역에 꼭 맞는 김혜수가 분한 역은 초반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이서정을 제치고 단독질주하기 시작했다. 시청자들 입장에서야 어리버리한 이서정보다 섹시하고 멋스러운 여주인공이 훨씬 더 볼만했을 테지. 김혜수(박기자역)의 스타일이 되어버린 드라마는 결국 ‘그녀의 스타일’에 기대버렸다.

드라마를 보고 원작을 찾지 마시라.

원작 <스타일>은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그저 이름만 등장할 뿐이다. 완전히 다른 캐릭터와 왜 이 책의 등장인물을 빌려갔나 싶을 정도로 색다른 내용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와 같은 내용을 상상해보자면 그것도 아니다. 소박하고 친근한 한국 청춘의 직장생활이 주제이자 배경이다.

이서정은 패션잡지 에디터다. 다니면서 사표를 3번이나 쓰고, 매번 자신의 이상과 거리가 먼 현실에서 좌절한다. 남성의류 메이커 에디 슬리먼의 스키니진을 입고 체험기를 쓰기위해 몸에 맞지도 않는 바지사이즈로 살을 빼보고자 약물 제니칼을 복용하고 그 부작용 때문에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사랑을 나눌 기회를 날려버린다. 맞선자리에서 커피 값까지 물리고 도망간 남자의 인터뷰기사를 따야 하고, 1년을 공들인 예민한 배우 정시연과의 인터뷰 진행도 좌충우돌의 사건들로 힘겹다. 꼭꼭 숨어서 글로만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닥터레스토랑과 인터뷰하라는 명령도 떨어졌다.

뭐가 이렇게 안 돼. 사는 게 뭐 이리 힘들어. 젠장, 왜 나는 되는 일이 없지 등의 누구나 해봄직한 불평들을 쏟아 놓으며 30이 넘어가는 나이에 제대로 된 연애도 못해보고, 어릴 때 성수대교 무너지는 현장에서 겪은 충격에서 여전히 헤어 나오지 못하는 서정은 무엇을 준비해도 뭘 어떻게 해도 경쟁 속에서 ‘성공’의 과실을 따기 힘든 오늘의 20대와 많이 닮아 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라는 생각보다 그래 이젠 포기해야 할 때야 라고 하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인 오늘 한국 땅위, 절망과 좌절 속에서 꽃피는 행복을 찾아 노력하는 청춘에 대한 희망예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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