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없는 세상
앨런 와이즈먼 지음, 이한중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겨울에 한 달간 집을 비운 적이 있었다. 아파트가 아니라서 북풍한파를 홀로 주인 없이 막아내며 온기 없는 집은 결국 얼고 말았다. 주기적으로 돌아가던 난방마저 별 소용이 없어지고 수도를 포함한 난방배관까지 꽁꽁 얼어버렸다. 양지에서 집안으로 들어가면 한기가 뼈까지 스며드는 느낌이 드는 데에 놀랐다. 아이와 처를 이웃집으로 피신시키고 난로를 빌려다가 집안 곳곳을 데워서 녹이는 일에 착수했다. 삼사일 정도 지나서 얼어버렸을 것이다. 그 지난겨울의 외출을 떠올리면 그랬다. 이불을 두껍게 깔아 놓아도 소용이 없었다.


폐허가 된 도시. 사람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고 제 멋대로 자란 풀들과 빌딩 전체를 감아 올린 넝쿨. 깨진 유리창과 허물어져 내린 벽. 번쩍거렸을 고층건물을 그 높이만 겨우 알아볼 정도로 너덜너덜 해지고 부식된 기둥은 언제라도 무너질 것 같은 불안감을 준다. 갈라진 아스팔트 사이로 나무들이 자라있고 다수의 새들과 곤충, 동물들이 어우러져 마치 도시의 흔적을 가진 밀림의 모습이다.

그곳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인간 없는 세상>은 인간이 사라져버린 지구엔 어떤 일이 생길까를 상상한다. 공상과학영화들의 소재인 중성자탄의 폭발이나 핵무기가 사용된 3차 세계대전 이후, 그리고 외계인의 침공이나 테러리스트의 가공할만한 생화학무기로 인간이 멸종되어 버린 상황이라면 지구는 어떻게 변해갈까. 물론, 덧붙이는 가정은 ‘인간만 없는’ 상황이다. 동물과 식물들은 현재의 수준으로 살아있고, 인간들이 세워 놓은 문명도 그대로 유지된다는 상상을 해보자.


저자가 단순히 ‘인간 없음’이 어떤 풍경을 가져올지에 대한 묘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 등장 이래로 ‘망가져온’ 생태계와 하루라도 인간의 손이 닿지 않으면 이상이 생기고 말 불안한 기계, 공장, 건물, 교통시설, 발전시설, 석유화학 분야의 ‘문명’의 허술함을 지적한다. 철옹성처럼 단단해 보이는 문명이 실상 ‘관리’가 되지 않으면 ‘분해’가 되고 만다는 것이 책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서 좋아지거나 위험해지거나 다시 좋아지거나 안정되거나 한다는 것이 모두 자연의 힘이라는 것.


꽁꽁 막아놓은 두꺼운 아스팔트위에 조그만 틈으로 피는 민들레를 본적 있는가. 차가 다니지 않고, 미화원이나 관리원이 없는 도로는 곧 작은 틈에서 자라는 풀과 조금 더 큰 틈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자라면서 갈라지고 급기야는 갈아엎은 땅처럼 들려 오를 것이 틀림없다.

집은 작은 구멍에서 시작해서 습기와 곰팡이, 그리고 이에 붙는 곤충들과 동물들의 배설물을 통해서 분해된다. 나무와 못으로 지탱하는 목조주택의 경우라면 분해속도는 훨씬 더 빨라진다. 도시의 바닥을 그물처럼 이어지는 각종 배관은 흐르지 않아서 계절이 바뀌는 순간 얼었다 녹는 과정에서 틀림없이 터지고 만다. 봄철의 물바다는 이루는 도시에서 좀 더 빠른 식물들의 안착이 이루어지며 이를 통해 서식지를 확보하게 되는 곤충의 활약과 이들의 포식자들이 자연스럽게 장악하면서 문명의 흔적을 지우게 된다. 뉴욕지하철의 경우엔 단 이틀만 펌프로 물을 빼주는 사람이 없어도 범람하는 지하수로 지하철구간이 가득 잠기고 말 것이라고 한다.

새로 잇는 고속도로가 집중 강수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나 주기적인 태풍에 전혀 대비하지 못하는 21세기의 현실을 보더라도 자연 앞에서 무능해져버리는 인간의 힘을 깨닫기는 쉬운 일이다.

인간 없음의 미래는 지구를 위해서 유익한 일이 될지 모른다. 온갖 위험을 안고 ‘관리’를 위해서 ‘소비’하는 인간문명은 전력을 위해 수십만년 동안 치명적인 방사능이 방출되는 폭탄 같은 물질을 드럼통에 넣어 땅 밑에 묻고 그 위에서 삶을 누린다. 생활의 편리를 위해 개발된 석유화학의 주요 산물인 플라스틱은 분해되지 않고 바다로 흘러들어 잘게 분해된다. 더 이상 분해가 불가능한 이 물질은 바다를 부유하며 플랑크톤 같은 미생물로 시작하여 고래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바다생물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가한다.

이러한 위협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더 인간의 힘으로 처리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고 급기야 필연적으로 ‘사고’로 이어지게 되면, 그땐 후회해도 늦다. 수 많은 인간과 환경이 파괴되고 그 영향력은 지금 인간이 예측하기 힘든 재앙으로 이어진다.


인간 없는 이로움은 바로 우리 곁에도 있다. 전쟁이 낳은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DMZ라 불리는 곳은 한반도의 허리를 수 킬로의 폭으로 가로지른다. 이곳에서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보지 못할 종류의 동식물의 안식처가 되었다. 지뢰가 묻혀 있고 철조망으로 보호되는 안전지대, 단지 사람이 없음으로 생기는 동식물의 평화는 어떻게 자연을 보호해야 할 것인가의 물음에 너무나 쉽게 답을 준다. 우리가 더 보기 쉬운 예는 서울 한 가운데 위치한 한강의 ‘밤섬’이다. 조류보호지역이지만 이곳의 생태를 더 살핀다면 훨씬 더 보물 같은 자연의 생명력과 조화를 관찰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자연은 놀라운 생명력으로 지금 위태로운 지구의 환경을 되돌려 놓을지 모른다. 물론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 인간이 당장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자연을 존중하며 마치 그 존재가 없는 듯 행동하기. 딩동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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