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 마드레 - 공존을 위한 먹을거리 혁명
마이클 폴란 외 지음, 송민경 옮김 / 다른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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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인도에서 전해지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먹이에서 모든 생명체가 태어난다…….모든 존재는 먹이를 통해 태어나고, 먹이를 먹고 살다가, 죽으면 존재는 다시 먹이로 돌아간다.’  
   

 


먹이를 위한 활동은 기본적인 욕구의 해소에서 비롯되었다. 동물과 식물,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종들은 그들의 ‘먹이’를 먹고 산다. 인간이 집단으로 살아가게 된 계기는 바로 이 먹이를 구하는 활동이 혁명적으로 변화한데 기인한다. 이런 변화를 주도 한 것이 바로 ‘농업’이었다. 농업은 수렵과 채집을 위해 떠돌던 집단을 정착할 수 있게 했고 먹는 것이 안정되면서 점차 문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문명을 유지하고 보존하며 이끌어가는 것은 순전히 농업의 힘이었다. 한반도의 경우에도 무려 4000년을 넘는 기간을 ‘농업’이 인간의 삶을 이끌어왔고 이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서 농사의 풍흉에 따라 통치자가 울고 웃는 일이 있었다.


오늘날의 농업은 농민이 대다수이던 백여 년 전과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더 이상 농업생산물은 물질로서의 큰 가치를 가지기 힘들며 비전 없고 늙은 노인들의 소일거리로나 대접받고 있는 실정이다. 원인은 세계화의 가치가 일부 거대 다국적 기업의 이익만을 좆는 데에 있다. 그들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개방되는 국가는 농업을 내주고 땅을 내주는 결과를 낳았다. 자유를 지향한다는 명목하의 개방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자국의 농업조차 말살하고 대가로 자국 대기업의 이익을 건져올 뿐이다.

문제는 기업은 다수를 위한 공명과 도덕, 자연 생태계에 대한 보전적 가치 등에는 관심이 없으며 오로지 ‘이윤’만을 위해 움직인다는 데에 있다. 밀림의 벌목이 지구 온난화나 그곳에 사는 소수민족의 생계와 수천 수만 명의 생물들에 미치는 영향 따위는 고려할 수 없다. 또한 이들이 ‘먹고 살 수 있게’하는 시스템의 구축은 고의적으로 방해 당한다.  

 

소위 ‘터미네이터 종자’라는 것을 개발하여 파종과 수확이후에 일부의 종자를 보존하여 다음해에 파종하는 일은 ‘없는 것’으로 만들어 지속적인 매출의 기반을 구축한다. 씨를 맺지 않는 종자, 번식능력이 제거된 반쪽자리 종자는 오늘날 농업의 상징이다. 유전자 조작으로 자사의 화공약품을 쓰지 않으면 수확조차 어렵게 만들고 선택성 제초제로 땅을 피폐화 하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세계화 전략에 놀아나는 각 국가가 지향하는 국익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핸드폰과 자동차, 선박 수출로 이익을 얻는 대기업뿐이다. 노동자 8%를 고용하고 있는 국내 대기업들은 국익신장을 위한 조건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노동자이자 시민, 소비자인 대다수의 ‘나머지’를 희생시킨다.

‘테라 마드레 Terra Madre'는 식량생산자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가치를 존중하고 이들의 문화와 전통을 보존하는 구호다. 지구가 앞으로 영속되려면 만물의 어머니라는 지위를 주고 이를 다수의 철학으로 공유하는 일을 확산해야 한다. 땅을 존중하고 그에서 비롯되는 생명을 우러를 줄 아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의 ’세계적 모임‘이다. 다국적 농업 대기업의 이익을 앞세우는 WTO와 콩, 옥수수, 쌀, 밀의 교역에만 힘을 쏟는 농업 세계화와 과감히 선을 긋는 행위다.

세대에 걸쳐 유지된 ‘맛좋은 밥상’을 잃어가는 현실을 되돌아보고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근원이며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의 농업을 복구하는 일. 독성 없는 유기 농산물을 원하는 소비자와 이를 위해 땀 흘리는 농부를 지원하는 소비자들의 행동을 촉구한다. 단일 품종의 대규모 경작을 지양하고 다품종 소규모 경작을 지향하며 이를 위해 땀 흘리는 소농을 위한 연대가 시급함을 알리고 있다. 슬로푸드 운동의 창시자인 카를로 페트리니가 시작한 운동은 격년으로 열리고 있으며 그들이 주장하는 ‘식량의 자유’가 바로 우리 일임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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